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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이미 말하고 있듯이, 뮤지컬 <난쟁이들>에는 난쟁이와 그의 주변인물인 동화 속 주인공들이 대거 출연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만 15세 이상(!) 관람가란다. 대체 난쟁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난쟁이마을의 찰리(정동화)와 친구들(왼쪽부터 전역산, 송광일, 우찬)
 난쟁이마을의 찰리(정동화)와 친구들(왼쪽부터 전역산, 송광일, 우찬)
ⓒ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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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나라 난쟁이 마을에 사는 찰리는 가늘고 길게 사는 데 안주하는 여느 친구들과 달리 공주를 만나 왕자로 살고픈 인생역전의 꿈을 안고 모험을 떠난다. 죽기 전에 한 번은 백설공주님을 만나는 게 소원인 빅과 함께. 관객들은 그들의 순탄할 리 없는 여정에 동행하는 대신 깨알 같은 재치가 엿보이는 가(대)사들이 빚어내는 웃음을 공연시간 100분 내내 보장받는다. 

3등신 난쟁이의 모습으로는 무도회장 근처에도 갈 수 없다. 결국 난쟁이들이 찾아간 이는 신데렐라를 도와줬던 그 마녀, 하지만 꼬부랑 할머니가 돼버린 마녀는 9등신 왕자의 모습으로 만들어달라는 찰리와 빅에게 기도와 노력만으론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충고한다.

이때까지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는 찰리와 빅을 향해 마녀는 천기라도 누설하는 양 "꿈이 이뤄지는 딱 한 가지 방법! 돈, 돈, 돈을 쓰면 마법이 일어난단다. 돈을 써야 네 꿈이 이뤄진다"며 퍽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 대다수의 관객들이 이 장면에서 너나할 것 없이 웃었지만, 그 웃음의 본질은 '노코멘트'에 부치는 걸로.

유리구두에 차압 딱지 붙여봤니?

뮤지컬 <난쟁이들>의 공주들은 우리가 알던 동화 속 그녀들이 아니다. 사랑을 믿은 대가로 모든 걸 잃고 물거품이 된 줄 알았던 인어공주는 생선 취급당하기 일쑤에 '이름만 인어'인 자책녀, 타고난 미모 탓에 왕비의 꾸준한 괴롭힘 속에서 도망자의 신세로 살다가 왕자님의 키스로 새 인생 시작한 줄 알았던 백설공주는 건강한(?) 난쟁이들을 그리워하는 욕정녀로 등장한다.

 왼쪽부터 욕정녀 백설공주(최유하)와 평민출신 물욕녀 신데렐라(전역산) 그리고 이름만 인어인 자책녀 인어공주(백은혜)
 왼쪽부터 욕정녀 백설공주(최유하)와 평민출신 물욕녀 신데렐라(전역산) 그리고 이름만 인어인 자책녀 인어공주(백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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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삼공주 중 유일하게 평민출신으로 전 세계 소녀 독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온 신데렐라는 계모와 언니들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으며 착하게 살다 극적으로 만난 왕자 덕분에 인생역전한 줄 알았더니, 왕자가 파산하자 이혼한다. 더 돈 많은 왕자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물욕녀 신데렐라의 변심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적절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대사를 찾지 못했다. 대사는 이렇다. "유리구두에 차압 딱지 붙여봤니?"

객석을 막 빠져나오는 관객들에게 무엇이든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를 꼽으라면 십중팔구는 '끼리끼리'를 택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뜨그덕 뜨그덕'과 '끼리끼리' 사이에서 적잖은 고민을 했을 줄 안다.

본인 역시 필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끼리끼리'에 한 표를 던졌다. 사실 '끼리끼리'는 달콤한 멜로디는커녕 아름다운 노랫말을 가진 것도 아니다. 허세 작렬인 금발 왕자 1,2,3의 넘버 <끼리끼리>는 재미난 가사와 반복적인 후렴구, 입에 쉽게 달라붙는 중독성 있는 선율이 특징인 곡이다.

 허세는 작렬하나 감수성만은 충만한 금발 왕자1,2,3(왼쪽부터 우찬, 전역산, 송광일)
 허세는 작렬하나 감수성만은 충만한 금발 왕자1,2,3(왼쪽부터 우찬, 전역산, 송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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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앞서 소개한 <돈을 쓰면 마법이 일어난단다>에 이어 "변하지 않는 세상의 법칙, 사람들은 끼리끼리 만나"의 노랫말은 그저 웃어넘기자니 어딘가 석연찮고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다고 보기엔 약하다. 바늘 끝으로 스리슬쩍 콕 찌르고 지나가는 정도의,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도 않는 불편함이야말로 뮤지컬 <난쟁이들>이 가진 미덕인 셈이다.

또 다시 사랑을 믿고 기꺼운 마음으로 희생을 마다치 않는 인어와 "절대 가장은 되지 말라"던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과 달리 가장이 되고자하는 찰리,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 사느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모른 척해 온 백설공주와 그녀를 위해서라면 누구보다 크고 용감해질 수 있는 진짜 사나이 빅은 '끼리끼리'의 만남을 거스르고, '해피엔딩'의 중압감에서도 벗어난다.

모험을 마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찰리는 말한다.

"영원할 순 없지만 이 순간은 웃을 수 있잖아. 내가 바라는 엔딩이란 처음부터 없었는지 몰라."

찰리는 모험을 통해 모두의 해피엔딩이 꼭 자신의 해피엔딩은 아님을 깨닫는다. 해피엔딩은 물론 좋다. 그러나 내가 진정 원하는 해피엔딩이 아니라면 제 아무리 해피엔딩이라도 새드엔딩이 되는 건 시간문제, 그게 뭐든 우린 저마다의 특별한 엔딩을 '뜨그덕 뜨그덕' 찾아나서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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