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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가 떨어지질 않습니다. 안고 운전대에 앉아봤습니다. 꽤 능청스런 운전자 품새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정지 중인 차입니다.
 서준이가 떨어지질 않습니다. 안고 운전대에 앉아봤습니다. 꽤 능청스런 운전자 품새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정지 중인 차입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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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내미가 집에 온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요. 설 명절을 앞두고 미리 다녀갈 심산인 듯합니다. 시집간 딸이 친정에 오는 걸 안 반가워 할 친정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솔직히 다 큰 딸이 온다는 것보다 기실 손자 녀석을 본다는 것 때문에 너무 반가웠습니다.

전화를 받고 하루를 지내는 것이 도무지 볼됩니다. 전화를 했으면 그날 홱 내달아 올 것이지 다음날 온다는 건 또 뭐랍니까. 일각이 여삼추라 했나요. 일각(15분)이 삼년같이 느껴진다는 뜻이죠. 하루가 왜 이리 물쩍지근한지요. 아무튼 전화를 받고부터 달뜬 마음에 일이 잘 여물지 않습니다. 그날 밤 잠도 잘 안 옵니다. 손자 녀석 서준이가 벌써 눈에 어른거립니다.

손자 기다리기, 일각이 여삼추

이번에는 얼마나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려나. 제 엄마 친정 나들이에 동행하는 서준이가 내겐 주인공입니다. 서준이가 오는 것이지, 딸내미가 오는 게 아닙니다. 물론 딸내미가 이 소리 들으면 좀 섭섭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 자식 잘났다는데 싫은 사람 없듯, 귀여운 서준이 기다렸다는데 서운할 리가 없겠죠.

기어이 '기다리~고기다리~던'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그다지도 긴 시간이라도 가긴 가는군요. 아침부터 언제 오느냐고 아내가 성화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 떠날 것이지, 통화를 하는 시간이 10시 30분인데 아직 출발 전이랍니다. "아무튼 요즘 것들은 느려 터졌다니까"라는 말을 남발하며 오매불망 서준이가 오기만 기다립니다. 잠시 후 카톡에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 중이라는 소식이 뜨네요.

아고, 기다리다 지쳐 까무러칠 지경입니다. 그 지경에 왜 느닷없이 유행가 가사가 생각난대요. 남들 하는 거 들어보긴 했지만 노래도 모르는 그 유행가 가사가 말입니다. 평소 가요를 잘 모르는 인생임에도 귀여운 손자 녀석 볼 생각에 별별 생각이 다 떠오릅니다. 이럴 때 손자 녀석에 관한 시험을 치러도 만점을 획득할 것 같습니다. 허. 모르는 노래 가사도 생각나잖아요.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 땡벌"

서준이가 웃느라 얼굴이 확 찌그러졌습니다.
 서준이가 웃느라 얼굴이 확 찌그러졌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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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에서 부스럭 소리만 나도 창밖을 내다봅니다. 참고로 우리 집은 그 이름도 찬란한 '세종특별자치시'에 있습니다. 이해찬 국회의원을 낸 데죠. 허나 그 유명세와는 별도의 공간인 연서면 신대리라는 곳입니다. 특별시의 주변 중에 주변이지요. 지금 세종시 도심지는 개발 '난리(亂離)'인데 이곳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 '난리(嬾-꽤 게으를-離)'랍니다.

허허벌판에 동그마니 놓인 집이고 그 2층이 우리 내외가 사는 집입니다. 창밖으로 시선을 내밀기를 수백 번(이거 끔찍이 과장된 거란 거 아시죠?) 기어이 자동차 문소리가 납니다. 기어이 서준이가 당도한 겁니다. 부리나케 아내가 뛰어 내려갑니다. 나도 덩달아 달음박질을 쳐 아래로 내려갑니다.

손자 바보 꽃할배, 꽃할매는 못말려

우사인 볼트가 우리를 보면 챔피언 자리 내어주어야 할 걸요. 하마터면 실내화 끝자락이 층계에 걸려 넘어질 뻔했습니다. '오 마이 갓!' 그러나 무사히 뛰어 내려갔다는 게 중요하죠. 차에서 아기의 짐을 내리는 사위와 딸의 인사는 받는 둥 마는 둥, 나와 내 아내가 외친 말, 뭔지 아세요? 맞히면 그대도 손자 바보 될 자격 충분!

과자봉지를 뒤집어썼는데 괜찮은 모습입니다. 그저 서준이는 웃기만 합니다.
 과자봉지를 뒤집어썼는데 괜찮은 모습입니다. 그저 서준이는 웃기만 합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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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는?"

