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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로 만든 유기농 소스와 두부조림 나물과의 환상의 궁합
 효소로 만든 유기농 소스와 두부조림 나물과의 환상의 궁합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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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9년 5월 25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음력 사월 초파일을 달리 부르는 말로 옛 네팔 샤키아족의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난 날이다. 싯다르타는 늦은 나이에 생사고락의 현실과 마주하며 6년간의 고행 끝에 붓다(궁극적 진리를 깨달은 자)가 되어 여래의 경지에 올랐다. 오늘 그의 탄생을 축하하며 전국에서 진리의 등불을 켰다.

보통 부처님 오신 날은 주지 스님의 총 지휘로 상좌스님, 보살, 사부대중들이 일사천리로 움직여 큰 행사를 진행한다. 산기슭에 오롯이 위치한 전통 사찰에서는 가요무대 못지않은 연예인도 초청해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춘다. 그리고 마을과 붙어 있는 작은 사찰에서는 부처님 공양 나눔 등으로 사부대중과 축배의 음식을 향유한다.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연잎밥의 향연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연잎밥의 향연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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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오전 9시, 인천 서구의 소박한 사찰인 경운사를 찾았다. 주지인 보련스님은 아침부터 음식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대부분 이 시간대의 주지스님들은 법회 준비하느라 부처님과 명상 소통을 하는 게 정상인데 말이다. 스님은 이 상황에 대해 짧게 설명한다.

"오늘은 거꾸로 법회를 하는 날이지요. 스님만 꼭 목탁치란 법 있나요?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음식만 만들 거요. 내 대신 거사님이 법회를 이끌면 되지. 빨리 2층으로 올라가봐요. 부처님께 인사올리고 예를 갖춰야지"

2층으로 올라가는 불전 앞에 소박하게 놓여있는 돌부처상.
 2층으로 올라가는 불전 앞에 소박하게 놓여있는 돌부처상.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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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법회라니. 목탁 들고 염불외우는 스님께서 오롯이 부엌데기 노릇을 자처하겠다는 모양새다. 더욱이 오늘 같은 부처님 오신 날에 말이다. 평소에도 격 없이 소통하는 스님인지라 예상은 했었는데 가히 놀랍다. 여하튼 스님의 당부에 2층 불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담하고 소박하게 꾸며진 불상들. 그리고 아빠와 어린 아이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 쪽에서 스님의 명을 받은 거사가 법요식 준비를 마치며 목탁을 두드린다. 이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이고 이내 부처님 오신 날 공식 법회가 시작됐다.

이름 모를 작은 꽃잎도 부처를 형상화한 연꽃으로 보일지리니...
 이름 모를 작은 꽃잎도 부처를 형상화한 연꽃으로 보일지리니...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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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도 보련스님은 부엌에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연잎을 튀기고, 효소와 소스를 섞어 맛있는 산사음식을 장만한다. 자연이 내준 그대로의 맛을, 조미료 하나 없는 건강음식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 스님은 이 음식공양이야말로 부처님 오신 날의 참 의미를 기억하는 거라고 강조한다.

어느 새 시간은 훌쩍 지나 공양시간이 다가왔다. 지나가는 이웃 주민들도 목탁 소리와 음식 냄새를 맡고 스스럼없이 사찰로 들어온다. 한 가족이 모이고, 두 가족이 모이고, 어느새 사찰 안이 사람들의 온기로 후끈거렸다.

공양을 마치고 소박하게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보살들의 행복
 공양을 마치고 소박하게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보살들의 행복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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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이날 연잎밥, 두부조림, 각종 나물 반찬 등 120인분을 만들어 내어 사부대중과 음식을 나눴다. 말 그대로 보련스님만이 할 수 있는 부처님 오신 날의 특별한 야단법석이었다. 보시야말로 석가탄신일의 진정한 가르침이라는 스님의 소박한 실천수행이었다.

"먼지를 포함하여 모든 것의 존재는 시방삼세의 존재자들의 연쇄가 준 선물이다. 준다는 생각 없이 준 선물이다. 그렇기에 무주상보시는 어디 특별히 따로 있기 이전에 우리의 삶 속에 항상 있는 것이다. 나의 존재가 기대어 있는 것, '연기적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내게 존재를 선물하고 있는 것이다"(이진경 서울과기대 교수의 무주상보시론)


태그:#부처님 오신 날, #경운사, #보련스님, #무주상보시, #석가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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