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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진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2학년이 3학년 교과서를 신청할 무렵이다. 교과서 신청란에 한 과목 외에는 동그라미를 하지 말라는 담임선생님의 당부가 있었다. '그럼 교과서를 사지 말라고 하는 건가?' 학생들은 의아해했지만 곧바로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3학년 때는 교과서를 거의 안 써서 물려받기를 할 것이라는 담임 말씀이 들렸다. 그런데 아주 무료로 할 수는 없어서 천 원씩은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학생이 질문했다. "그러면 교과서를 안 사면 되는 거 아니에요?"

위 이야기는 지난해 9월 진주여고에서 있었던 일이다. 진주여고에서는 다른 학교들과는 다르게 이번 예비 고3들만 '교과서 물려받기'를 실시한다. 바로 교육청에서 교과서 물려받기를 권장한다는 공고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 세대가 2007년도 교육과정의 마지막 세대고, 그렇게 되면 현재 1학년부터 2009년도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되는데 교과목 수, 내용, 이름이 모두 바뀌기 때문에 선배의 교과서는 물려받을 수 없다. 거기다 출판사에서는 한꺼번에 많은 책을 찍어내는 것이 수익 구조상 유리할 수밖에 없고, 이번에는 한해 분량만 찍어내야 하니 교과서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즉, 4000원이던 교과서가 6000~7000원 정도로 단가가 증가할 전망이라는 것이다. 물려주지도 못할 교과서를 비싸게 사는 것보다 물려받고 1년만 쓰자는 좋은 취지인 셈이다. 전교생에게 교과서가 제공되기는 어렵지만, 어차피 수능 연계교재나 부교재로 수업을 하므로 지장이 거의 없고, 만일을 위해 학년실에 교과서를 배치해 놓고 돌려 보거나, 두 명당 한 권을 함께 보는 방법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좋은 점이 훨씬 많아 보이는 교과서 물려받기인데 실제로 하고 있는 학교는 진주여고뿐이라고 한다. 이유를 찾기 위해 진주시 내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설문을 하다 보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고등학교가 물려받기는커녕 편의상 학생들에게 어떤 교과서를 살지 선택할 기회도 주지 않고, 가격이 적인 고지서 형태의 안내장으로 비용만 청구해 왔다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진주고등학교는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교육부에 문의해 보니, 교과서는 초·중·등 교육법상 꼭 있어야 하고 개인적으로 물려받을 사람은 자신이 학교 측에 의견을 전달하면 교과서를 꼭 새로 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일괄적으로 학교에서 구매한 뒤에 '통보'하는 것은 학생들이 교과서를 선택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까지는 관례상 그래 왔다고 하더라도 교과서를 거의 쓰지 않는 수험생의 경우 많은 손해가 발생한다. 문과생의 경우 최소 14권, 이과생일 경우 최대 18권으로 늘어나는 2016년도 EBS 수능 연계교재만 해도 한 권당 만 원 꼴이다. 거기다 교과서값 10만 원(작년 대비 증가할 예정)을 더하면 교잿값만 20여만 원을 훌쩍 넘는다. 부담될 수밖에 없는 비용이다. 더 심각한 것은 교과서는 거의 사용도 하지 않는데 사는 격이니, 나중엔 쓰레기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현실이다. 이렇듯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교과서를 사자마자 버린다면 그 낭비는 물론 환경까지 고려하면 국가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져 오던 교과서가 청소년의 끝자락, 고3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짐'이 되고 있다. 진주여고에서는 이 '짐'을 해소할 방법을 찾다 궁여지책으로 물려받기라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올해 교육과정이 바뀌면 새로 교과서를 사야 할 현재 고1의 부담을 생각하면 임시방편인 셈이다. '교과서 무용론'은 이미 고3들에게 현실이 됐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학교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교육 당국에서는 현실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경남 진주 청소년 신문의 기사입니다. 글쓴이는 진주여자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태그:#필통, #교과서, #물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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