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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가 기어가다 멈추고 재롱을 부립니다. 넘어져 다칠까 봐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서준이가 기어가다 멈추고 재롱을 부립니다. 넘어져 다칠까 봐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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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준이가 슬슬 뜨기 시작합니다. <오마이뉴스>의 지난 번  [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⑪] '딸이 아니라 손자가 오는 겁니다'가 지난 15일, 네이버 '생활/문화' 면에 사진과 함께 링크되면서 단박에 벌어진 일입니다. 몇 시간 사이에 댓글만도 자그마치 190여개가 달렸다니까요. 대부분은 제 손자 서준이 녀석이 귀엽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사랑어린 가족의 모습이 보기 좋다거나, 부모님 생각난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혹 가다 악성댓글도 눈에 띄더군요.

"아니, 우리 서준이가 에어백이냐느니, 못 생겼다느니 악플 단 사람은 뭐래요? 정지한 차라고 해명을 해야 하나?"

딸내미가 흥분해 아내에게 전활 걸어 한 말이랍니다. 제가 차 운전석에 녀석을 잠간 앉혀 보았는데 그걸 운행 중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아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줄 에어백 삼아 운전을 할 할배가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꽃할배 될 자격 없는 할아버지이지요. 뭐, 남의 귀여운 손자 '눈꼴사나워 못 봐 주겠다' 정도의 질투라고 여기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서준이의 '3초 대기조'

서준이가 기어 다니다가 잠시 앞을 보고 웃어줍니다. 서준이가 웃어야 세상이 밝습니다. 자기 집에서는 이렇게 안전하답니다.
 서준이가 기어 다니다가 잠시 앞을 보고 웃어줍니다. 서준이가 웃어야 세상이 밝습니다. 자기 집에서는 이렇게 안전하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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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자 녀석은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답니다. 9개월이 된 요즘 기어 다니기 선수 같아요. 얼마나 잽싸게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지. 붙잡으러 다니기 정말 진땀이 난답니다. 녀석이 가다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기도 해요. 그럴 땐 녀석의 엉덩이만 머쓱하게 바라봐야 하는 신세가 되곤 한답니다.

서준이를 붙잡으러 다니는 이유는 단 한 가지랍니다. 가구 모서리에 찧어 다칠까 봐요. 자기 집과는 달리 이 할배가 사는 집은 서준이에게 맞춰져 있는 게 아니라 위험요소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거든요. 딸내미의 집이야 아이 키우는 집이니 위험요소는 아예 제거해 놓았으니 좀 낫죠.

바닥은 자기 집처럼 스티로폼이 아닌 딱딱한 나무나 장판이니 기어 다니다 혹 코라도 부딪치면 다치죠. 또 탁자며 TV며 화분이며 모두 모서리가 날카롭습니다. 서준이가 기어가는 방향에 먼저 달려가 대기하고 있다가 녀석이 위험한 물건에 접근하면 모서리를 가려주거나 녀석의 진로를 방해하여 안전하게 놀도록 하는 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뭐, 저뿐입니까. 제 아내와 딸 내외도 마찬가지입니다. 녀석이 움직였다 하면(근데 가만히 있질 않습니다. 항상 움직이죠) 모든 가족이 초긴장입니다. 이름 하여 '3초 대기조'라고 아실는지. 왜 군대에 '5분 대기조'라고 있죠. 이 부대는 보통 연대급에서 1개 소대 규모로 운용하는 긴급대응부대를 말합니다. 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5분 안에 잽싸게 출동한다 하여 '번개출동부대'라고도 하죠.

서준인 위험인물(?)입니다. '기어 다니는 폭탄'이라고나 할까요. 언제 어디로 튀어 사고를 낼지 모릅니다. 그러니 '3초 대기조'가 눈 부라리고 녀석을 응시하고 있다가 번개처럼 움직여 위험을 차단해야 합니다. TV를 향해 기는 것 같으면 먼저 TV쪽으로 달려가 주시하고 있다가 코너를 손으로 가리는 거죠. 탁자 쪽으로 가면 미리 바람소리 내며 달려가 탁자 모서리를 가리고요.

손자 녀석 쫓아다니는 행복... 아실라나?

서준이가 안전한 공간(자기 집)에서 놉니다. 새로 신긴 신발이 신기한 모양입니다.
 서준이가 안전한 공간(자기 집)에서 놉니다. 새로 신긴 신발이 신기한 모양입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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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손자 서준이 녀석이 빠르기에 그만큼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답니다. 날마다 책상에 앉아 글이나 읽는 나로선 여간 힘에 부치는 게 아닙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엌에서 설거지 하랴, 애들 뭐 해 먹이랴, 서준이 쫓아다니랴 몸뚱이가 서너 개 있어도 모자랄 형편이죠. 이렇게 우리 부부의 설풍경은 살벌하기 그지없습니다.