손자 녀석 이름이지요. 딸내미니 사위니 별로 안 반갑다는 의미죠. 우리 내외가 동시에 그렇게 말했으니, 저만 손자 바보 할배가 아니고 아내도 손자 바보 할매인 거 맞죠. 둘이는 손자 녀석부터 챙깁니다. 차안에서 제 엄마 품에 안겨 나오는 서준이 녀석 싱글벙글입니다.

녀석은 언제나 웃으니까 새삼스러울 건 없습니다. 그래도 서준이가 자다가 이 할밸 맞지 않고 웃으면서 맞으니까 기분이 너무 올찹니다. 차를 타면 자는 버릇이 있는데 녀석도 이 할배가 보고 싶었는지 졸린 걸 꾹 참고 여기까지 온 모양입니다. 제 해석이 너무 억지라고 생각되면(당연 그러시겠죠) 그냥 참아주시길. 이 글을 읽는 분도 손자 봐 봐요. 이게 무슨 자가당착인지 내처 깨달을 테니까요.

제 엄마에게서 녀석을 얼른 빼앗아 안습니다. 제가 아내보다 조금 빨랐습니다. 순발력하면 아직은 이 할배 따라올 사람 없습니다. 그래봐야 아내와 저 두 사람 중에 비교지만 말입니다. 아내는 서준일 먼저 안으려다가 제게 빼앗기고는 무르춤해졌습니다. 이 녀석을 받아 안는 첫 번째 사람이 자신이 아닌 걸 못내 아쉬워합니다.

우리 부부만 살기에 우리 집은 대부분의 시간이 적막강산입니다. 그것도 동네와는 한참 떨어져 동그마니 혼자 서 있는 외딴집에서 두 사람만 사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가끔 제가 글을 쓰느라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나거나, 아내가 무료한 시간에 TV를 시청하며 나는 소리 외에 창밖으로 먼 길가에서 트럭 정도 오가는 소리가 들릴까 말까 할 정도랍니다. 작은 자동차 소리는 우리 집까지 들리지 않고요.

손자 녀석 행동거지에 과도한 리액션은 필수

양머리 오서준, 꽤 귀엽지 않습니까? 우리 서준인 뭘 해도 예쁩니다.
 양머리 오서준, 꽤 귀엽지 않습니까? 우리 서준인 뭘 해도 예쁩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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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우리 집이 일시에 변모했습니다. 서준이 일행이 들오자마자 조금 시끄러워지긴 했지만 사람 사는 것같이 변했습니다. 서준이와 딸 내외 세 명이 추가되었으니 그도 그렇겠지요. 들어서자마자 제 손자 녀석 서준이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리는 포효를 시작합니다. 그 일부분은 괴성입니다. 무슨 방언을 그리 용감무쌍하게 씨불이는지 혼자만 신이 났습니다.

우리는 녀석이 괴성을 지르면 덩달아 "그게 뭔 소리여?"라며 고개를 주억입니다. 자신의 소리에 반응하는 걸 알기라도 하듯 더 큰 소리로 응답합니다. 왜 방송에서 '리액션'이란 게 있잖아요. 바로 우리가 그걸 하는 거지요. 필요 이상으로 과민반응을 하죠. 그러면 녀석이 더 신이나 이리 기어가다가 큰 소리 한 번 쳐보고, 저리 기어가며 큰 소리 한 번 쳐보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웃음소리입니다. 침을 질질 흘리며 웃는데 그게 그리 싱거울 수가 없습니다. 눈을 감아가며 큰 소리로 까르르 까르르 웃습니다. 침 수건으로 연신 닦아줍니다. 그래도 화수분입니다. 어디서 그리 침이 나오는지. 남의 아이 같으면 침 흘리는 모습을 보면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 텐데. 거 참, 이상하죠?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안 드니 말입니다.

"아이 똥 싸면 어떻게 치워주지 했는데, 하나도 더럽지가 않아요."

딸내미의 말입니다. 저도 그렇답니다. 그러니까 위대하고 신통하게 손자 바보 반열에 오른 게 아니겠어요. 이 반열에 아무나 드는 게 아니랍디다. 허. 그렇다고 우리 서준이 만한 모든 아이의 침 흘림에 대하여 관대한 게 아닙니다. 제 손자가 아닌 아이들은 지저분하고 더럽답니다. 내 참.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여운을 남겨야지 그대가 제 '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 시리즈를 기대하시지 않겠습니까. TV 드라마도 꼭 중요할 때 끝나더라고요. 하하. 다음 호에 손자 바보짓 또 이어 쓰겠습니다.

서준이가 할배에게 안겨서 큰 웃음을 선사해 줍니다.
 서준이가 할배에게 안겨서 큰 웃음을 선사해 줍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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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는 손자를 보고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할아버지의 글입니다. 계속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관심 많이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태그:#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 #서준, #딸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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