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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대 성공입니다~
▲ 찾아가는 미니도서관입니다~ 시작부터 대 성공입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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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 때문에 사람들의 움직임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습니다. 아침마다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에 잠긴 사람들도 많을 테지요. 새로운 학년이 되고, 처음 직장에 나가는 사람들도 아직은 생소하고, 낯설기만 한 그런 날들입니다. 아이들이 개학을 하고 나면 엄마들의 도서관 나들이가 좀 수월하지 않을까 해서 내심 기대도 해보지만 생각만큼이나 그렇게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아직은 뜸합니다.

그래도 도서관은 주어진 시간에 문을 열고, 항상 변치 않는 마음으로 그들을 기다려야 하겠지요. 올해는 무슨 일을 좀 해볼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도서관 활동 선생님들과 의견이 일치되었습니다. 그래서 직장인을 위한 찾아가는 맞춤책서비스를 해보자 했습니다. 시발점은 저희 울산 동구청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찾아가는 미니 도서관'이었지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첫 시행 일자에 맞춰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달에 두 번 300권의 책을 승용차에 실어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구청까지 이동을 해야 하는 그야말로 저희 도서관에서는 큰 행사였습니다.

저의 '맞춤책서비스' 계획에 자원활동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더 힘을 발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행사에 반신반의한 구청직원들도 많았을 겁니다. 직접 직장인들이 잘 읽을 만한 책을 목록으로 공지사항에 띄우고, 과의 담당자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며칠간 홍보를 했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책을 준비, 게시판을 만들었습니다. 여러가지 필요한 물품들들 챙겼습니다.

구청 출입구 모퉁이에 이렇게 미니도서관을 준비해보았습니다~
▲ 이제 미니도서관 간판 걸고 도서관 문 엽니다~ 구청 출입구 모퉁이에 이렇게 미니도서관을 준비해보았습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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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올해 첫 도서관 나들이가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직접 몇 시간을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저 대신 도서관을 지켜 줄 자원활동가 샘들은 오히려 저보다 더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빠진 책이 있나 없나 체크하고, 물품들을 다시 챙겼습니다.

"샘들~내 땜에 마이들 고생했심더~마아~오늘 잘 돼야할낀데~"
"자~알 안 되겠는교~그동안 이래저래 샘도 맘고생 했을낀데~응원할끼요~"
"아이고~암튼 샘들 없으믄 내가 뭘 하나 할까나요~다들 고맙심더~자~일단 물건을 실을까요~"

아직 이른 점심시간인데, 과에서 계장님이 나오셔서 오늘 고생할 자원활동가 샘들을 위해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사 주신다고 오셨습니다. 그렇게까지 생각 안 해줘도 될텐데, 하는 마음으로 못 이기는 척 계장님을 따라가 정말 든든한 국밥 한 그릇 먹고, 차에 책을 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호응을 하고, 책을 빌려가게 될지 궁금했습니다. 나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홍보를 했긴 하지만 사실 걱정이 좀 더 됐습니다.

구청 본관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책꽂이에 책을 정리했습니다. 이젤 위에다 예쁘게 준비해온 홍보물 게시판을 올리고, 책상 위엔 자원활동가 샘들이 직접 만든 책상보도 씌웠습니다. 운영시간이 아직 이르긴 했지만 저를 아는 몇 분의 직원들은 미리 나와서 격려해 주었습니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일부러 도서관을 찾아가기 힘들었다며 좋은 생각이고, 고생할 것 같다며 따뜻한 격려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책 추천릴레이도 한번 생각해 봐야겠어요~
▲ 구청장님도 책 추천해주셨어요~ 책 추천릴레이도 한번 생각해 봐야겠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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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외부에서 돌아오시던 구청장님도 오셔서 읽어보면 좋을 만한 책도 추천해 주셨습니다. 책 읽을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왕 왔으니 한 권 빌려가고 싶다며 책 한 권 추천해 달라고 하셨지요. 그렇게 첫 출발을 예기치 않게 구청장님이 시작해 주셔서 왠지 대출도서가 많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라믄 책 한 권 빌려가이소~"
"저~어, 책 읽을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없더라도 일단 책을 빌려가믄 읽게 됩니더~"
"그럼 뭐~한 권 빌려볼까요~"

아시는 분이든 모르는 분이든 그렇게 알게 모르게 구청 직원들은 잠시 시간을 내 '미니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생각 같아선 300권보다 더 많고 다양한 책들을 가져와야 하는 건 아닌지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차량이 원활하게 지원이 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고선 도무지 힘들어서 엄두를 못 내니 조금은 그런 부분이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구청 출입구 모퉁이에 미니 도서관 간판(?)을 내 걸고, 도서관 문 연 지 채 한 시간도 안 되어 예상과는 달리 많은 직원들이 책을 빌리러 왔습니다. 의외의 반응에 저도 놀라고, 자원활동가 샘들도 덩달아 놀라면서 신이 나 더 열심히 책도 추천하고, 찾아주고 성심성의껏 했습니다. 꽃샘추위인지 내려간 기온 탓에 손은 시리고, 몸은 피곤했습니다. 그런 모습에 책 빌리러 오는 사람들은 또 따뜻한 차를 한 잔씩 건네고 갔습니다. 생각해주는 마음에 고맙게 잘 마시긴 했지만 사실, 저희들은 번갈아 가며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지요.

미니 도서관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물론 첫 날이어서 그렇겠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었겠지만 예상을 깨고 많이 와 준 구청직원들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아무튼 책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책을 가까이 보여주고, 책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 충분히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샘~오늘~정말 고생했심더~추운날씬데 이렇게 동참해줘서 고맙심더~"
"아이고~우리 사서샘이 더 고생했지예~우리야 사서샘이 하자고 하는 대로 따라 했을 뿐인데요~오히려 샘이 나이든 나를 이렇게 늘 같이 뭐하자고 시켜줘서 더 고마버예~"
"샘들~다 고생했심더~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카니 고맙고, 잘 해 보입시더~담에 일산 바닷가에서 맛난 점심 한 끼 묵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은 분들이 책 빌리러 오십니다~
그래서 예쁜 책갈피도 하나씩 나눠드렸어요~
▲ 양 책갈피도 나눠드려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은 분들이 책 빌리러 오십니다~ 그래서 예쁜 책갈피도 하나씩 나눠드렸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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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도서관 이모님(?)은 제가 뭘 할 때마다 데리고 가면 이렇게 늙은이를 끼워줘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다른 데도 마찬가지지만 도서관 역시 나이가 그리 중요하진 않은데 말입니다. 하고자 하는 열정이 얼마나 있나, 그것 하나면 충분한데 말입니다.

이렇게 '찾아가는 미니 도서관'의 첫 반응은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책을 읽겠다는 마음이 조금씩이나마 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저나 같이 간 자원활동가 샘들에게 더 큰 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지역 내 소외되고, 지리적으로 작은 도서관을 직접 접할 수 없는 곳에서도 이런 미니 도서관이 함께 있을 수 있는 날이 많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구청 직원들과 저와 같은 작은 도서관 사서들의 노력이 필요하고, 또 도서관 자원활동가 분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겠지요.


태그:#찾아가는 미니도서관, #꽃바위작은도서관, #책읽기, #자원활동가,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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