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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작년 7월 파면된 대한항공 전 객실사무장 A씨는 부하 승무원들에게 '악몽' 그 자체였다.

A씨는 지난 수년간 사무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부하 직원들에게 선물이나 돈을 끈질기게 요구하며 부담을 줬다.

비행 전 모든 승무원을 모아 놓고 "물질과 마음은 하나다"라고 말하거나, 결혼을 앞둔 여승무원들에게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이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한 승무원에게 "몇십 만원 투자해 진급하면 연봉 몇백 만원이 오르는데 어느 것이 이득인지 생각해 보라"며 근무 평가를 미끼로 노골적으로 선물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혼을 앞두거나 승진한 일부 승무원은 결국 부담을 이기지 못해 상품권을 내밀어야 했다.

무엇보다 악질적이었던 것은 인턴 승무원을 포함한 부하 여승무원을 향한 A씨의 성희롱 발언이었다.

한 여승무원의 카카오톡 사진을 보고서는 "'나 오늘 한가해요' 느낌이 든다. '선○○○○'(성인잡지) 모델 같다"고 말했다.

두 여승무원이 기내에서 장난치면서 포옹을 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다른 여승무원에게 "저런 사람이 남자 맛을 보면 장난 아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 여승무원과 우연히 팔을 부딪치자 "피부가 찰지다(차지다)"고 말했다. 이후 이 승무원의 별명은 '찰진'(차진)이 됐다.

한 여승무원에게는 다른 여승무원을 가리켜 "쟤 옷 입는 것 봐봐 '나가요' 같다"고 말하는가 하면 정비사와 여승무원이 우연히 부딪치자 "당신은 젊은 남자만 보면 환장해"라고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A씨는 자신의 업무를 부하 승무원에게 떠넘기는 데도 도가 텄다.

사무장이 해야 하는 '스페셜밀' 서비스 업무를 직접 하지 않고 부팀장에 전가했고, 관리자 보고서 과제물도 대신 작성하라고 밑으로 내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온라인으로 보는 사내 교육과정 시험을 부하 직원에게 대리응시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들에 비하면 자신의 가족들이 대한항공 항공기에 탑승했을 때 무단으로 좌석을 승급한 것은 애교에 가까웠다.

A씨의 이러한 '갑질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악행을 뒤늦게 파악한 대한항공은 그를 대기발령 내고 징계위원회, 재심을 거쳐 지난해 7월 최종 파면했다.

그러자 A씨는 "파면 절차가 잘못됐고 거짓된 제보를 근거로 내려진 처분이어서 위법하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파면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남부지법 제13민사부(진창수 부장판사)는 A씨가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해고 무효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증인의 법정 증언 등으로도 인정된 성희롱 발언은 단순한 농담이나 친근감의 표시를 넘어 상대방에게 굴욕감과 수치심,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데 충분하다"면서 "대한항공이 다른 성희롱 직원에게도 권고사직이나 파면 등 엄격한 징계조치를 내리는 것으로 볼 때 사회통념상 타당성을 잃은 조치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또 "그밖에 회사가 조사를 통해 밝힌 선물 요구, 업무 전가, 객실서비스 매뉴얼 규정 위반 등도 모두 파면 사유로 인정된다"면서 "징계 과정도 절차상 하자가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태그:#항공사, #막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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