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시옹 광장에 모여든 인파
 나시옹 광장에 모여든 인파
ⓒ 한경미

관련사진보기


2015년이 시작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프랑스 파리가 상상을 초월한 '대형 테러'의 희생 장소가 되었다.

시작은 지난 7일 발생한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편집국에 대한 테러였다. 이 테러로 유명 만평가 등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프랑스 전역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갑작스런 테러로 인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다음 날 오전, 파리 남쪽 근교인 몽후즈에서 20세의 젊은 여성 경찰이 살해되고 동료 경찰이 중상을 입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건 발생 당시엔 <샤를리 에브도> 테러와 이 사건에 아무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다음날 발생한 다른 테러로 인해 두 사건의 연관성이 밝혀졌다. 9일, 또 다른 테러리스트가 파리 동쪽 벵센느 문에 위치한 유대인 슈퍼에 들어가 인질 17명을 잡고 경찰과 대치했는데, 이 과정에서 쿨리발리(34)라 불리는 테러리스트가 여성 경찰을 살해한 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한 소년이 '샤를리는 인생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한 소년이 '샤를리는 인생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한경미

관련사진보기


이 인질극은 <샤를리 에브도>에 테러를 가한 쿠아치 형제가 도망 중에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40km 떨어진 작은 마을 다마르텡 엉 고엘의 인쇄소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일어났다.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쿨리발리는 쿠아치 형제가 경찰에게 체포된다면 자신이 잡고 있는 인질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협박했다. 결국 강력한 경찰의 개입으로 쿠아치 형제가 사살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유대인 슈퍼마켓 근처에서 5시간 동안 대기 중이었던 경찰이 슈퍼로 진입해 쿨리발리를 사살하고 인질들을 풀어줬다. 그러나 쿨리발리는 이미 인질극을 벌이던 초기에 4명의 사상자를 낸 상태였다.

시위 참가자들로 가득 찬 파리 시내

한 건물에 흰색 속치마와 푸른 티셔츠, 빨강 스카프로 연출한 독특한 프랑스 국기가 걸려있다.
 한 건물에 흰색 속치마와 푸른 티셔츠, 빨강 스카프로 연출한 독특한 프랑스 국기가 걸려있다.
ⓒ 한경미

관련사진보기


"나를 샤를리다"라는 몸자보를 두르고 집회에 나온 개
 "나를 샤를리다"라는 몸자보를 두르고 집회에 나온 개
ⓒ 한경미

관련사진보기


결국 3일 동안 연속해 일어난 테러로 인해 17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11일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특히 파리 집회에는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하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네탄야우 이스라엘 총리를 비롯한 주요국 정상과 고위 인사 50여명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당초 이날 집회는 파리 레퓌블릭 광장에서 오후 3시부터 시작하기로 돼 있었지만, 오전부터 인파가 몰려 오후 2시께엔 광장의 진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기자는 레퓌블릭 광장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집회가 마무리되는 나시옹 광장으로 직행했다. 그러나 나시옹 광장으로 갈 수 있는 거리에도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다들 레퓌블릭 광장으로 가기를 포기하고 나름대로의 여정을 만들어 향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봉쇄된 거리를 제외하고는 어느 거리마다 인파로 넘쳐났다.

평소 한산했던 파리 일요일 오후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파리는 평소에도 집회나 시위가 많이 벌어지기로 유명한 도시다. 하지만 이날처럼 수많은 인파가 시위에 참여한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대형 펜에 적힌 "나는 샤를리다."
 대형 펜에 적힌 "나는 샤를리다."
ⓒ 한경미

관련사진보기


한 건물에 내걸린 피켓('샤를리가 살아남길 바란다'라는 뜻)과 아래 층에 걸린 프랑스 국기.
 한 건물에 내걸린 피켓('샤를리가 살아남길 바란다'라는 뜻)과 아래 층에 걸린 프랑스 국기.
ⓒ 한경미

관련사진보기


오후 4시쯤에야 나시옹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곳도 이미 몰려든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각자 독특한 그림과 피켓을 들고 서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집회 초기엔 많은 이들이 혹시 새로운 테러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두려움은 어느 누구의 얼굴에서도 읽을 수 없었다.

오후 6시 30분쯤 집에 돌아오니, TV 뉴스에서 이날 프랑스 전국에서 집회에 참가한 총 인원이 400만 명으로 그 중 파리 대규모 집회에 참여한 인원은 대략 200만 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이는 1945년 제 2차 세계 대전 종료 이후로 최고로 많은 숫자라고 밝혔다. 또 올랑드 대통령이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참가한 주요국 정상과 고위 인사들로 인해 이날 파리는 세계의 수도가 되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태그:#프랑스, #파리, #시위, #샤를리 에브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