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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값 인상으로 고민하는 건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질병관리본부가 밝힌 지난해 중·고등학생의 흡연율은 9.2%. 정부는 흡연율 감소를 명분으로 담뱃값을 올렸다. 피시방 근처에서 만난 정아무개군과 친구들은 "담뱃값이 올라 짜증난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짜증에는 담배를 끊고 싶다는 간절함도 담겨 있다. 하지만 정부는 담뱃값만 올렸을 뿐 이렇다 할 청소년 금연 정책은 내놓지 않았다. 교육당국이 정책을 마련하는 동안, 청소년들은 '담뱃값 인상이 부른 새로운 유혹들'과 전쟁 중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피우기 시작했어요. 담뱃값이 많이 올라서 금연하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게임하거나 볼일 볼 때(화장실 갈 때) 피고 싶고. 참다가도 주변에 친구들이 피우니까 만나면 같이 피게 돼요." (정아무개군, 17세)

담뱃값 인상... "돈 더 많이 뺏길까봐 걱정"

피시방은 왜 도냐는 물음에 정군은 “꽁초를 줍는다”고 답했다.
 피시방은 왜 도냐는 물음에 정군은 “꽁초를 줍는다”고 답했다.
ⓒ 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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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과 친구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어울려 다녔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년. 흡연 경력 5년 차, 아이들은 위기를 맞았다.

"정말 이제는 끊어야 돼요. 갑자기 담뱃값이 오르니까 돈이 부족해요. 피시방비도 없는데, 용돈 더 달라고 하면 눈치 보이니까 엄마한테 말도 못 꺼내요." (오아무개군, 17세)

담뱃값이 오른 지 한 달 가까이 되고 있는 지금, 앞으로 돈이 부족한 아이들은 '다른 곳'에 손을 벌릴 수도 있다. 인천 모 중학교 교사 박병륜(38·남)씨는 "개학하는 3월이 걱정된다"면서 "담뱃값이 올랐으니 후배들한테서 돈을 더 많이 뺏는 아이들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경기도 모 중학교 근처에서 만난 중학생 김아무개군(13)도 "형들이 (오른 담뱃값 때문에) 돈을 더 많이 뺐을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할인 마트를 운영하는 이아무개씨는 "담뱃값이 오르고 나서 얼마 전 근처 편의점에서 담배를 훔치는 일이 있었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날 것 같아서 무섭다"고 말했다.

남의 담배 훔치고, 노가다도 뛰고...

"이건 우리가 특허 낸 거예요. 택배 배달하는 차 있잖아요. 그 아저씨들은 차 문을 잘 안 잠그거든요. 얘가 망보고 아저씨가 7층에 올라갔으면 '7'이라고 해요. 그럼 제가 차 문 열고 담배 가져와요. 뛰면 안 되고 안 훔친 것처럼 걸어야 돼요." (박아무개군, 17세)

정군과 친구들은 1월 들어 여러 번 남의 담배에 손을 댔다고 한다. 이아무개군(17) 경우엔 아버지 담배에 손을 대는 일이 작년보다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근 담뱃값 마련을 위해 '알바'에도 뛰어들었다고 했다.

"새벽 다섯 시에 인력 사무소 가서 앉아 있으면 차가 데려가요. 가서 학생 아니라고 말해야 일 시켜줘요. 노가다 뛰어서 담뱃값 벌고 남은 건 피시방비로 써요. 일하고 2∼3일 후에 돈을 주는데, 일 다 시켜놓고 학생이니까 돈 안 준다고 할 때도 있어요." (유아무개군, 17세)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 김아무개(40·남)씨는 "(담뱃값 인상으로) 청소년이 아르바이트 시장에 더 많이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아이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면서 "그런 곳은 대부분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정군은 갑자기 "초등학교 알아봤느냐"고 친구들에게 물었다. 유군이 손가락을 접으면서 "네 곳"이라고 답하자 정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식에 가 꽃다발 장사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청소년 금연교육은? "금연학교, 돈 아까워요"

아이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천 원짜리 열장. 돈을 받아든 한 친구가 주위를 살피며 편의점에 갔다.
 아이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천 원짜리 열장. 돈을 받아든 한 친구가 주위를 살피며 편의점에 갔다.
ⓒ 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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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아이들이 금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박군은 "담배끊는 방법을 인터넷으로 찾아봤다"고 말했다. 그는 "휴지로 코를 막고 담배를 피우면 끊을 수 있다고 해서 따라했다"면서 "역겨워서 하루정도 안 피웠지만, 다시 피우게 되더라"고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담배 피우다 걸려서 금연학교에 갔는데 별로였어요. 학교에서 보던 영상 또 틀어주기만 해요. 하루 두 시간밖에 안 하는데 5일에 5만 원씩 (금연학교에) 제 돈을 내야 돼요. 이번에 금연 실패해서 또 가야되는 데 돈이 아까워요. 아, 후두암 환자가 한 번 왔을 땐 무섭긴 했어요."(정아무개군)

정군과 친구들의 담임교사 김아무개씨(53·여)는 "학교에서 단체로 모아놓고 (금연교육을 위한) 동영상을 틀어주는 건 사실 별로 도움이 안 된다"면서 "금연학교에도 보내긴 하는데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들의 신뢰도가 낮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더 적극적인 대책을 학교에 요구해봤으나 반응이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학교 밖 사정도 마찬가지다. 경기도의 한 보건소 금연클리닉 관계자는 "(금연 클리닉에) 청소년들을 위한 금연 프로그램은 없다"며 "(청소년들이) 금연하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하면 상담을 해주거나 담배대신 먹을 수 있는 사탕을 주는 게 전부다"고 말했다.

"청소년 담배 중독 심각한데, 정부는..."

이복근 청소년흡연음주예방협회 사무총장은 "청소년 담배 중독이 심각한데 정부가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은 "현재 금연 프로그램들은 너무 단순해서 (청소년 금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며 "아이들이 담배를 끊게 하기 위해선 적절한 치료약을 투여하는 등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교육부는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교육부 학생건강안전과 관계자는 지난 28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보건복지부에서 예산이 내려오면 흡연예방 및 금연교육을 전국으로 확대할 것"이라면서 "아직은 확정된 게 없지만 곧 시·도교육청을 통해 교육이 진행될 것이다"고 말했다.

대화를 마치고 헤어질 때, 아이들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그렇게 천 원짜리 열 장이 모였다. 정군이 한 친구를 가리키며 "네가 담배 뚫고(나이를 속이고 담배를 사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 이따가 피시방 돌자"고 말했다. 피시방은 왜 도느냐는 물음에 정군은 "꽁초를 줍는다"고 답했다.

덧붙이는 글 | 김재환 기자는 21기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담뱃값 인상, #청소년 흡연, #금연, #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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