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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0416 2014년 4월 16일 이후,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매년 봄이 오면, 벚꽃이 만발하면 세월호를 떠올릴 것이다. 1년이 지나도록 시신조차 찾지 못한 9명과 잃어버린 자식을 안아볼 기회조차 박탈당한 어머니들을 떠올릴 것이다. 세상에 어떠한 명사로도 표현 할 수 없는 슬픔을 온몸으로 껴안고 있는 이들을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봄'의 또 다른 말은 '세월호'가 될 것이다.
▲ 피에타 0416 2014년 4월 16일 이후,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매년 봄이 오면, 벚꽃이 만발하면 세월호를 떠올릴 것이다. 1년이 지나도록 시신조차 찾지 못한 9명과 잃어버린 자식을 안아볼 기회조차 박탈당한 어머니들을 떠올릴 것이다. 세상에 어떠한 명사로도 표현 할 수 없는 슬픔을 온몸으로 껴안고 있는 이들을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봄'의 또 다른 말은 '세월호'가 될 것이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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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현지시각) 아직 동이 트기 전, 독일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있는 이수빈씨는 남편과 새벽부터 짐을 꾸렸다. 그녀가 사는 곳에서 베를린까지는 600km. 기차로만 꼬박 5시간 30분이 걸린다. 말하자면, 서울에서 해남 땅 끝 마을까지 가는 거리보다 더 먼 셈이다. 이토록 먼 길을 마다않고 이수빈씨가 베를린으로 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베를린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베를린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 풍경
 베를린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 풍경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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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직접 보고,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왔어요. 기사나 인터넷을 통해서 세월호 1주기 집회에 대한 것을 볼 순 있지만 직접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함께 있으니 가슴이 뛰어요."

사실 내가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년 전 '국정원 대선개입, 대선 부정선거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베를린 집회에서도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가 원하는 것은 똑같았다.

그것은 '진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실'을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우리는 사실을 넘은 '진실'을 정부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다.

베를린의 브란덴브르거투어(Brandenburger Tor) 앞에서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자유발언이 진행되었다.

"여러분! 지금 서울에서는 경찰들이 유가족들을 연행했답니다."

마이크를 잡은 누군가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자 몇몇 사람들이 탄성을 내쉬며 고개를 떨어드렸다.

"새벽 5시에 출발해 6시간 운전해 왔어요..."

또 다른 한켠에는 회색빛 단발머리의 여성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이름은 임혜지. 재독 문화재 건물 전문가이자 작가인 그는 뮌헨에서 차를 빌려서 뜻이 같은 6명의 사람들과 이번 집회에 왔다고 한다.

"새벽 5시 반에 출발했어요. 6시간 넘게 운전해서 왔어요.(웃음) 세월호 참사 이후 뮌헨에서 지금까지 총 10차 추모집회도 진행했었고요. 오늘을 위해서 노란리본도 만들어왔어요."

뮌헨의 세월호 추모집회는 처음에는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회를 거듭할 수로 참여자 수가 줄어들었고 10차 추모집회 때는 15명 정도가 조촐하게 모였다고 한다.

"저희 집회에 가장 젊은 사람이 40대이고 많게는 60대도 있어요. 뮌헨 추모집회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없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SNS도 잘 못하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건 서명운동밖에 없지만요. 사람이 줄어들어서 힘이 빠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멈출 순 없잖아요. 지난 겨울 동안 춥기도 했고,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해왔던 것처럼)그대로 하자고 사람들과 결정했어요. 포기하지 말자고요."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종이를 베를린 추모집회 참가자들이 들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종이를 베를린 추모집회 참가자들이 들고 있다.
ⓒ tsukasa ya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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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동포들의 공동행동 '세월호 인양하라'

뮌헨이 그랬듯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베를린에서도 지속적으로 '세월호를 기억하는 베를린 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추모집회를 진행해왔다. 1년 동안 매회 집회를 준비해온 영화감독 임선아씨를 만나봤다.

