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블레드 호수에 비친 블레드 성과 눈덮인 줄리안 알프스 산맥
 블레드 호수에 비친 블레드 성과 눈덮인 줄리안 알프스 산맥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130m 절벽위에 세워진 블레드 성
 130m 절벽위에 세워진 블레드 성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1 

둘째딸 주리가 파리에서 공부하던 2011년 12월 짧은 방학을 맞아 동유럽을 여행하고 여행기를 보내주었습니다.

그중의 한 곳이 슬로베니아의 블레드(Bled)였습니다. 딸은 그곳을 '평화'라는 추상적인 단어의 구체적인 모습을 만난 것 같다'라고 묘사했습니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묘사에 누구도 시비하지 않는 곳, 그 나라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섬이 있다는 곳이란다.

 2011년, 블레드를 방문한 딸이 찍어 보내준 블레드 성
 2011년, 블레드를 방문한 딸이 찍어 보내준 블레드 성
ⓒ 이주리

관련사진보기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딸이 준 용돈으로 '평화롭다'는 형용사가 아마 그곳에서 비롯되지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라 그곳으로 딸의 발길을 따라 갔습니다.

잘츠부르크 인근,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 오스트리아지역에서 일박을 한 우리는 슬로베니아의 블레드를 향해 남하했습니다. A10과 E61을 타고 3시간 30분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좌우로 눈 덮인 줄리안 알프스(Julian Alps)의 영봉들이 함께 동행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부터 블레드까지 계속 이어지는 줄리안 알프스줄기
 오스트리아에서 부터 블레드까지 계속 이어지는 줄리안 알프스줄기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줄리안 알프스 사이를 달리는 긴 시간동안 나는 제1차세계대전의 줄리안 알프스의 이탈리아전선을 생각했습니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를 통해 익숙한 전선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 자원으로 적십자 야전병원 구급차 운전병이 되어 이탈리군에 배속됩니다. 

줄리안 알프스의 이탈리아전선은 현재의 코바리드(Kobarid)로 블레드에서 불과 90km남짓 서쪽에 위치한 산맥 반대쪽입니다. 

헤밍웨이 열아홉 나이. 종군 중 다리에 중상을 입고 밀라노 육군병원에 입원했다가 휴전이 되어 1919년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자전적 소설이 그를 세계적인 작가의 명성과 부를 안겨준 <무기여 잘 있거라>입니다. 밀라노 병원 입원당시 한 간호사와 나눈 사랑이 이 소설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헤밍웨이 특유의 간결하고 건조한 하드보일드체로 묘사한 줄리안 알프스 산맥 너머의 참상과는 너무나 다른, 딸이 '평화'라는 추상적인 단어의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 그곳, 블레드에 닿았습니다.

 마침내 블레드 호수에 닿았습니다.
 마침내 블레드 호수에 닿았습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눈을 이고 있는 줄리안 알프스 아래의 호수입니다.
 눈을 이고 있는 줄리안 알프스 아래의 호수입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2

블레드의 세 가지 진주로 뽑히는 곳이 블레드 호수와 그 호수의 작은섬 위의 성 마리아 성당, 호수 건너 130m 절벽 위의 블레드 성입니다.

 블레드 성위에서 본 블레드 호수와 오른쪽의 섬입니다.
 블레드 성위에서 본 블레드 호수와 오른쪽의 섬입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이 세 곳은 각각으로도 충분히 빛이 나지만 서로가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해서 한 폭의 완벽한 동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허니문 여행지로 꼽히곤 합니다. 

우리부부는 결혼기념여행이었지만, 마음만은 허니문처럼 들뜬 마음으로 블레드 성으로 들어섰다.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긴 곳은 성입구쪽의 블레드 성 금속활자 인쇄공방이었습니다.

 블레드 성안의 금속활자 인쇄공방.
 블레드 성안의 금속활자 인쇄공방.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딸의 여행기에 남겨진 그곳이었습니다. 털조끼를 입은 인쇄공이 있다고 했었는데 털조끼가 흰색 가운으로 바뀌어있었습니다. 마음씨 고운 인쇄공은 저의 온갖 질문에 부드럽고도 자세하게 답했습니다. 

"이것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인쇄기 모양 그대로의 오래된 복제품입니다. 그 때 그 방식 그대로 수제종이에 인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서를 인쇄하는 대신 엽서나 책갈피, 기념일 카드 등을 방문객들의 이름을 넣어 금속활자로 인쇄해주고 있습니다. 

1450년 인쇄공장을 만들어 '구텐베르크 성서'를 찍어내던 당시의 인쇄기는 포도를 짜는 나사 압착기를 응용해 인쇄가 어려운 거친 종이에 큰 압력을 주어 글자가 찍힐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오늘날의 '인쇄기'의 영문 'press'는 바로 이 압착기(press)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혼기념일 카드를 주문했습니다. 블레드성이 묘사된 몇 가지의 샘플디자인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마음에 드는 수제종이를 골랐습니다. 

인쇄공은 우리가 주문한 문구와 이름을 알파벳 활자로 골라 인쇄판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결혼기념일인 3월 1일을 슬로베니아어로 하면 어떨지를 물었습니다. 

블레드성의 조각판과 문선한 활판을 인쇄기 위에 나란히 놓고 쐐기를 쳐서 사개가 물러나지 않게 단단히 고정했습니다.

 문선을 마친 인쇄판
 문선을 마친 인쇄판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드디어 인쇄공이 골고루 잉크를 먹이고 고른 종이를 얹었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최종적으로 우리 부부에게 인쇄기의 레버를 돌리도록 했습니다. 나사를 풀고 종이를 꺼내자 이름과 문구가 선명하게 찍혀 나왔습니다.

 잉크를 먹이고
 잉크를 먹이고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종이를 얹었습니다.
 종이를 얹었습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프레스기의 레버를 아내에게 돌리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프레스기의 레버를 아내에게 돌리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Happy 30th wedding anniversary
Lee Ansoo & Kang bokja
Bled-Slovenija, 1. marec 2015"

 마침내 찍혀 나온 인쇄물
 마침내 찍혀 나온 인쇄물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그는 리본과 밀랍도장으로 최종 장식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붉은 밀랍을 녹여서 아내에게 스탬프를 찍게 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붉은 밀랍을 녹여서 아내에게 스탬프를 찍게 했습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오래된 고성의 공방에서 수제종이에 15세기의 구텐베르크 인쇄방식으로 아내와 나의 오랜 동행문서를 만들었습니다.

 최종 완성된 결혼기념일카드
 최종 완성된 결혼기념일카드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줄리안 알프스 너머 1차 대전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군 격전지에서의 야만과 희생은 잊혔고, 우리 부부가 35년간의 연애와 결혼에서 대립했던 냉랭한 대립들도 잊혔습니다.

 푸른 호수와 고성, 그리고 줄리안 알프스의 조화
 푸른 호수와 고성, 그리고 줄리안 알프스의 조화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블레드성, 구텐베르크인쇄기, 그리고 우리 부부의 동행을 증명하는 수제문서……. 지나온 길이 아무리 고단해도 오래된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남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삶의 다양한 풍경에 관심있는 여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