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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이라며 딸내미가 채소며 곡물이며 혼합하여 옅은 죽을 끓여 먹입니다. 꼭 참새가 어미 새에게서 먹이 받아먹듯 잘도 받아먹습니다.
 이유식이라며 딸내미가 채소며 곡물이며 혼합하여 옅은 죽을 끓여 먹입니다. 꼭 참새가 어미 새에게서 먹이 받아먹듯 잘도 받아먹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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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0년 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전도사가 되어 두 번째로 부임한 목회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가 백제의 문화가 숨 쉬는 고도 부여에 있었습니다. 부임한 지 이틀이 지나 첫 번째 주일(일요일)이 되었습니다. 설레는 맘으로 예배를 준비했던 터라 전 성도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좀 들떠 있었죠.

들뜬 마음 가시지 않은 채 예배를 마치고 예배당 밖에서 성도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첫 대면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여성도 등에 예쁜 아이가 업혀있었습니다. 그러나 업혀야 할 정도로 어린아이 같지는 않았습니다. 끔찍이도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수영(가명)이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도 그 아이는 여전히 엄마 등에 있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도, 그 다음 주일도... 참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성도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 아이의 나이가 네 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네 살이나 된 아이를 업어야만 하는 사연도 들었습니다.

아이 성장, 당연하다고요?... 아닙니다

걸을 때가 되었는데도 수영이는 걷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소위 앉은뱅이였던 것이지요. 엄마 등에 업혀야 어디든 갈 수 있는 소녀였던 겁니다. 아이는 해가 지나면서 성장해야 하는데, 수영이는 그러질 못한 겁니다. 하는 수 없이 엄마는 수영이를 업고 다닐 수밖에요. 오늘날 같으면 휠체어라도 이용했을 텐데, 그땐 그게 흔치 않았습니다.

그 교회에서 목회하는 동안 수영이를 위해 많이도 기도했죠. 학교에 들어갈 때쯤이면 걷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 교회를 이임할 때까지 수영이가 걷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이후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영이 소식은 끊겼고요. 아마 엄마는 수영이를 늘 업고 등하교를 시켰을 겁니다.

우리는 아이는 나면 으레 성장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러나 다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건 아닙니다. 제 손자 녀석은 만날 때마다 잘 커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수영이가 떠오릅니다. 제 손자 서준이는 이번에 딸내미와 함께 왔을 때 두 달 만에 보는데 성큼 자라 있었습니다.

이유식을 하면서 볼에 살이 붙어 보기 좋게 통통합니다. 살결도 희고 고운데다 포동포동 하기까지 하니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이쯤해서 야유성 발언을 하고 싶은 대목이란 거 압니다. 뭐, 제가 듣지 못하는 데서니 맘껏 하시기 바랍니다. 임금님도 없는 데서는 욕먹는대요. 뭐.

이유식이라며 딸내미가 채소며 곡물이며 혼합하여 옅은 죽을 끓여 먹입니다. 꼭 참새가 어미 새에게서 먹이 받아먹듯 잘도 받아먹습니다. 얼마나 먹음직스런 모습인지 저도 그 서준이 이유식이란 걸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봤습니다. 퉤퉤! 순식간에 입에서 밀어냈습니다.

왜냐고요? 맛이 없어서요. 그런데 손자 녀석은 그걸 그리 맛있게 먹는 거예요. 맛이 있어 잘 먹는 줄 알았던 건 순전히 이 할배의 착각이었답니다. 제 입맛엔 영 아니었습니다. 밍밍한 게 죽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게,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실은 딸내미도 그리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잘 먹고 잘 자라는 손자... 감사한 일입니다

손자 녀석 서준이의 맨 처음 이유식은 이렇게 묽은 모양이었습니다. 죽이라기 보다는 물에 가까웠죠.
 손자 녀석 서준이의 맨 처음 이유식은 이렇게 묽은 모양이었습니다. 죽이라기 보다는 물에 가까웠죠.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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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손자 녀석이 먹는 이유식입니다. 한결 건더기 있는 죽 모양이 되었습니다.
 요새 손자 녀석이 먹는 이유식입니다. 한결 건더기 있는 죽 모양이 되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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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준이 녀석은 그 밍밍한 이유식을 얼마나 잘 먹는지. 그러니 잘 크지 않겠습니까. 참 감사한 일입니다. 이번에 제 엄마 친정나들이에 동행한 녀석은 몸집이나 키 뿐만 아니라 개인기가 마냥 자라 있었습니다. '스타킹'에 출연해도 되겠더라니까요.

