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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19코스 - 서우봉쉽터
 제주올레 19코스 - 서우봉쉽터
ⓒ 강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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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ː다][명사]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 또는 그런 말.

사전 속 '수다'의 정의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 '할일 없는 여자들의 시시껄렁한 일상'으로 치부됐다. 수다의 지위를 '소통과 치유'의 수단으로 격상시킨 건 여성학자이자 방송인인 오한숙희씨다.

자칭 '전국구 수다응원 행상아줌마' 오한숙희씨와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수다가 필요한 40대~60대 여성들을 위한 2박 3일 간의 제주 여행 '온리유'를 연다(2015년 4월 21일~23일). '온 세상의 이유는 바로 당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번 여행의 핵심 키워드는 '수다'와 '제주 아주망(아주머니)'이다. 제주올레 19코스를 걸으며 제주 아주망들과 고사리를 꺾고, 뭉게죽(문어죽)을 만들어 먹는다. 해가 지면 오한숙희씨와 친구처럼 실컷 수다를 떨며 깔깔 웃을 수 있다. 그래서 '육아와 살림에 지쳐 떠나고 싶은 아내, 엄마, 당신을 웃게 만드는 선물 같은' 여행이다.

여자들의 수다, '속풀이' 여행을 기획하다

'온리유' 프로그램은 '여자들의 수다'로부터 시작됐다. 스스로 힐링이 필요해 제주에 정착한 오한숙희씨와 올레길을 운영·관리하는 (사)제주올레 안은주 사무국장이 만나 수다를 떨었다. 여성이 나이가 들면 자식이나 남편보다는 친구와 함께 수다를 떨며 하는 여행이 가장 마음 편하다는 경험담도 나왔다. 그러다가 중년 여성을 위한 힐링, 일명 '속풀이' 여행을 기획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마침 제주올레길 주민행복사업의 일환으로 제주의 이미지와 걸맞은 차별화된 소규모 단체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했다. 이들의 수다는 자연스럽게 회의로 이어졌고, 마침내 '온리유'가 탄생했다.

2박 3일 간 프로그램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프로그램 기획회의에서 (사)제주올레 직원들은 그간 올레꾼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제주 여행 이야기를 나눴다. 올레꾼들이 올레길을 걸으면서 즐거웠고, 또 다시 찾게 되는 것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때문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길을 걸을 때 먹으라고 쥐어준 감귤 하나, 올레꾼이 건넨 인사에 수줍게 답해주는 미소 한 번이 이들을 감동시킨 것.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도 마을 주민과 여행자들 사이에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주망, 밥 먹엉 갑써~'가 기획됐다.

뭉게죽(문어죽)
 뭉게죽(문어죽)
ⓒ (사)제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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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망, 밥 먹엉 갑써~'는 '온리유'의 둘째 날 점심 프로그램이다. 당초 계획은 참가자들을 위해 마을 주민들이 직접 제주 토속 음식을 점심으로 준비하는 것이었다. 문득 참가자들이 40대~60대 여성이라는 점을 떠올렸다.

"분명히 음식을 먹어보면 주부 근성이 발휘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물어볼 텐데..." 참가자들이 주민들과 함께 아예 처음부터 음식을 만드는 시간을 갖게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함께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만큼 사람을 가까워지게 하는 것이 없다는 것도 이유가 됐다.

어떤 마을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할까 생각하던 중 '북촌리'가 떠올랐다. 북촌리는 지난해 가을 열린 '2014 제주올레걷기축제' 셋째 날, 제주올레 19코스에서 올레꾼들의 점심 먹거리를 판매했던 마을이다. 제주도민도 맛 볼 기회가 잘 없다는 뭉게죽(문어죽)을 맛있게 끓여낸 '검증된' 쉐프들이다. (사)제주올레 직원들은 한 걸음에 오진영 북촌리 부녀회장님을 만나러 갔다.

2014 제주올레걷기축제 - 북촌리
 2014 제주올레걷기축제 - 북촌리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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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설명을 들은 오진영 부녀회장은 '아주망, 밥 먹엉 갑써~'는 물론이요, 걷는 것부터 같이 시작하겠다고 적극 나섰다. 오 회장은 "같이 뭉게죽도 쒀먹고 하려면 올레길부터 같이 걸으면서 친해져야지, 올레길 걸으며 고사리 꺾는다는 데 고사리가 많은 곳을 우리가 잘 알아"라며 "고사리부터 같이 꺾고 다녀야 친구지"라고 했다.

