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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 달여 머물던 중국에서 귀국하자마자 가장 먼저 모 농민단체 사무총장을 만났다. 남북 및 해외의 민간 대표들이 중국 심양에서 6·15 기념행사와 8·15 기념행사를 서울과 평양에서 갖기로 전격 합의 했다는 소식을 귀국 직전에 접했기 때문이다.

남측의 농민 대표단이 구성될 때 남북 농업교류의 기본 축을 어떻게 설정할지 의논하고 싶어서였다. 모 농업신문 편집부장과도 통화하면서 르포식 취재를 제안했다. 종교 쪽 유력한 지인에게 연락 했더니 벌써 종교 쪽 대표단에 자신이 포함되었다는 답변이 왔다.

내가 농업의 남북교류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개성공단'처럼 '개성농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기 때문이다. '개성'은 이미 북측 한 지역 이름이 아니다. 남북관계의 기상도이고 남북관계의 숨통이다. 농업 분야에 이런 통로를 '개성농장'으로 생각 한 것이다.

<개성공단 사람들> 표지
▲ 표지 <개성공단 사람들> 표지
ⓒ 내일을 여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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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중국에서 만난 농업분야 전문 국제교역가 덕분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북한과 '녹색농법 시범단지' 사업과 '생태농업기지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그 회사)가 북과 함께 하는 '논벼에 대한 자연 경작법'에는 우리처럼 오리농법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우리의 적정기술운동처럼 북에도 '농업의 생태동력체계'를 구축하고 있었고 우리의 바이오농법과 같은 '생물농약기술양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한의 농민이라면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북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었다.

<개성공단 사람들>을 만나다

'나비효과'라고나 할까. 이런 와중에 <개성공단 사람들>이라는 책을 만났다. 6.15와 8.15 두 행사는 모두 무산되어 버렸지만 <개성공단 사람들>은 전혀 새로운 남북관계를 엿보게 하는 작은 창처럼 여겨졌다.

개성공단에서 4년 동안 일했던 사람이 쓴 책이다. 개성공단에서 대북협상을 맡았던 사람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5년 간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했던 김진향 카이스트 미래전략개발원 교수다. 취재작가 3명과 함께 9명의 개성공단 사람들을 취재해서 구성했다.

개성공단에는 지금 124개의 남쪽 기업의 풀가동 되고 있으며 북측 근로자만 5만 3천명이라고 한다. 매일 매일 작은 통일이 이뤄지고 있는 작은 공간이라는 책 표지 문구가 전혀 낯설지 않은 통계치다. 이 공간에서 남과 북은 문화의 차이와 의식의 차이를 한 발자국씩 극복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남측 기업 책임자가 사무실에 걸려있는 달렸을 찢었다. 달이 바뀌었으니 찢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달력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생산라인이 중단되었고 모든 근로자들이 식당에 모였다. 더러는 울기도 하면서 '이런 기업에서는 일 할 수 없다'며 비난이 난무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게 북한이다.

반면, 북의 근로자들은 아득바득 돈을 버는 남측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는 얘기다. 일을 더 한다고, 또는 일을 더 잘한다고 보수를 더 주는 것에 대해서도 납득을 못하더라는 얘기다.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더 중시하는 사회의 특징인 것이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던 북한 여성근로자들이 뽀얗게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든가 또는 남한 직원들이 '동무'라는 말에 익숙해 진 것들은 '개성공단'이 의식과 습관과 언어까지 서로 동질화 되어 가는 작은 통일의 공간이 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나오는 9명의 개성공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개성공단은 절대 대북 퍼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과 세금, 복지 등을 통해 북쪽으로 가는 돈은 1년에 약 1억 달러(약 1050억원)이고 생산액은 15억 - 30억 달러가 넘는다는 것이다. 어느 기업 관리자는 이렇게 말한다. "엄밀히 평가하면 남쪽이 북쪽보다 몇 배, 몇 십 배는 더 많이 벌고, 국가 경제적 관점에서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이 퍼 오는 곳"이라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개성공단

