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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5년간 200여권의 책을 쓴 사람. 1989년 첫 책을 낸 이후로 정확히 몇 권을 냈는지는 백 권을 넘어서면서 헤아리지 않아 본인도 모른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검색하면 251건이 나온다고 한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다.

강준만은 단지 책을 많이 냈다고 화제가 되는 인물은 아니다. 최근의 <싸가지 없는 진보>처럼 내는 책 자체도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될 만큼 수준도 갖추고 있다. 거의 한 달에 한 권꼴로 펴내면서 글의 수준도 높은 놀라운 글쓰기 장인이다.

도대체 경탄스럽기까지 한 그 비결은 무엇일까? 강준만은 한겨레신문을 통한 정희진과의 인터뷰에서 망설임 없이 답한다. (참조기사 : 강준만의 책공장을 가다. 한겨레신문 12.13)

"고립과 중독이죠" 

고립, 몰입의 시작

어떤 일에 몰입하려면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고립은 그러한 시간의 확보를 가능하게 해준다. 강준만은 다음날 집필에 지장이 되기 때문에 저녁 식사 모임은 거의 없다고 한다. 담배와 술자리, 대화를 좋아해 보이지만 회식이 있어도 밤 10시를 넘기지 않는다. 각각 도보로 25분 정도 되는 집필실, 학교 사무실, 자택 사이의 삼각형 내에서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유지한다.

499권의 저서를 낸 다산 정약용도 유배생활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면에서 고립은 지적 생산에 매우 좋은 환경이면서 축복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창작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이러한 축복을 온전히 즐기기는 쉽지 않다. 사회적으로 고립된다는 일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정약용도 스스로 유배를 간 것은 아니다. 창작의 욕구 자체도 살펴보면 사회와 소통하고 인정받기 위함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로부터 배제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요즘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카톡 등 온라인에서도 부단히 애를 쓰며 산다. 이렇게 애를 쓰며 사는 동안 창작의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각종 모임과 SNS를 섭렵하면서 자기만의 일에 몰두할 뭉텅이의 시간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만의 일에 몰입하기 위해선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과 같이 연줄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선 거쳐야 할 관문이다.

중독, 고립의 두려움을 넘게 하는 즐거움

강준만은 어떻게 고립의 문을 두려움 없이 들어 갈 수 있었을까? 지방대 교수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서울 중심 학문 공동체와 고립되는 환경을 제공해주었지만 글쓰기의 즐거움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지칠 때가 있지 않냐?"는 질문에, 강준만은 단호하게 답한다. "없어요. 중독자가 지치는 거 봤습니까?"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예전에는 매월 책값 지출이 250만 원, 신문 20종에 언론사 노보를 모두 구독했을 정도로 읽기에 중독되었고 또 그만큼 써댔다. 아직도 쓰고 싶은 주제가 너무 많아 6년 뒤 정년퇴임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그만큼 썼는데도 마약 중독자만큼이나 벗어나기 힘들게 글쓰기에 중독된 강준만으로 보인다.

우리가 즐거움에 중독된다면 사회적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다. 소설가 박민규도 그러했다. 쓰고 싶은 글이 너무나 많다며 조그만 집필실에 스스로를 가두며 소설 창작에 몰입했다. 외부와의 연락은 일반 전화기가 유일했고, 출입도 거의 않는다는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하지만 보통의 우리는 중독되기 쉽지 않다. 마약 중독, 게임 중독처럼 즐거움에 빠지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배워왔기에 중독을 허용하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 중독은 정상적인 삶을 파괴하는 행위로 인식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중독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제하고 스스로를 관리하도록 훈육되어 왔다.

중독에 대한 이런 태도는 중독을 힘들게 만든다. 그래서 이를 극복했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일상이 다소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중독을 즐길 태도가 되었다고 해도, 저술 같은 창작 행위는 게임이나 TV와 달리 저절로 중독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처럼 즐거움에 그냥 빠져 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에 대한 '매서운' 판단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즉,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즐겁게만은 못한다. 창작의 고통은 '잘'이 잘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압박이 크다면 중독되기 힘들다.

결과 넘어 일 즐기게 하는 자기만의 중독 방식

강준만은 이런 어려움이 없었을까? "자신의 글이나 인생에 대한 불만이 별로 없으신 거예요?"라는 질문에 강준만은 답한다."없죠. 처음부터 없었다기보다는 저를 그렇게 만들어 갔죠."

강준만은 글 한번 쓰고 나서 다시 안 본다고 한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이 얼마나 될까, 쓰고 나서 집착하느니 다른 일을 하자고 털어 버린다고 한다.

퇴고를 중시하는 교과서적인 글쓰기가 아님은 분명하다. 오랜 글쓰기로 훈련되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중요한 것은 잘 써야 한다는 부담보단 글쓰기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도록 스스로를 만들어 왔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 스스로 가꾸어 온 삶의 '노하우'일 것이고, 창작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좌절한 지점이기도 하다. 잘 해야 한다는 압박을 극복하고 생산의 즐거움에 몰입하는 방법을 찾는 것. 창작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부딪쳐야 할 첫 번째 과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다른 개성만큼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강준만 인터뷰 자리에 있었던 한겨레 기자는 "결핍이 없네요. 완전 행복한 분이에요"라고 느낌을 말했다. 아파트 주민들도 강준만 교수는 늘 웃어서 만나면 기분이 좋다고들 한다. 강준만은 자기만의 즐거운 중독의 방식을 찾은 것이고 그래서 다작이 가능했고 삶에서도 '해피메이커'가 되었다.

강준만의 시작은 고립이었다고 본다. 고립되었기에 몰입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자기만의 중독방식을 만들어 나갔다. 그 결과 그는 고립되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만큼 동시대와 소통하고 또 인정받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고립을 통해서 그만의 사회적 소통 방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산 정약용도 그렇지 않은가.

강준만의 놀라운 다작은 부정적이기 쉬운 고립과 중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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