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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장석조)는 지방자치단체가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강제한 서울시 성동구와 동대문구의 개정 조례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동대문구와 성동구의 대형마트들은 주말 영업뿐만 아니라 24시간 영업도 할 수 있게 된다.

이 소식을 TV뉴스로 보면서 씁쓸한 마음과 함께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투박하고 정다운 이름의 '뚝도시장'이 떠올랐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 숲을 지나 한강변을 달리다 알게 된 곳으로 강변에서 가까워 종종 들르던 시장이다. 오래된 시장의 역사는 '뚝도'라는 이름에서 짐작 가능하다. 지금은 '뚝섬'이라 불리는 서울 숲 주변 동네를 가리키는 옛날 말인 '뚝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다. 지금도 뚝도 방앗간, 뚝도 빈대떡, 뚝도 기름고추 가게를 비롯한 몇몇 가게에서 과거의 영광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뚝도 시장으로 가는 한강 나들목을 지나 추천 먹거리를 물어보려 들른 시장 들머리의 '동일 자전차(자전거의 옛말)' 가게 아저씨도,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머리를 감아주는 '서원 이발소' 이발사 아저씨도 지금은 "뭐 볼 거 없는 시장"인데 이래봬도 동대문, 남대문 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이었다며 사람들로 북적이던 당시를 다양한 풍경으로 증언했다. 시장통을 가로지른 도로 양편으로 '뚝도시장'이라 써있는 시장통 입구 간판이 여러 개 보이고, 안쪽으로 미로 같은 골목이 이어져 있는 게 '정말 큰 시장이었구나' 짐작하게 했다. 

시장 건너편에 들어선 대형마트 

뚝도시장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이마트 본사.
 뚝도시장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이마트 본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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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 북적이며 화려했던 옛 영화는 사라지고 볼품없는 시장이 됐다는 자전차 가게 아저씨의 말은 사실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찾아갈 적마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셔터 문이 내려진 가게들이 흔했다. 시장 골목을 지나는 손님은 가끔씩 눈에 띄었고, 차라리 텅 비었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였다. TV에 나온 맛집이라는 코다리집, 순대국집, 할매김밥집 등에 그나마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가게 아주머니에게 어느 시장마다 있는 상인 연합회를 물어보니 시장통 2층의 작고 허름한 번영회 사무실을 알려 주셨다.

"뚝도시장이 죽은 지는 약 십여 년 전 입니다. 시장 바로 길 건너에 대형마트(이마트)가 그것도 본사가 들어서면서 상권이 몰락했어요. 시장에서 주로 판매하는 것은 물론 분식점, 식당, 미장원, 안경점, 세탁소 같은 것들도 마트에 다 있으니까요. 적어도 시장에서 파는 식료품은 마트에서 못 팔게 했어야 하는데 그 땐 대형마트의 힘이 그리 대단한지 몰랐어요."

시장 번영회 사무실에서 만난 아저씨의 말이다.

뚝도시장은 1962년에 개장한 곳으로 한때 400여 점포가 넘는 서울의 3대 재래시장 중의 하나로 꼽혔다. 이렇게 뚝도시장은 수십 년간 성수동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지만, 지난 2001년 건너편에  대형 할인점 이마트 본사가 들어서면서 상권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현재 하루 이용객이 100여 명에 불과하고 점포당 하루 매출액은 평균 4만∼5만원으로 떨어졌다고. 썰렁한 시장 분위기에 문 닫은 점포가 많다보니, 한 달에 두 번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을 하는 날엔 주민들이 시장 주변에 서너 개 있는 중소 쇼핑센터나 슈퍼마켓으로 간다고 한다.

썰렁한 시장통 분위기에 주말에도 손님이 별로 없다.
 썰렁한 시장통 분위기에 주말에도 손님이 별로 없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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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내가 사는 동네 인근에 있는 마포구 망원시장 상인들이 똘똘 뭉쳐 대형 할인점 홈플러스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공동 투쟁을 벌였던 일이 생각났다. 뚝도시장처럼 대형 마트가 들어선 후 상권이 죽어가는 재래시장의 현실을 알기에 천막농성은 물론 항의의 의미로 다섯 번이나 철시(시장, 가게 등이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음)를 하기도 했다.

