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무한도전> <런닝맨>. 각각 KBS, MBC, SBS 지상파 3사를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어떻게 치열한 예능판에서 살아남아 오랫동안 시청자의 지지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우선 제작진의 기획과 연출력, 출연진의 역량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나 더 꼽는다면 프로그램 포맷의 차별성이다. 여행, 끝없는 도전, 추격전. 포맷은 단번에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다. 이들과 달리 모호한 정체성 탓에 추락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KBS 2TV <인간의 조건>은 지금은 CJ E&M으로 이적한 나영석 PD가 KBS에서 근무하던 2012년 11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4주 파일럿 방영 뒤 2013년 1월부터 토요일 저녁 11시에 정규 편성되었다.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서 누리는 편리함을 하나씩 제한당한 출연자를 일주일 동안 관찰하는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KBS 2TV <인간의 조건2> 출연진.

KBS 2TV <인간의 조건2> 출연진. ⓒ KBS


정규편성 초기에는 10%대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 이하 동일)을 기록하며 토요일 심야 예능 프로그램으로 정착했다. 시즌1은 1기와 2기로 구분할 수 있다.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 6명으로 1기를 시작해 여성 특집 이후 남성 편과 여성 편을 번갈아 방영하다 2014년 5월부터 2기가 시작되며 남성 출연자가 소폭(조우종, 개리, 김기리) 바뀌었다.

3년째를 맞이한 지난 1월에는 <인간의 조건2>로 이름을 바꿔 달고 새로운 출연자들(윤상현, 은지원, 허태희, 봉태규, 현우, 김재영)과 변화된 포맷으로 돌아왔다.

이전 시즌과 가장 큰 차이는 숙소가 서울 시내가 아닌 파주에 있는 낡은 황토집으로 바뀐 점이다. 개그맨들이 주축이던 출연자들이 배우들로 바뀌었고, 1주일 동안 진행되던 체험이 2박 3일로 줄었다. 매번 새로 제시되던 조건들 외에 기본으로 지켜야 하는 조건으로 '5無라이프'(자가용 금지, 인터넷 금지, 휴대전화 금지, 1kg 이하 쓰레기 배출, 1인당 하루에 5000원 소비 제한)가 추가됐다.

대세 프로그램의 흉내로 자기복제

<인간의 조건2>는 1월 3일 첫 방송 시청률 6.4%를 기록한 뒤 계속 떨어져서 3월 28일 12화가 방영될 때는 3.3%로 반 토막이 났다. 저조한 성적은 새로운 포맷이 자기복제에 그친 결과다. 5無라이프 과제들은 시즌1 초반에 수행했던 미션 5가지를 모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1화부터 5화까지 이어진 5無라이프 적응기에선 왜 출연진이 폐허 같은 황토집에서 살아야 하는지, 왜 다섯 가지 문명의 이기를 제한당해야 하는지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 외에 주어지는 미션도 지난 시즌 것을 답습하고 있다. 6화부터 2주씩 수행하는 미션도 낯이 익다. 물 아끼기, 헌옷 모아 제3세계에 기부하기, 건강 검진과 힐링 체험, 책과 가까워지기 역시 시즌1 초반에 좋은 반응을 얻었던 아이템을 재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KBS 2TV <인간의 조건2> 12회의 한 장면

KBS 2TV <인간의 조건2> 12회의 한 장면 ⓒ KBS


제작진도 자기 복제를 의식했는지 변화하려는 노력은 보였다. 그러나 그 변화들조차 어디에서인가 본 듯했다. 무작정 시작했던 황토집 생활은 SBS <정글의 법칙> 냄새가 난다. 나이가 제일 많은 윤상현부터 막내 재영까지 첫 편부터 억지스러운 형제애를 과시하는 모습은 김병만 부족을 황토집으로 옮긴 것 같다.

출연진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미션을 수행했던 지난 시즌과 달리 <인간의 조건2>에는 일상이 없다. 일단 황토집에 도착하면 미션 수행에만 몰두하는 출연진의 모습은 정선 골짜기에서 제작진이 원하는 요리를 만들던 tvN <삼시세끼>의 모습과 같다. 여섯 남자가 팀을 나눠 여행을 떠난 뒤 힐링 음식을 먹고 활력 충전 체험을 하는 모습은 은지원이 다시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을 찍는 것 같다.

이미 KBS의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표절 논란에 시달렸다. MBC <나는 가수다>와 KBS 2TV <불후의 명곡>, MBC <아빠! 어디가?>와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 tvN <꽃보다> 시리즈와 KBS 2TV <마마도> 등 타 방송사 프로그램들과 닮은 프로그램들이 많다.

고의적인 표절이든, 시청자의 오해든 표절 논란은 제작진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조건2> 제작진은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방법을 선택했다. 당장 급한 시청률을 의식했으리라.

예능의 생명은 독창성

 KBS 2TV <인간의 조건2> 3회의 한 장면

KBS 2TV <인간의 조건2> 3회의 한 장면 ⓒ KBS


<1박2일>은 여행 예능 프로그램의 효시다. 시즌1, 2, 3을 거치며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이후 방송된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무한도전>은 매주 방영을 거듭하며 한국 예능의 역사를 쓰고 있다. 리얼 예능의 시작을 이끌었고 예능에 장기프로젝트 방식을 도입했다. 처음으로 방송사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예능을 꼽히게 만든 프로그램이다.

<런닝맨>은 랜드마크를 찾아 본격 추격예능을 추구하는 포맷을 꾸준히 유지했다. 방송 초기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현재는 예능 한류를 이끌고 있다. SBS는 중국판 <런닝맨>을 성공시킨 뒤 중국지사 설립까지 추진하고 있다.

반면 3년차를 맞이한 <인간의 조건>은 생사의 기로에 섰다. KBS는 심야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투명인간>을 4월 1일 폐지했다. 1%P 차이로 <투명인간>을 앞서고 있던 <인간의 조건>이 그 자리로 옮겨 편성될 것이라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해결책은 방송시간 변경이 아니다. 시청자도 알고 제작진도 알고 있다. 떨어지는 칼을 맨손으로 잡기보단 피해야 한다. 자기 복제와 따라 하기를 멈추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조건2 무한도전 삼시세끼 1박2일 정글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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