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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1995년 3월 어느 금요일, 그날도 나는 변함없이 퇴근하면서 어린이집에 들러 오후 6시까지 종일반에 있었던 덕이를 데리고 왔다.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오면서 "어린이집에서 오늘은 무엇이 재미있었고, 점심 반찬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친구들하고 놀았니"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덕이의 지능검사 결과가 나온 후부터 늘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덕이를 장애인으로 등록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였다.

솔직한 심정은 장애인 등록을 하게 될 경우 덕이에게 평생 장애인이라는 낙인이 찍힐까봐 염려도 되었지만, 그 이면엔 내 체면 때문에 덕이의 장애인 등록을 머무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주위 사람들이 내게 장애인 조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물론 덕이의 말과 행동에서 이미 일반 아이들의 성장발달과 다르다는 것을 주위에서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머뭇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짓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업어달라'는 덕이에게 나는...

그 날 집에 돌아와 우리는 평소처럼 저녁식사를 하고 씻고 9시까지 TV를 보았다. 덕이를 재우려고 하는데, 오늘 덕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오다가 덕이가 '업어달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덕이는 "고모..."라며 잡고 있던 손을 잡아끌며 업어달라는 신호를 나에게 보냈다. 이에 대한 나의 반응은 "네가 업히고 싶으면 나에게 '고모, 등에 업어 주세요'라고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때 업어줄 거야"였다. 덕이가 자기 의사표현을 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다 보니 그런 말을 불쑥한 것이었다.

덕이가 얼마나 차갑게 느꼈을까. 친구들이 엄마 등에 업혀서 집으로 갈 때 덕이가 부러워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다. 이는 나의 짐작이었고, 덕이가 정말로 무엇을 원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덕이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덕아, 아까 집으로 오면서 너가 나한테 업어달라고 했을 때 내가 업어주지 않아서 섭섭했니?"

덕이가 눈을 깜빡이며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하는 말

"응"
"그랬었구나. 미안해. 덕아~ "

'가만 있어보자. 내가 덕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덕이가 언제쯤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평생 동안 덕이에게 가능할 수는 있을까, 아직은 단어를 하나하나 말할 정도인데, 언제쯤이면 문장으로 자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아∼ 내가 또 잘못했구나, 덕이가 업어달라고 했을 때 업어주면 되는 것을...'

뭔지 모를 덕이의 불편해하는 듯한 표정의 의미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덕이가 많이 답답했겠다 싶었다. 물론 덕이의 생각이나 감정이 거기까지 이르렀는지는 모르지만...

덕이의 언어치료를 시작하다

그래서 "덕아 업어줄게"라며 업어주자 덕이는 참으로 좋아하면서 내 등에서 조용히 잠이 들었다. 이러면 되는 것을 내가 너무 복잡하게 깊이 생각했었던 걸까? 덕이가 내 등에서 잠이 들었음에도 나는 조금 더 업어주고 싶어서 방을 왔다갔다 했다. 그 때 서울대 소아병동에서 근무하던 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 언니는 나에게 덕이의 지능검사를 해보라고 권유해주었고, 덕이의 지능검사 결과를 알게된 후에는 '언어치료하는 곳을 알고 있는데 그곳에서 아이들이 언어치료를 받으면 많이 좋아진다'고 알려주었다. 언어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비용뿐만 아니라 낮에 덕이를 데리고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치료를 다닐 수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당시 언어치료는 일주일에 1회 50분에 8만 원이었다. 한 달에 30만 원 이상이 필요했고, 덕이를 데리고 다닐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미룰 일은 아니었다. 다음 날 언어치료실을 방문해서 구체적인 치료과정과 효과 등을 알아보았다.

나는 비용을 충당할 방법을 고심하던 끝에 시청 광화문에 있는 한 영어학원이 기억났다. 20대 때 나는 그곳에서 아침에 영어회화를 배우고 직장으로 출근했다. 보통 수업시간 30분 전에 도착하던 나는 수업 전에 그곳 직원분이나 아침에 청소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때 청소를 하시는 분은 아침에 딱 2시간(오전 6시~8시)만 하는 시간제 청소를 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내 직장은 영어학원과 도보로 10분 거리였다. 방문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제는 청소를 하기 위해서 방문해야 한다. 한편으로 조심스러웠으나 새벽에 하는 일이고 건물 안에서 하는 일이라고 여기니까 고민은 잠시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와 같은 일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직접 그곳에 방문하여 확인한 결과, 아침에 청소하시는 분이 얼마 전에 그만두었는데 사람을 못 구했다는 것이었다. 이거다 싶어서 그 자리에서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원장님께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이제 언어치료 비용은 해결이 되었으니 덕이를 데리고 다닐 사람이 필요했다. 마침 직장생활하다가 잠시 쉬고 있던 친구가 떠올라 그 친구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내가 덕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일주일에 한번이니까 데리고 다니겠다"고 말했다. 나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친구가 어찌나 고맙던지, 그렇게 덕이의 언어치료는 시작 되었다. 그렇게 덕이의 언어치료를 계기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나의 '투잡'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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