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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수가 120명 남짓한 직장에서 2년 사이에 노동자 두 명이 자살 시도를 했다. 한 명은 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웠고, 다른 한 명은 독을 마셨다. 한 명은 세상을 떠났고, 다른 한 명은 천만다행으로 건물 청소 노동자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다. 문제는 두 사람이 자살에 이른 이유에 큰 공통점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장과 상사(관리자)의 괴롭힘이었다. 대체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직장은 천안에 위치한 삼성전자서비스센터다. 사장과 관리자는 왜 그렇게 두 사람을 힘들게 했을까? 이들을 노동조합에서 탈퇴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났'다는 이는 최종범이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는 이는 그의 동료 정아무개 조합원이다.

최종범은 지난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한 직후, 노조 탄압과 폭언, 협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동료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갓난아기 딸을 두고 열사가 된 서른셋 젊은 노동자의 유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많은 시민들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노동조합의 요구와 투쟁을 지지해주었다. 기나긴 투쟁으로 마침내 노동조합(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이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한 날, 동료들은 비로소 그를 마음에 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천안센터, 두정센터에 이어 아산센터까지 인수해 무려 3개의 삼성전자서비스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 이아무개씨는 여전히 노조를 '박멸해야 할, 영원한 적'으로 여기는 듯하다. 저 옛날 삼성을 창립한 초대회장의 고집 그대로 말이다.

그가 운영하는 천안, 아산센터에서는 여전히 노조 탄압이 일상이다. 조합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측은 조합원들의 일감을 줄여 생계를 압박하는 것은 물론 노조만 탈퇴하면 "원하는 대로 돈을 주겠다"고 구슬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팀장과 인사노무팀장이 지난 4월 직원들이 가입한 상조회의 온라인 공간에서 "심 팀장님. 생일 선물로 노조 탈퇴서 하나 드려야 하는데…. 최대한 빨리 생일 선물 드릴게요",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받은 것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렇게 끊이지 않는 노조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20여 명이 노조를 탈퇴했다.

부당한 취업규칙 변경에 강력히 항의했지만...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천안센터 취업규칙 개악 내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천안센터 취업규칙 개악 내용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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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일방적인 취업규칙 변경으로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변경내용은 취업규칙 1개를 삭제하고 15개 항을 신설하는 것이었는데, 직원들의 복무규정(직무에 임하는 직원들이 지켜야 할 사항)을 강화하고, 해고가 가능한 사유를 늘리는 것이었다.

일례로 '해고 요건'에 "고객에게 3회 이상 불친절로 고객의 불만사항이 접수되면 해고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넣었다. 서비스직의 특성상 고객의 막무가내 항의나, 제품 자체의 결함으로 인한 불만이 늘 발생할 수 있다는 상식을 무시한 조항이다. 아니 그런 특성을 되레 악용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불친절'과 '불만'의 기준도 너무 모호해서 사측이 자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회사내부문건을 외부로 유포시킨 경우 해고가 가능하다"는 조항도 문제다. 얼마 전 울산센터 노동자들이 과거 사측이 작성한 '노조파괴(Green화) 문건'을 사회적으로 폭로했는데, 만약 이런 일이 앞으로 천안센터에서 일어난다면 해고사유가 된다. 임금명세서나 부당한 업무지시, 노조파괴 행위가 담긴 문서 등을 사측이 '내부 문건'으로 규정해버린다면 이를 언론에 제보한 노동자는 곧바로 해고될 수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아산 센터는 이 같이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노조의 동의를 얻지 않았고, 비조합원 위주로 서명을 받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조합원들이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다못한 정아무개 조합원은 지난달 말, 음독자살 시도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약속과 신뢰를 헌신짝처럼 여기는 삼성전자서비스

부당한 취업규칙 개악 철회를 요구하는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노동자들
 부당한 취업규칙 개악 철회를 요구하는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노동자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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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조 삼성' 시대가 가고, '유노조' 시대가 왔지만 삼성은 노조와 공존할 생각이 아직은 없는 것 같다. 지난 2014년 임금·단체협약이 체결되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전국에서 노조에 대한 공격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잇따른 폐업문제가 대표적이다. 2014년 3월 해운대, 이천, 아산센터를 시작으로 마산, 진주, 서수원, 울산까지 업체 폐업이 끊이지 않았는데, 모두 노동조합 가입률이 높은 곳이었다. 때문에 기획·위장폐업의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앞서 밝혔듯 가장 최근에 폐업사태를 겪은 울산센터에서는 노조파괴문건이 발견되기도 했다. 울산스마트서비스(주)가 작성한 '조직 안정화 방안' 문건에는 서비스 기사들을 'Green화'(노조탈퇴) 시킨다는 목표와 함께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Green화 하겠습니다. 조직안정화를 바탕으로 제출한 2014년 업무제안서 내용을 100% 수행해 반드시 목표 달성토록 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울산센터 사장이 지난해 2월 노동조합원들을 납치해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한 천안센터에서 음독자살사태를 불러온 취업규칙 변경이 울산센터, 서부산센터에서도 유사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노조의 강력한 반발로 현재는 중단되었다.

삼성은 잊어도, 우리는 잊지 않는다

누구보다 노조를 사랑했던 동료, 최종범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않으려고 노동자들은 똘똘 뭉쳐 싸웠다. 2013년 12월, 삼성전자서비스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노동조합 탄압을 근절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위장폐업과 임금·단체교섭 해태를 반복하는 사이 2014년 5월 또 다른 젊은 노동자 염호석이 목숨을 끊었다.

노동자의 잇따른 죽음이 세월호 정국과 맞물려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기미가 보이자 삼성 미래전략실은 그제야 위기감을 느끼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최종범·염호석은 삼성에게는 그저 빨리 무마시키고 잊어버려야 할 이름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두 이름은 영원한 아픔이고, 잊지 말아야 할 상징이다.

너무 쉽게 약속을 파기하고, 호시탐탐 노조원들을 탄압할 기회를 노리는 협력업체 대표들과 삼성전자서비스(주) 박상범 사장에게 묻고 싶다. 나아가 삼성그룹을 물려받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최종범·염호석의 이름을 너무 쉽게 잊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당신들이 고집하는 삼성'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증언했듯 수많은 노동자가 직업병으로 죽어나가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비스가 강한 삼성전자를 만든 주역인 수리기사들이 노조탄압으로 신음하는, 예전 그대로의 삼성일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두 이름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한다. 삼성에서 힘겹게 피어난 노동권과 노동조합을 함께 지키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와 '다른 삼성'의 가능성은, 다름 아닌 바로 이들에게 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 취업규칙 변경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표현하고 싶다면? 페이스북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페이지 "좋아요" 누르고 응원의 글을 남겨주세요!

글쓴이는 사회진보연대, 삼성노동인권지킴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 #삼성전자서비스, #천안, #최종범,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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