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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근래에 들어서는 오빠 생각이 자주 나네요. 그립고요.

1991년 4월, 오빠가 교통사고 후 생사를 헤맬 때는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이제 가족들을 그만 힘들게 하고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을, 말이지요. 그렇게 병상에서 7년을 더 누워 있다가 저와 이별했는데... 지금은 오빠가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정말 착하고 따뜻했던 오빠... 그렇게 떠나고 말았습니다

뒤엉킨 차량들 11일 오전 인천시 중구 영종대교 서울 방향 12-14 km 지점에서 승용차 등 60여중 추돌사고가 발생, 차들이 엉켜있다.
▲ 뒤엉킨 차량들 사진은 지난 2월 11일 오전 인천시 중구 영종대교 서울 방향 12-14 km 지점에서 승용차 등 60여중 추돌사고가 발생, 차들이 엉켜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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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으로 그리고 가장으로 황소같이 묵묵히 일만하고 착했던 오빠, 가끔 무슨 생각을 하실 때면 동그랗고 큰 눈만 깜빡였지요.

큰댁에서 일하는 일꾼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오빠와 동갑이었는데, 설날에는 본가를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 아저씨와 함께 하기 위해 오빠는 어머니가 사주신 설빔을 입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엄마, 그 사람은 설에 집에도 못 가는데 어떻게 제가 설빔을 입겠어요, 나중에 입을게요"라고 말했어요.

그때 저는 어렸지만, 그 말을 듣고 오빠의 마음 씀씀이에 참 감동했어요. 동네의 다른 사람들은 큰댁의 일을 도와주는 분께 일꾼이라고 놀리기도 했는데 말이지요.

동생들을 챙겨주는 오빠의 마음도 참으로 따뜻했었습니다. 제가 국민(초등)학교 1학년 말쯤, 추운 겨울날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 저에게는 장갑이 없었습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장갑을 못 낀 저에게, 오빠는 어머니가 장남인 오빠에게만 사주었던 털장갑을 나에게 끼워주었지요.

그리고는 제 가방을 오빠가 들고 학교까지 들어다 주었던 기억들이 떠올라요. 또 떠오르는 건 노래에 관한 겁니다. 오빠가 가장 좋아했고, 유일하게 불렀던 '얼굴'이란 노래예요.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따라 피어났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 돌다 가는 얼굴

어느덧 20년이 흘렀네요. 제가 오빠께 "오빠, 제가 덕이를 키울게요"라고 약속한 것이 말이지요. 교통사고 후, 병원에서 말도 못하는 상태로 생사를 헤매고 있는 오빠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덕이를 보거나 덕이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누워있는 오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곤 하였지요.

그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어요. 가족 중에 덕이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가정을 이루고 분가했으나 저는 미혼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덕이를 맡는 게 겁이 났고, 그 두려움에 쉽게 말씀을 못 드렸어요.

덕이의 발달 단계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습니다. 4살이 되어도 말을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하지 못하면서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덕이를 누군가는 책임지고 잘 돌보아야 함을 알게 되었어요. 부모님은 연로한 상태였고, 이제 더 이상 덕이를 지도하는 것을 미뤄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맡아서 책임지고 키우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때 오빠의 눈을 보면서 제 마음으로 약속을 했습니다. "오빠 덕이는 제가 키울게요"라고, 오빠께 그 말을 하고 나니 잠시 오빠의 표정에서 편안함이 스미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풀어야 할 숙제를 했다고 여겨서일까요. 아니면 오빠가 진정으로 위안을 얻었기 때문일까요. 저는 그때의 약속 이후로, 그 당시 오빠의 얼굴을 기억하면서 힘껏 용기를 내며 살아왔습니다.

남겨진 조카, IQ 48의 덕이... 아이와 함께 한 소중한 시간

오빠가 돌아가시기 3년 전, 1995년 2월에 서울대소아정신과병원에서 덕이의 지능검사를 했습니다. 그때 주치의였던 조수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덕이의 지능은 48입니다."

그 결과를 듣는 순간, 그렇게 감각이 없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아무 느낌도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이었어요.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덕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덕이가 숫자 48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고모가 순간 정신 나간 사람 같았기 때문이겠지요. 가족 중 누구에게도 지능검사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도 저 혼자 덕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녀온 것이라 내가 막막해 하고 슬퍼할 겨를이 없었어요.

당시, 그 결과에 대해서 가족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나 가족 중 누구라도 알게 된다면, 제가 덕이를 돌보고 지켜주기가 더욱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가족들의 걱정과 슬픔이 더 무거워질 것 같았습니다.

또한 덕이에 대한 선입견으로 덕이에 대한 가능성을 한정한다면, 아무래도 덕이를 위하는 마음도 덜 해지지 않을까라는 추측도 작용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결정은 잘한 것 같아요. 제가 혼자서 '속앓이'를 자주 했다는 거 빼고는 말이지요.

그 이후로 덕이와 함께 하면서 다양한 일들로 시시각각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제 기억에 강하게 남는 것은 덕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덕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보고 학교를 한 번 방문하라는 거였어요. 무슨 일인가 싶어 그날 바로 담임선생님을 뵙기 위해 학교에 방문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의 말씀은 "덕이를 좀 더 신경 써서 지도하라"는 것이었어요. 강하고 짜증스런 말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덕이의 시험점수가 거의 '0'점이었으니까요, 덕이는 친구들의 답을 베끼는 것도 몰랐어요. 답지는 가장 깨끗했지요. 전교 꼴찌.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선생님 제가 부족해서 조카를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90도로 숙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관심을 갖고 지도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나오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해본 경우는 그때뿐이었습니다. 저에게 필요했던 '겸손'을 제대로 배울 시기였던 것 같아요. 차를 운전하면서 그 학교 교문을 나오는데 '이것이 현실이구나', '앞으로 덕이와 내가 겪어야 할 일들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등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할 때 찾았던 관악산 중턱의 작은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래도 해보자"라며 툭툭 털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어요.

그 다음날부터는 특수반이 함께 운영되고 있는 학교를 알아보았습니다. 덕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그 다음해, 덕이는 특수반이 있는 학교로 전학을 하고 그 학교에서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초·중·고·대학생활을 하면서 또래들 사이에 괴롭힘은 있었으나 덕이가 잘 버텨주어 지금은 정직원으로 직장생활도 잘하고 있습니다.

먼 훗날, 오빠를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오빠, 나 힘들고 아팠지만 오빠와의 약속은 나에게 사람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인정 있는 사람으로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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