오 회장이 이렇게 (사)제주올레가 기획하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인 데는 이유가 있다. 올레길이 생기기 전 북촌리는 여행객이 잘 찾지 않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은 제주 4.3사건 때 가장 희생이 컸던 곳으로 마을 주민 10분의 1이 희생됐다. 그런 마을에 올레길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찾아오자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됐다.

지난해 제주올레걷기축제 때 북촌리 주민들은 아침부터 내리는 비를 원망했다. 방문객이 많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올레꾼들이 찾아와 뭉게죽을 맛있게 먹어줬던 게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 당시 뭉게죽은 축제 먹거리 중 최고 인기 메뉴였다. 축제를 찾은 올레꾼들이 일부러 뭉게죽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아주망, 밥 먹엉갑써~'의 메뉴로 뭉게죽이 선택된 이유이기도 하다.

엄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 온리유

제주올레 19코스 북촌포구
 제주올레 19코스 북촌포구
ⓒ 강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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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면 특별한 일정 없이 숙소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일반 단체 여행과 달리 특별한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이른바 '힐링 수다' 세션. 여성의 마음을 헤아리는 방송인으로 잘 알려진 오한숙희씨는 이 세션을 통해서 그동안 살림과 육아에 응어리진 여성들의 마음을 수다로 풀어내겠다고 한다. 중년 여성들의 처지와 고민이 바로 오한숙희씨 본인의 얘기라는 점에서 본인을 위한 '힐링 수다'이기도 하다.

경기도 고촌에서 18년간 살았던 오한숙희씨는 우연히 걸었던 제주 올레길이 좋아서 6개월 전 가족들을 전부 데리고 제주도로 '올레이민'을 왔다. 오한숙희씨에게 '수다'는 "자기의 솔직한 내면적 감정을 표현하는 어법"이다. 논리나 이론이 아니라 감정이고,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자신의 얘기라는 것이다.

"제 스스로도 갱년기가 오면서 우울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중년 여성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지금까지는 남의 얘기나 가족 얘기만 했지 않나. 남자들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서로 공감하면서 새로운 힘을 얻고, 삶의 지혜도 얻는다. 그런데 여성들은 그럴 기회가 없다. 그리고 혼자 하면 잘 못한다.

특히 20~30대 사이에서는 '엄마를 부탁해'가 화두였는데 실제로 엄마를 믿고 맡길 곳이 없다. '엄마가 달라져야 하는데...'라면서 맨날 죄책감만 느끼고, 짜증나고,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일 좋은 게 우리 엄마가 셀프서비스로 행복해졌으면 하는 거 아닌가. '온리유'는 바로 그런 프로그램이다. '온리유'에 다녀가면 이제 '엄마가 달라졌어요'가 될 것이다."

'온리유' 참가 모집 공고가 나가자 좋은 프로그램이 개발됐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반면 중년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에 아쉬움을 피력하는 중년 남성들도 많았다. 올해 79세 남성인 한 올레꾼은 (사)제주올레 사무국으로 전화를 걸어와 "나이는 80세에 가깝지만 올레길을 걷는 것도 좋아하고, 음식에도 관심이 많아 꼭 참가하고 싶다"고 했다.

육아와 살림을 하는 여성들만 지친 게 아니라며, 세상에 지친 중년 남성들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투정이 이어졌다. (사)제주올레는 '온리유'를 시범 운영한 후 참가자와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아 남성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기획할 예정이다.

'온리유'는 걷기 여행이 가능한 여성이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40대~60대 여성을 주요 대상으로 기획하였으나 참가에 따른 나이 제한은 없다. 일반 참가비는 제주 입도에 필요한 항공 및 선박료를 제외하고 1인 35만 원으로 선착순 20명을 모집한다.

제주올레 홈페이지에서 4월 3일(금)까지 신청하면 된다. 씨월드고속훼리(1577-3567)를 이용하는 참가자에게는 목포/해남↔제주 승선권 50% 할인 혜택도 제공된다(문의: 제주올레 콜센터 064-762-2190).


태그:#제주올레, #온리유, #오한숙희, #북촌리, #뭉게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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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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