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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포도를 상온에 한 달쯤 뒀는데 썩지 않고 멀쩡하더라고요. 농약이나 방부제 같은 약품 처리를 얼마나 많이 했으면 한 달이 지났는데도 멀쩡하겠어요. 우리나라에 한 달은 걸려서 왔을 것 아니에요. 두 달 동안 썩지 않는 과일이라. 너무 끔찍하지 않아요? "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가지 펴냄)의 주제는 '우리가 흔히 사먹는 것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오며, 얼마나 바람직한가?'다. 책의 '과테말라의 바나나 노동자'에 관한 글을 읽다가 친환경적인 소비에 관심이 꽤 많은 후배를 만날 일이 있어 책 이야길 했더니 이렇게 말한다.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 책표지.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 책표지.
ⓒ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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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배는 이때부터 가급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제철과일들을 먹는단다. 후배와 같은 이유로 나도 수입과일은 사먹지 않는다. 수입되는 동안 약품처리를 많이 한다는데 대체 어느 정도일까? 언젠가 호기심에 먹던 과일을 하나 남겨 상온에 뒀는데, 후배처럼 한 달이 지나도 껍질은 물론 알맹이도 썩지 않았다.

토마토케첩은 진간장, 식용유, 커피와 함께 내가 자주 구매하는 가공품 중 하나다. 아들이 케첩과 파스타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언젠가부터 토마토케첩만큼은 만들어 먹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우리들이 시중에서 구매하는 케첩들의 원산지는 미국이나 중국, 칠레 등이다. 이 케첩들이 GMO 토마토로 만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하면서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GMO 관련 자료, 그 설명들을 보면 어김없이 토마토를 언급한다. 쉽게 무르는 토마토를 어떻게 하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보관하면서 팔 수 있을까? 물에 강한 물고기의 유전자 일부를 잘라 토마토 유전자에 넣어(유전자조작) 수분에 강한 새로운 품종의 토마토를 만든다. 이렇게 나온 것이 GMO 작물이다.

GMO에 대한 세계인들의 생각은 정반대 입장으로 나뉜다.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작물이 우리 몸에 과연 괜찮을까? 게다가 특정 곤충이 앉으면 그 곤충을 죽일 정도로 살균적인 작물까지 있다지 않은가. 그러니 위험하다'와 '몸에 좋지 않다는 구체적인 근거가 나오지 않았는데 왜 위험하다고만 하나. 과학기술로 먹거리를 많이 생산해내면 값싸게 사먹을 수 있어서 좋지 않나. 기아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등으로 갈린다.

난 GMO를 반대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20년 가까이 먹어온 토마토 케첩은 GMO 작물일 가능성도 많다(아마도). 그동안 선호했던 A토마토케첩의 원산지는 미국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칠레와 중국 등이다. 내가 아는 한 미국은 GMO작물 재배 1위 국가이다. (중국은 6위).

이탈리아 남부 도시 베노사 외곽. 노동자들은 변변치 않은 임금을 받기 위해 하루 최대 14시간이나 가혹한 환경에서 고되게 일한다. (…)노동자들은 대개 불결하고 끔찍한 공간에서 산다. 전기와 어떤 형태로든 위생시설이 제공되지 않은 버려진 건물이 대부분이다. 한 사람이 살기 적합한 1층짜리 집에 30명이나 되는 사람을 구겨 넣을 수도 있다. 이들에게 의료혜택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외부와의 접촉도 최소한만 허용된다. 노동운동가들은 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유럽의 토마토노예'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생활 및 작업환경이 열악하다고 말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고향 집에 돈을 보내기 위해 불안정한 일자리라도 찾지만 스스로 가난과 노동력 착취라는 잔인한 소용돌이 속에 갇히고 만다. 송금할 만큼(혹은 유럽에서 고향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살 만큼) 충분한 돈을 저축하지 못한 사람들은 덫에 걸린 채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적은 돈을 받으며 오렌지나 레몬, 딸기를 수확하는 비슷비슷한 일자리를 찾아 전전긍긍한다. -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에서.

