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별까지 7일> 포스터

영화 <이별까지 7일> 포스터 ⓒ 주)수키픽쳐스


가족 영화. 온 가족이 둘러 앉아 같이 웃고 즐길 수 있는 가족용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말 그대로 가족에 대한 영화인데, 요즘 나오는 가족 영화는 대체적으로 우울하다. 거의 언제나 해체 위기에 놓인 가족을 그린다. 아니면 이미 해체된 가족이 어떻게 다시 제자리를 찾는지를 그린다. 여하튼 '가족 영화'라고 지칭되는 장르는 웬만해선 가족들끼리 둘러 앉아 웃고 즐길 수 없다.

가족은 다른 말로 식구라 하는데, 식구는 한 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끼니를 경제와 같은 말로 치환했을 때 한 경제권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가족은 '돈'이 없으면 지속될 수 없는 경제공동체와 같다. 그럴 때 가족 중 누군가 큰 병에 걸리면 파국에 이르기 쉽다.

해체된 가족의 재결합

일본 영화 <이별까지 7일>은 어머니의 큰 병 덕분에(?) 해체된 가족이 재결합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파국으로 치닫고 있던 가족 일원들의 민낯이 서로에게 공개되면서, 오랫동안 곪아서 손 쓸 수 없을 것 같았던 상처가 치유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끝은 어설프지만 작은 웃음으로 마무리 된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한 편이다. 반전이라 할 것을 딱히 찾아보기 힘든 스토리다. 엄마 레이코는 건망증 증세를 보인다. 가족들은 별 거 아니라고 치부하고 넘어갔는데, 큰 며느리가 아들을 가졌다는 소식을 축하하기 위해 사돈과 만남을 가진 자리에서 중증의 헛소리를 해 다음 날 병원에 간다. 증세는 심각한 뇌종양. 의사는 그녀에게 일주일 정도가 생사를 가를 중대한 고비라고 말한다. 사실상의 시한부 선고였다.

아빠는 작은 회사를 운영 중이다. 퇴근하고 하는 일은 티비를 켜 놓고 외제차 카달로그를 보는 것 뿐.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의 단독 주택을 소유한 사장이라면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큰 아들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리고 임신한 부인이 있다. 말하는 투나 표정, 차림새를 보니 성격이 굉장히 소심하고 차분한 편인 것 같다. 작은 아들은 큰 아들과 반대의 성향이다. 대학생인 그는 공부를 잘 하지 않아 유급도 당하고 엄마한테 허구한 날 돈이나 꾼다. 능글 맞고 경박스러운 성격이다.

 영화 <이별까지 7일>의 한 장면

영화 <이별까지 7일>의 한 장면 ⓒ 주)수키픽쳐스


중산층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이 가족. 그런데 엄마가 큰 병에 걸리자, 이 가족의 민낯이 하나 하나 벗겨지기 시작한다. 아빠는 회사를 차리며 엄청난 대출을 한 상태에서 사실상 수입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허세를 부리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 부채가 너무 엄청나서 큰 아들과 엄마도 일정 부분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큰 아들은 과거에 히키코모리였다. 이는 엄마와 남동생에게 피해를 남겼다. 특히 엄마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듯하다. 작은 아들은 엄마가 큰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 고통보다 경제적 고통에 치중하다

웬만한 가족 영화, 그 중에서도 가족 중에서 누군가 큰 병에 걸렸다는 설정을 한 영화는 거의 병에 걸린 당사자를 전면에 배치한다. 그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과 함께 하는 가족들, 떠나는 이와 떠나 보내는 이, 과정을 함께 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그리곤 한다. 반면 이 영화 <이별까지 7일>은 당사자가 아닌 가족들의 고통을 그리고 있다. 그것도 정신적 고통보다 경제적 고통에 치중해서 말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경제적 고통은 거품 경제가 무너지고 금융권의 부실 채권이 대량 발생하면서 시작된 '잃어버린 20년', 즉 일본의 장기 불황 그 자체이다. 한 가족 전체를 고통의 수렁으로 빠트리는.

그건 병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데, 남편이자 아빠이자 가장의 잘못이라 한다. 그는 독립해서 작은 회사를 차리는 데 엄청난 대출을 했고, 교외의 단독 주택까지 엄청난 융자를 끼면서 샀다. 그것도 모자라 외제차를 구입하려 혈안이 되어 있고 해외여행까지 꿈꾼다. 일본의 현실 그 자체이다.

두 아들은 엄마의 병이 깊으니 더 이상 병원에 있을 수 없다는 병원 의사의 말에 따라 다른 병원을 알아본다. 하지만 역시 받아주는 병원은 없었다. 그렇게 몇 군데의 병원을 알아보고 있던 때, 악성 림프종일 수도 있다는 어느 병원의 말에 따라 재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뇌종양이 아닌 악성 림프종이라면 일주일이 아니라 몇 년은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과연 엄마의 정확한 병명은 어떤 것일까? 그녀는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을까? 그리고 가족들은?

 영화 <이별까지 7일>의 한 장면

영화 <이별까지 7일>의 한 장면 ⓒ 주)수키픽쳐스


엄마의 치료비 걱정에서 촉발된 가족의 민낯은 아빠의 엄청난 빚에서 폭발한다. 그리고 사실상 그 빚과 엄마의 치료비까지 모두 떠맡아야 하는 큰 아들. 그가,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건 '체력'이다. 절망 하지 않고 지치지 말고 체력을 기르자는 것. 하고 있는 일을 흔들림 없이 하는 것.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 앞에서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지 말고 하나로 뭉치는 것.

<국제시장>을 보셨다면 이 영화도 꼭 보시길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위에서도 몇 번 언급했던 '무능력하고 허세에 가득 찬 가장'이다. 시한폭탄과도 같은 그의 모습 때문에 가족은 언제 풍비박산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 이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장면이 있다.

큰 아들이 아내에게 돈이 필요할 것 같다고 털어놓을 때, 아내가 "시댁 부모님들은 아직도 호황기인 줄 아시냐"고 지적하는 장면이다. 다분히 감성적인 영화로 비춰지는 이 영화가 사실은 굉장히 사실적으로 현실을 꼬집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 <이별까지 7일>의 한 장면

영화 <이별까지 7일>의 한 장면 ⓒ 주)수키픽쳐스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인기몰이를 한 <국제시장>에서 보여주는 부모님의 모습과는 천지 차이다. 누군들 고생을 안 하셨겠는가. 다만 과거, 현재, 미래에서 어느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느냐 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과거 이야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현재와 미래는 애써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언제부터인가 아름다운 현재와 미래는 사라지고 아름다운 과거만 남은 것 같다.

힘들지만 아름다웠던 과거를 그리고 관심을 가졌으면, 암울하고 비참한 현재와 상상하기 싫은 미래도 그려야 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이별까지 7일>은 감성적인 소재를 객관적이고 차갑고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암울하고 비참한 과거도 끄집어 냈고, 너무나 힘든 현재도 그리고 있다. 미래만 조심스레 희망을 품어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시장>을 보셨다면 반드시 <이별까지 7일>도 보시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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