결국 홈플러스와 망원시장 그리고 감독관청인 마포구청으로 구성된 협의체가 만들어졌고 상생 협약식을 맺었다. 일종의 사회적 타결이었다. 홈플러스는 일부 채소와 생선 등 17품목을 팔지 않는 '품목 제한제'를 실시하기로 약속을 하는 등 협의 끝에 문을 열었다. 

이마트가 들어선 후 뚝도시장은 성동구청의 지원을 받아 공영 주차장과 깨끗한 화장실을 짓고, 지붕을 잇는 아케이드 설치, 각종 포인트제, 온누리 상품권 발행 등 여러 노력을 했다. 하지만, 마트의 기능 외에도 여러 상점들과 온갖 편의시설을 갖춘 복합 쇼핑몰의 모습을 한 대형마트에겐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이마트의 위치가 뚝도시장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었다. 도로변 길가에 우뚝서서 주변의 모든 상점들을 빨아들이려는 듯 이마트의 드높은 건물이 거대한 진공청소기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거대 마트가 가까이에 있다면 서울의 명소 시장이 된 광장시장, 통인시장, 망원시장도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적정 수의 4배가 넘는 대형마트의 나라 

뚝도시장의 대표 맛집 가운데 하나인 '코다리찜' 식당.
 뚝도시장의 대표 맛집 가운데 하나인 '코다리찜' 식당.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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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상점들로 이루어진 도시의 거리가 사라지고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생존권과 지역경제를 훼손하는 부작용 때문에 프랑스나 독일은 엄격한 법적 규제로 파리나 주요 도심지에는 대형마트가 단 한 개도 없다. 심지어 신자유주의를 가장 신봉하는 미국에서도 월마트가 대도시 속에 진출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미국, 유럽의 선진국 정부가 한국의 법원에서 강조한 '소비자 선택권'을 몰라서 대형마트의 도심권 진출을 원천봉쇄하진 않을 것이다. 소비자 주권도 중요하지만 다수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약자인 소규모 자영업자의 생존권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고, 그것이 사회적 갈등 없이 대기업과 중소 상공업자가 상생하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내 유통학자들이 예상한 대형마트 포화점 100개 가량보다 4배나 넘는 440개의 대형마트가 대도시, 소도시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들어서 있다. 대기업의 탐욕은 이에 그치지 않고 대형마트로도 모자라 기업형 슈퍼마켓(SSM)이나 상품 공급업 등 변종 유통업으로 골목상권까지 침탈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형마트들은 이러한 행위를 '합법적 진출'이라고 하지만 도시의 소규모 자영업자에겐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규모의 경제'를 활용한 싼 가격과 편리한 쇼핑 환경으로 무장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공세로 전국의 전통 재래시장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현상은 굳이 근거자료를 대지 않아도 누구나 실감할 수 있다. 시장경영진흥원의 실태조사 결과 2004년 이후 8년 사이에 전통 재래시장 191곳이 문을 닫았다.

이러한 현실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불과 2년 전 전통시장, 골목상권 보호와 상생을 위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법이 생겼고, 이에 지자체들이 대형마트 의무 휴업 일을 조례로 정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부추기는 법원의 대형마트 의무 휴업 위법 판결은 그래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전통시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전체 유통업 종사자의 65%인 35만 4천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직원이 겨우 6만 명을 넘은 대형 할인점과 비교하면 6배 가량이나 된다. 수년째 경제 불황이 깊어가면서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시하는 때에 전통시장을 반드시 살려야 하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ㅇ 지난 10월~12월 사이에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태그:#뚝도시장, #이마트 , #대형마트 의무휴업, #재래시장, #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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