아니면 이처럼 누군가의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으로 생산된 토마토로 만든 제품일 수도 있다.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는 40년 넘게 가장 중요한 환경문제들을 수준 높은 보도로 지적함으로써 이슈화 하는 데 앞장서온 세계적인 환경잡지인 <더 에콜로지스트>가 기획한 친환경 소비 가이드 두 권 중 하나다. (다른 한권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패션> :'친환경 작물'로 알려진 면, 알고 보면 '무서운 쓰레기' http://omn.kr/cswv)

책은 후배가 직접 확인한 '상온에서 한 달을 둬도 썩지 않는 포도'나, 필자가 신경 쓰는 GMO 작물 등 세계인들이 보편적으로 많이 먹는 먹거리들의 끔찍하고 위험한 진실들을 들려준다. 그리고 이탈리아 토마토처럼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이나 과정으로 생산되거나 가공, 유통되는 먹거리들의 실태를 파헤친다.

토마토뿐이랴. 책을 통해 접한 바나나와 망고, 파인애플과 같은 열대과일들 생산 노동자들의 실태는 너무나 끔찍하다. FTA를 홍보할 때 우리나라에서 재배하지 못하는 열대과일들이나 채소들을 비롯한 축산물 등을 훨씬 값싸고 쉽게 사먹을 수 있노라고 부각시킨다. 이런 까닭에 흔히 사먹을 수 있음에 '세상 참 좋아졌다'며 감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과연 세상 좋아진 덕분이라며 감탄할 먹거리들인가? 책에 의하면 우리에게까지 수출되는 먹거리들 (아마도) 거의 전부는 농약이나 방부제를 흠뻑 뒤집어써야만 썩지 않고 올 수 있다. 또 이탈리아 토마토처럼 구조적으로 집중적인 농약살포와 노동착취를 할 수밖에 없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에 의한 것들도 많다. 

책이 다루는 먹거리들과 문제들은(혹은 진실들은) 그간 먹거리의 문제점을 다룬 여타의 책들이 쉽게 다루지 않았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책은 이탈리아 토마토 노동자들의 실태 외에 과테말라와 필리핀의 바나나 노동자와 페루의 망고 노동자 등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며 노예처럼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실태를 들려준다.

영국의 농약범벅 채소 재배, 페루의 연어양식 사료공장, 폴란드의 집중가축사육시설의 폐해 등도 파헤친다. 양식새우, 버섯, 양식조개, 산양유, 두유, 사과주, 올리브유, 빵, 후추, 차, 와인 등의 품질과 생산 과정 등, 상표 뒤에 숨어있는 것들을 파헤친다.

<더 에콜로지스트> 출판물들의 특징 그 하나는 바람직한 생산과 소비활동을 하는 행동가들의 사례와 목소리를 함께 들려줌으로써 또 다른 누군가를 행동가로 만드는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토마토 노동자들의 축사와 다름없는 거주시설과 정반대인 호스텔 수준의 거주시설을 제공하면서도 이윤 창출을 하는 기업과 윤리적인 과일 유통에 앞장서는 기업, 농약 없는 와인 생산을 위해 포도재배 시 농약을 쓰지 않는 기업 등을 아울러 소개한다. 이론적인 대안들이 아니라 현재 일부 사람들이 실천하는 것들이라 설득력이 강함은 물론이다.

'내 가족이 먹는 먹거리들은 어디에서, 어떤 과정으로 생산되었으며, 얼마나 바람직한가. 그리고 윤리적인가. 보다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는 이제까지 무심코 집었던 물건들의 성분을 보게 하고, 장바구니에 무심코 담았던 먹거리들을 돌아보게 할 것이다. 그리고 흔히, 별 생각 없이 먹는 것들의 진실을 묻게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ㅣ앤드류 웨이슬리ㅣ최윤희(옮김)ㅣ가지 출판사ㅣ2015-3-25ㅣ13500원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

앤드류 웨이슬리 지음, 최윤희 옮김, 도서출판 가지(2015)


태그:#더 에콜로지스트, #친환경, #먹거리, #GMO, #농약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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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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