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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윤동주 문학관 뒤편, 시인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 서시 윤동주 문학관 뒤편, 시인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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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이야 모두 다 아실 테죠. 유명한 서시도 잘 아실 거고요."

자하문이라고도 불리는 창의문 인근에는 윤동주 문학관이 있고, 그 뒤편으로는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어 있다. 지난 5월말 필자는 그 언덕에서 역사트레킹 참가자들에게 윤동주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윤동주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보다는 국문학에 가깝기에 짧게 설명을 한 후 다음 코스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괜히 서시를 통째로 외워보라고 짓궂게 구는 참가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빨리 이동하는 게 상책이었다.

"서시만큼 유명한 참회록도 아시죠? 참회록은 윤동주가 창씨개명을 한 후 스스로에게 느낀 자괴감을 시어로 풀어낸 것이라 합니다."

이 정도로 설명을 마친 후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설명을 듣던 참가자 한 분이 불현 듯 이런 말을 건넸다.

"창씨개명을 했다면 친일파가 아닌가요?"

시인 윤동주가 친일매국노?

잠깐 발걸음이 꼬였다. 윤동주 시인이 친일파라는 소리를 듣다니! 하늘에 있을 시인은 무척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비교적 젊은 사람들, 또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의 역사 지식수준이 '꽝'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역사트레킹 마스터라는 거창한 직함을 가지고 있다. 그간 역사트레킹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많은 유적지들을 탐방했다. 역사트레킹이 제주 올레를 정점으로 한 걷기열풍의 부산물, 혹은 편승물이라는 조롱과 질책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름대로 그 안에서 보람도 찾았고, 재미도 느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부터 트레킹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중간에 코스를 잊어버려 참가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고, 저질(?) 체력인 참가자들의 보폭을 고려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유적에 대한 설명이었다. 즉 필자의 역사 실력이었다. 트레킹의 참가자들이 주로 젊은층들이라 그들의 날카로운 질문 공세가 예상됐었다. 그래서 이런 걱정까지 하게 됐다.

"이거 내 역사 실력이 확 드러나는 거 아니야? 학교 다녔을 때도 역사 점수 안 나왔었는데..."

저런 자조의 말이 괜히 나왔던 게 아니었다. 실제로 필자는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술서적보다는 대중서적을 읽으며 역사에 대해서 지식을 쌓았다. 그렇다고 학벌이 좋냐?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건 20년 가까이 종이신문을 꾸준히 읽은 것과 국제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런 장점들까지 끌어들이고서야 겨우 참가자들 앞에 설 수 있었다. 한국사에서 바닥을 치면, 세계사로 넘어가고, 그것도 역부족이다 싶으면 국제정치로 도망치자(?)는 게 전략이었다. 어쨌든 초창기에는 실력이 '뽀록'날까봐 무척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었다. 

하지만 두어 번 역사트레킹을 진행하다 보니 역사 실력에 대한 고민은 싹 사라지게 됐다. 오히려 너무 느긋했다. 나중에는 말장난까지 하면서 참가자들을 농락(?)할 정도였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왜 일어난 것일까? 밑천이 드러날 걸 초조해하던 마스터가 참가자들을 농락하기까지 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런 극적인 변화는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사람들의 역사 지식이 '꽝'인 것에 토대를 두고 있다. 참가자들이 역사 지식에 무지하다면 그만큼 필자의 '구라'가 통할 여지가 크다는 뜻이 된다. 

- 조선총독부가 무엇을 하는 곳이고,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지 모른다.
- 서대문형무소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
- 동학군을 이끌던 전봉준 부대가 어디서 패배를 했는지 어디를 가고자 했는지 모른다.

필자를 당혹스럽게 했던 참가자들의 발언들을 모아봤다. '이 정도면 당연히 알겠지' 하는 필자 나름대로 그어놓은 상식선은 저런 발언들로 인해 여실히 깨지게 됐다. 상황이 이러하니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거 사기 쳐도 되겠는데... 그래서 그런가. 권력자들은 똑똑하지 않은 국민들을 선호하는 건가?'

윤동주를 괴롭게 했던 창씨개명, 그리고 참회록

시인의 언덕 윤동주 문학관 뒤편에 있다.
▲ 시인의 언덕 윤동주 문학관 뒤편에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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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윤동주 시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1941년 겨울, 윤동주는 '히라누마 도슈'라는 창씨명을 얻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윤동주 개인의 의사가 아닌 창씨개명이었다는 점이다. 집안 자체에서 행해진 것이지 윤동주가 직접 행정기관에 찾아가 창씨개명 서류에 도장을 찍은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의도하지 않은 자신의 창씨개명에 대해서 윤동주는 '참회록'에서 자괴감을 드러내게 된다.

한편 당시는 중일전쟁이 이미 발발한 상태였고, 태평양전쟁까지 일어났다. 일제의 침략 야욕이 극에 달할 때였다. 식민지 조선에도 총동원령이 내려져 식량이 배급되기에 이르게 된다. 이때 식량을 배급받기 위해서는 창씨개명이 필수였다고 한다. 그런 생존과 직결된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에 창씨개명을 한 사람들을 모두 '친일 매국노'로 분류한다는 건 적절하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반민특위에서도 창씨개명 자체를 친일행위로 보지 않았다.

윤동주 시인은 일본 황군을 화끈하게 격려하고 '일본이 이렇게 빨리 망할 줄은 몰랐다'고 궤변을 늘어놓은 시인 서정주나 소설가 이광수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를 했기 때문이다. 윤동주가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어 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청년층의 역사 인식 미비도 큰 문제

함께 장시간을 걸으며 동고동락한 참가자들을 폄하하는 내용을 작성하는 터라 필자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하지만 젊은층의 역사 인식이 생각보다 미비하다는 점을 꼭 알리고 싶었다. 청소년층의 역사 인식이 심각하다, 그래서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20~30대 청년층의 역사 인식도 만만치 않게 수준이 낮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부족한 역사인식을 무엇으로 채워줘야 할까? 역사, 교양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해줘야 할 것이다. 역사교양 강의의 확대, 역사체험 학습의 다변화 등등... 적어 놓고 보니 뻔한 대답이다.

그런 뻔한 것들이 쌓이다보면 내공이 된다. 그 내공은 역사 인식이 빈약한 정치인들을 솎아낼 수 있는 거름체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놈이 그놈이다.'

이렇게 싸잡아 묶어버리는 언어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놈' 중에서도 덜 나쁘고, 덜 때가 묻은 사람들을 솎아낼 수 있는 내공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럼 역사를 현실에서 써먹게 되는 셈이다.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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