"이번에는 베를린 추모집회만 아니라 일본 도쿄를 시작으로 전 세계 해외동포 릴레이 추모집회를 하고 있어요.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중국 등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함께 하고 있어요. '유가족과 끝까지 함께 한다'이게 저희 목표예요. 올해만 1400여 명, 작년까지 합해 총 5000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고요."

 전 세계 해외동포들이 진행하는 릴레이 세월호 추모집회를 알리는 홍보물
 전 세계 해외동포들이 진행하는 릴레이 세월호 추모집회를 알리는 홍보물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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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집회를 준비하느라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털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아주 느슨한 형태의 모임이에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이요. '세월호를 기억하는 베를린 행동'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요. 매 집회 때마다 영화하는 사람은 영상을 찍고, 사진을 하는 사람은 사진을 찍죠.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를 하고, 음식을 잘하는 사람은 요리를 해주기도 하고요. 누구든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하고 있어요."

마침 양혜리씨는 이날 집회 한켠에서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집회 중심부에는 그가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했던 이 프로젝트에는 독일 사람들을 물론 베를린 브란덴부르크투어에서 만난 각양각국의 사람들이 참여해왔다.

"지금까지 총 128명의 사람들이 참여했어요. 세월호 희생자 수인 304명까지 사진을 찍는 게 목표예요. 처음에는 그저 애도하는 것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저는 사진을 공부하니까 사진을 찍어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그 외에 집회 참석자 중에는 작가 홍성담씨도 있었다. 베를린 NGBK에서 열리기로 했던 미술전시에 홍성담씨에 작품을 운송해주기로 했던 한국 내 해운회사가 운송계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번에 베를린에 와야 해서 서울에서 진행됐던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에 참여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집회에 꼭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와보니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작품 운송 취소로 아주 난감했는데 새로운 마음으로 현지에 와서 '세월오월' 외 몇 점을 다시 작업했는데, 오히려 한국에 있는 제 작품들보다 더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습니다."

홍성담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베를린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도 끝이 나고 있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의 1년이 되는 시간도 흘러가고 있었다.

세월호 1주기 맞아, 참사 다시 조명한 외신들

참사 이후, 1년 동안 <슈피겔(Der Spiegel)>외에 다양한 독일 언론들도 잊지 않고 간간이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내용이나 세월호 인양 진행과정에 대해 보도했다. 특히 지난 4월 16일, 독일국제 방송인 'DW'(Deutsche Welle)는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장문의 기사를 실기도 했다.

이 기사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1년 동안 자식을 잃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삶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및 조사의 투명성이 얼마큼 부족한지를 다뤘다. 또 국민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월호의 인양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온라인 신문인 <데어 스탄다드(derstandard)>는 사진가 김홍지씨가 세월호 유가족들과 희생자들의 방을 촬영한 사진(아이들의 방)과 희생자들을 기억할 수 있는 물품들을 매우 상세하게 서술하는 데 지면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결국 나는 이 기사를 보다 울음을 터뜨리곤 말았다. 나의 나라의 참사에 대해 그리고 유가족들의 힘들고 기나긴 투쟁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하는 외신들의 기사를 읽을 때마다 울컥하긴 했었지만 <데어 스탄다드>의 이번 기사는 특히 더욱 더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기사에는 단원고 희생자들의 방이 찍힌 사진마다 유가족들이 남긴 말을 일일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어로 된 단어 하나하나를 읽어내려 갈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이 기사를 읽으며 울컥한 것은 나뿐이 아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슬프다', '파괴된 삶은 희생자뿐만 아니라 남겨진 부모들 삶도 그러하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한 남성은 "아빠가 된 후로 이러한 기사를 읽는 것이 힘들다, 이러한 참사를 읽으니 나의 분노와 공포가 더욱 높아진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데어 스탄다드> 관련기사 보기).

이처럼 세월호 참사의 민낯을 본다면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누구라도 분노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분이 있는 듯하다.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실도 알려주지 않고 해외순방을 떠나신 그 분 말이다. 대한민국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세월호가 차가운 바다 속에 있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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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공미술가로 활동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연구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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