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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가 태어난 다음 날,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번엔 하혈 증세까지 있었다고 하니 괜히 마음이 불안했다. 병명은 금세 밝혀졌다. 대장암 말기였다. 게다가 간까지 전이가 된 상황이었다.

병원은 수술 여부를 물었고 가족들은 친척들과 상의한 끝에 85세 노인에게 힘든 항암치료를 감당하게 하지 말자고 어렵게 결정 내렸다. 사실상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 후 병원에 잠깐 입원하시다 집으로 모셨다. 다시 평범한 일상이 시작됐고 할아버지도 기력이 많이 쇠하시긴 했지만 암환자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잘 지내셨다.

이서가 태어난 다음날, 갑작스레 쓰러진 할아버지는 암이란 판정을 받았다.
▲ 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할아버지 이서가 태어난 다음날, 갑작스레 쓰러진 할아버지는 암이란 판정을 받았다.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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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이서를 데리고 집에 가도 언제나 환히 웃으시며 반갑게 맞이하셨다. 어느 날인가 소파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이서를 안은 나까지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문득 그 모습이 눈에 새로우셨는지 "4대가 다 모였네" 하시며 즐거워하셨다.

그런 할아버지도 이서를 막상 자기 품에 안기는 꺼려하셨다. 예전에 한 번 이서가 안기자마자 불편했는지 자지러지게 울고 난 이후부터는 근처에서만 맴도시고 정작 직접 안아보시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증손녀 이서를 반기시고 집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할아버지에게 이서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증손녀였다.
▲ 이서를 품에 안은 할아버지 할아버지에게 이서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증손녀였다.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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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과 다름없던 어느 오후, 할아버지가 다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어머니가 전해주셨다. 최근 자꾸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기력이 쇠해지셔서 병원에서 입원을 권유했다고 한다. 사실 그때는 잠깐 입원하셨다 다시 돌아오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날 이후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했다. 병세가 나날이 악화되어 간혹 자식들을 못 알아 보실 정도였고 말씀도 잘 못하셨다. 이제는 정말로 가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문안을 처음 갔을 때는 어렵사리 나를 알아보셨지만 그 다음 갔을 때는 요양병원에 누워 잠만 주무셨다. 이후 호흡이 빨라지고 맥박도 느려지자 산소호흡기까지 필요해졌다. 나이에 비해 건장하던 체격은 말라비틀어져만 갔다. 이제 정말 오늘, 내일 하는 순간까지 온 것이다.

일이 한껏 많은 어느 하루였다. 병원에서 급히 호출해 그리로 가는 길이라는 어머니의 전화였다. 나도 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일단 먼저 가서 상황을 보고 이야기 해주겠다고 했다. 일하는 중에 어머니가 보낸 카톡 소리만 들려도 긴장하며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후에 온 연락은 다행히 차도가 조금 있으셔서 오늘은 당장 가실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왜 하필 그날따라 일이 그렇게 많은지 밤 10시 반이 되어서야 바쁘게 마무리하고 인천에 있는 병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밤 11시 반쯤 도착해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마주했다. 플라스틱 산소마스크 속에서 거친 호흡을 내쉬며 잠들어 계셨다. 가만히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손이 생각보다 따뜻해서 놀랐다. 할아버지를 위해 가만히 기도했다. 왠지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게 마지막일 것이란 생각이 들자 왈칵 눈물이 났다. 어린 시절 늘 나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시던 할아버지가 지금은 생사의 기로 가운데 누워계셨다.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도 할아버지는 그대로 계셨다. 그 사이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잘 넘어가셨다. 하지만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지셨다는 소식에 지방출장 중이던 나는 급히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 도착할 때쯤 다시 괜찮아지셨다는 소식에 우선 그대로 집에 들어갔다. 그간 피곤했는지 잠이 푹 들었는데 새벽에 이서가 갑자기 경기를 일으키듯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아내가 안고 달래도 좀처럼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순한 아이라 밤에 줄곧 잘 잤는데 이런 적이 처음이라 당황했다. 다시 잠이 들었는데 새벽5시쯤 갑자기 아내가 날 깨웠다.

"여보, 할아버님 돌아가셨대. 짐 챙겨서 9시에 장례식장으로 오래."

'아!.' 그 순간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가셨구나..'

자는 둥 마는 둥하고 서둘러 준비하고 장례식장에 갔다. 할아버지의 사진이 비어 있는 영정이 눈에 들어왔다. 곧 어머니와 친척들이 오셨고 사망 경위를 들었다. 새벽 2시50분쯤 갑작스레 상태가 안 좋아지셔서 급히 어머니께 전화가 갔고 부모님 두 분만 할아버지가 막 돌아가시기 직전에 도착하셨다고 했다. 뭔가 허무한 임종인 것 같아 들으며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어머니께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새벽 어머니 꿈에 할아버지가 하얀 얼굴로 나타나 살짝 웃으시고 사라지셨는데 그렇게 잠이 깨신 어머니가 얼마 있다가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눈시울에 눈물이 맺혔다. 우리에게 인사하기 위해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 중 병간호로 제일 고생한 자기 며느리를 보러 오셨던 것이다.

그런데 같이 그 이야기를 듣던 아내는 이서가 깬 시간도 2시 반이었다며 할아버님이 이서도 보고 가신 게 아니냐고 했다. 이서가 오늘 새벽처럼 운 적이 없어 좀 당황했는데 꿈에 할아버지를 만나 그렇게 울었던 것 같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신 게 2시 40분이었으니 이서에게 들렸다 어머니께 간 게 아닌가 싶었다. 애틋한 증손녀와 시집온 이후 계속 시부모를 모신 며느리에게 할아버지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으셨던 걸까.

할아버지는 그렇게 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쇠약한 육체로 직접 인사하실 수 없어 그렇게 꿈에서라도 인사를 하고 가셨다. 그 마음이 너무 감동적이고 감사하다.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2부에서 계속>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개인블로그 중복개제 됩니다.



태그:#장례식, #할아버지, #가족, #임종,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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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사회에 평범한 신입아빠, 직장인인 연응찬이라고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바라보는 사회가 정말로 대한민국 국민이 느끼고 공감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평범한 눈과 자세로 세상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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