박수치기는 그야말로 명수 수준입니다. '박수치기 명수'라는 게 있다면 말입니다. 또 손자 바보 오버한다고요? 예, 맘껏 야유를 퍼부으세요. 그대도 손자 봐보면 이게 무슨 바보짓인지 감이 올 겁니다. 빨빨거리고 기어가는 녀석을 향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서준아, 박수!"

그러면 여지없이 서준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잽싸게 앉아 박수를 칩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런지 모릅니다. 온 집안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죠. 물론 이때 녀석이 박수를 잘 치게 하는 요령도 있답니다. 저도 60년 만에 어린아이로 돌아가 맘껏 박수를 치는 거죠. 그러면 녀석은 저를 따라 박수를 마구 쳐댑니다.

"서준아, 죔죔! 죔죔!"

이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먼저 죔죔을 해 보입니다. 그러면 따라합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이 개인기가 우리 집에 와 배운 거랍니다. 딸내미가 그래요. 집에서는 누가 그렇게 해주지 않으니까 하지 못했던 개인기라더군요. 그러니까 서준이 녀석이 잘 놀아주는 이 꽃할배를 만나자 개인기 충만했던 거랍니다.

손자 녀석, 개인기의 명수랍니다

서준이가 박수를 맘껏 치며 흥겨워하고 있습니다.
 서준이가 박수를 맘껏 치며 흥겨워하고 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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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서준이가 죔죔을 해 보이고 있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손자 서준이가 죔죔을 해 보이고 있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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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곤지곤지인데 이건 아직 서준이에게 무리인가 봅니다. 거기까지는 안 됩니다. 제가 숙달된 조교로 시범을 아무리 보여 봐도 딴 짓만 한답니다. 다시 박수치기로 돌아가거나, 죔죔을 합니다. 아니면 아예, 개인기 재롱으로 멈췄던 가던 길을 재촉합니다.

그러나 웃음꽃은 여전합니다. 아이가 박수를 치든, 죔죔을 하든, 아니면 가던 길로 다시 기어가든, 온 식구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에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고 아마 저나 제 아내, 그리고 서준이 엄마아빠는 실성한 게 틀림없습니다. 하하하.

그렇지 않고서야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손자 녀석 서준이가 우리 가족의 혼을 완전히 다 빼놓고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도 좋기만 합니다. 그래도 저나 우리 가족의 입가에는 웃음꽃만 만발합니다. 계속 우리 서준이가 이리 재롱둥이로 잘 자라길 기도합니다.

서준이보다 훨씬 늦게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이빨이 났다고 자랑하는 걸 어느 블로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서준이는 9개월이 지나가는데도 아직 이빨 날 기미가 없습니다. 째끔 아주 째끔 걱정입니다. 그러나 이 손자 바보 할배는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게 있으면 그걸 철썩 같이 믿거든요.

'이가 늦게 나면 그만큼 늦게 상하니 좋다'고 어떤 이가 말하던 걸 기어코 기억해 냅니다.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진리를 믿기로 했습니다. '그건 유치가 아니라 영구치 얘기다'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이 손자 바보, 그렇게 믿기로 했으니까요. 하하하.

오늘 손자 녀석 서준이 때문에 무한대로 웃음꽃을 피우고, 무한 긍정적 마인드로 변한 꽃할배 일기는 여기서 마치려고 합니다. 이제 집으로 가버린 서준이 녀석 언제나 이 할배 집에 올 건지 달력에 표시해 놓고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명언 한 마디 적고 마칩니다.

"때로는 기쁨이 미소를 짓게 되는 근원이기도 하지만, 가끔 때때로는 미소가 기쁨을 주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 탁닛한

이유식이 미음에서, 죽으로 바뀌더니 이젠 간식으로 어린이용 과자도 잘 먹습니다.
 이유식이 미음에서, 죽으로 바뀌더니 이젠 간식으로 어린이용 과자도 잘 먹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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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는 손자를 보고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할아버지의 글입니다. 계속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관심 많이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태그:#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 #김학현, #오서준, #재롱, #개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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