근데도 행복하답니다. 몸은 고생하는데 맘은 행복하다고나 할까요. 여행을 왜 하느냐고 여행가에게 물으니까, "행복하기 때문에 여행을 한다"고 대답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여행은 고생하는 일이거든요.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도 있잖아요. 그런데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꾸 집을 떠납니다. 몸은 고생하지만 맘은 행복하기 때문일 거예요.

서준이가 우리 집에 오면 우리 내외는 몸이 고단하답니다. 그러나 맘은 더없이 행복하죠. 이게 무슨 언밸런스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이건 두뇌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냥 가슴으로 이해해야 하지요. 아이가 눈을 뜨고 있는 한 끊임없이 '3초 대기조'의 임무를 충실히 다해야 합니다. 그러니 몸이 고생일 수밖에요.

그렇게 서준이를 쫓아다니는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때론 비상수단이지만 바닥에 이불을 깔기도 하고 가구를 이리 저리 옮겨다 놓기도 합니다. 몸이 좀 덜 고단하려고요. 하지만 그리 큰 효과를 발휘하진 못한답니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대는 아직 아이를 모르는 사람일 겁니다.

움직이는 아이가 어디는 못 갑니까. 그러니까 치운다는 건 그냥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 이상은 아닙니다. 여전히 아이는 위험한 곳만 골라 잽싸게 움직이니까요. 허. 자기 집보다는 조금 더 큰 공간인 이 할애비 집이 서준이는 참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넓은 거실과 안방, 서재를 마구 기어 다닙니다.

요즘 집은 문지방도 없잖아요. 그러니 모든 공간을 자유자재로 드나듭니다. 집이 넓으면 '3초 대기조'의 분투도 그만큼 치열해지는 겁니다. 서준이는 활동무대가 넓으니 종횡무진 기어 다니며 좋아합니다. 그러나 녀석을 쫓아다니는 이 할배는 죽음이지요. 하하.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난다

아이에게는 역시 엄마가 최고입니다. 딸내미와 서준이가 더없이 정겹습니다.
 아이에게는 역시 엄마가 최고입니다. 딸내미와 서준이가 더없이 정겹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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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의 레이더는 한시도 녀석을 놓치지 않으려고 무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망에서 내려놓지 않습니다. 친정집에 온 딸내미는 아이는 이 할배나 할매에게 맡겨놓은 채 딴 짓만 합니다. 사위도 마찬가지이고요. 뭔 휴대폰에 그리 재미있는 게 있는지 둘이 하루 종일(좀은 뻥이죠. 하하) 휴대폰 얼굴만 뚫어져라 보고 있습니다.

둘이서 서준이를 쫓아다니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며 그냥 내버려둡니다. 그런 맛에 친정집 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물샐틈없이 감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 있는 2박3일 동안 두 번이나 나동그라져 울었답니다. 바닥에 얼굴을 부딪친 거죠.

달려가 아이를 안고 달래며 상처가 안 났는지부터 살핍니다. 다행입니다. 서준이가 우리 집에 있는 동안 두 번의 엎드러짐에도 불구하고 상처는 없습니다. 만약, 만약에 말입니다. 우리 집에 있는 동안 조그마한 생채기라도 생긴다면 제 맘이 무척 아플 겁니다. 지금은 제 어미 애비가 있는 데서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망정이지 없는 데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생채기라도 생긴다면... 아찔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워달라는 자식들의 부탁을 거절하는 부모가 많다고 합니다. 제 아내 생각도 같답니다. 저는 키워달라면 키워주고 싶은데, 저 혼자만 할 수 없는 일이니... 허긴 아내는 몸이 나보다 조금 더 부실하여 그 몸이 감당을 못할 거예요. 그러니 엄두를 아예 안 내는 거죠.

녀석이 얼마나 순한지 우리 집에 있는 2박3일 동안 딱 두 번 울었는데, 그게 바닥에 머리를 찧어서랍니다. 참 순하죠. 제 손자 서준이가 이런 아이랍니다. 항상 웃기만 하지 우는 걸 몰라요. 그런데요. 좀 자존심 상하긴 해요. 아이가 울 때 딸내미가 안아줘야 최종적으로 울음을 그친다는 거. 요게 좀 자존심 상해요.

그리 잘해주는 데도 제 엄마 품에서만 울음을 그치니. 원. 제가 안고 달래면 계속 울어요. 그래서 결론을 스스로 내죠. 꽃할배 자존심 팍팍 상하지만... 이렇게 외쳐요.

"아이에게는 역시 엄마가 최고다!"

음식점에서 먼저 먹은 제가 아이를 안았습니다. 서준이 엄마 아빠는 먹기에 바쁩니다.
 음식점에서 먼저 먹은 제가 아이를 안았습니다. 서준이 엄마 아빠는 먹기에 바쁩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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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는 손자를 보고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할아버지의 글입니다. 계속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관심 많이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이전 글은 오른쪽 위에 있는 ‘이 기사 관련콘텐츠’를 보시면 됩니다.



태그:#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 #김학현, #오서준, #딸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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