해외 어디를 가도 개성공단 만한 경쟁력을 가진 곳이 없다고 기업들은 말한다. 작년에 한미 군사훈련 때문에 개성공단이 반년 동안이나 멈추었을 때 개성공단의 기업들은 전 세계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고 한다. 이보다 더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북한 근로자 임금이 월 200-300달러(우리 돈 21만원 - 32만원)으로 협상이 되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격적으로 50달러로 낙찰 보게 했다고 한다. 개성공단을 통해 남북 교류의 큰 물꼬가 트이게 하자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의 가장 유리한 조건은 물류비용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딱 40분 거리고 보니 해외 어떤 생산기지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 다음이 토지비용과 인건비. 그리고 같은 언어를 쓰고 정서적 공통성을 갖고 있는 점 등이라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대목은 다른 데 있었다. 남측의 기업 대표(법인장)가 아무리 생산라인에 문제가 있어도 북측의 직장장이라는 근로자 대표를 통하지 않고서는 직접 지시하거나 변경을 지시 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이것이 비효율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노동자의 인권문제에 대한 방파제로 보였다.

'*새끼'라거나 '거지같은 놈'이라고 근로자에게 욕을 했다가는 바로 문제가 되는 정도다. 근로자들에게 인격적인 모욕을 주거나 일방적인 작업지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생산라인의 안정성은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기업과 근로자가 상호 인격적인 관계로 맺어질 때 나타나는 선순환 효과다. 동남아시아나 중국에서 일어나는 한국 기업의 노동탄압 사례와 견주면 개성공단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개성농장', '개성학교', '개성의원'으로 발전해 가길

고도화되고 발달되었으나 돈 중심의 각박한 남쪽의 사회와 그래도 공동체와 집단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약간은 어리숙한 북의 사회가 '개성공단' 뿐 아니라 '개성농장'에서도 작은 통일을 이루었으면 싶다. 어디 '농장' 뿐인가. '개성학교'는 어떤가. '개성의원'은 또 어떤가. 남쪽 어느 곳에 대형 농장을 조성해서 북한 농민들이 와서 몇 달씩 또는 1-2년씩 농업연수도 하면 어떻겠는가. 남쪽이 안 되면 중국 어느 곳에 '개성농장'을 세울 수는 없을까?

이 책을 보면서 처음에는 북한 근로자들의 인터뷰도 있나 기대를 했지만 그런 기대가 충족되기에는 아직 이른 듯하다. 북한의 이야기를, 가정생활과 여가생활 및 교우관계와 명절 풍습 등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북한 사람들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으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하나 보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북한 이야기는 남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만 엿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매우 아쉽고 가슴 아픈 우리 현실이다.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 이토록 무자비한 폭력이 어디 있을까. 아직도 우리는 북한의 호전성과 무모한 군사주의 뉴스만을 듣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군사시설 탐방과 엉뚱한 언행, 공포정치만이 뉴스로 전해진다. 일국의 지도자는 절대 그럴 수 없는 법이다. 민생을 돌보는 흉내라도 안 하는 정권은 지구상에 없는 법인데도 이런 뉴스가 우리에게 익숙하다는 것은 균형 잡힌 의식을 잃은 것이다.

방금 전해진 뉴스가 있다. 북한이 다음 달 광주에서 열리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불참한다는 통보가 왔다는 뉴스다. 여자 축구와 핸드볼 등 75명의 선수와 33명의 임원이 참석하겠다고 지난 3월에 참가신청서까지 낸 북한이었다. 이유는 한가지다. 6월 23일, 서울에서 유엔의 북한인권사무소를 개설하는 것이 발목을 잡은 모양이다.

서울에서는 남북 체육교류를 가로막는 북한인권사무소가 개소되지만 같은 6월 23일에 <개성공단 사람들> 저자를 모시고 강연회가 열린다. 전라북도 장수라는 작은 시골이다. 주제는 '개성공단에서 꿈꾸는 희망의 통일'이다. '지성을 경장하는 농부들'이 만든 <농민생활인문학 - 닦음과 행함>에서 주최하는 강연이다. 작은 통일의 공간, 또 하나의 '개성공단'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농민생활인문학>의 대표이다.



개성공단 사람들 - 날마다 작은 통일이 이루어지는 기적의 공간

김진향 외 지음, 내일을여는책(2015)


태그:#개성공단 사람들, #내일을 여는 책, #김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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