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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기업의 탐욕이 안전장치들을 마구 풀고 있는 지금, 언제 누가 재난과 참사의 희생자가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와 방향을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에서는 '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인권선언' 운동을 시작합니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해주시기를 바라면서 인권선언 운동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기획연재를 진행합니다. [편집자말]
재난안전가족협의회는 씨랜드참사, 대구지하철참사, 춘천인하대봉사단 참사, 태안해병대캠프 참사 등 각종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가족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우리 유가족들은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기에, 다시는 다른 사람들이 이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자 이 단체를 만들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의하면 자연재해와 이에 준하는 상황에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의무가 있다. 그런데 문제가 터지면 자치단체장, 국회의원 할 것 없이 다 달려와 자신들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듯 위로를 한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유족들 앞에서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법은 오히려 '불가항력'이었다고 말하면서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게 면죄부를 줬다. 국가와 자치단체가 복구에 신경을 쓴다고 하지만,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재산'에 대한 복구였을 뿐이었다. 참사를 당해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나 부상자들은 돈보다 못한 취급을 당했다.

유족은 슬퍼할 겨를도 없다

지난 4월 16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를 당한 한 실종자의 가족이 여객선 침몰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4월 16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를 당한 한 실종자의 가족이 여객선 침몰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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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는 예고 없이 온다. 우리는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슬픔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 유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유족들은 예방 소홀, 관리 부재로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직접 뛰어다니며 밝혀내야 했다. 책임을 져야 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법으로 하자는 반응이었다. 졸지에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고통을 몇 년씩 이어가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세분화 될수록 위험의 수위는 커지고 예측 또한 불가능해진다. 그것을 개인이 알아서 피하고, 사고가 나면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가. 그게 가능한 일일까? 국민의 안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국가의 임무 아닌가?

국가는 자신의 책임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 그래서 참사를 당해도 이게 내 잘못인지, 국가의 책임인지 헷갈릴 지경에 이르렀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참사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뛰어다녀야 하는 것을 알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유족들도 있는 것이다.
 
온데간데없는 알 권리... 모욕을 당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국회를 방문해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후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국회 본청을 나서자,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국회를 방문해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후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국회 본청을 나서자,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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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밝히기 위해 발로 뛰어다니면서, 우리에게는 국민으로서의 알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참사 원인에 대한 규명과 책임자를 밝혀내는 일은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과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책임주체가 국가와 지자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정보에 대한 접근도 어렵다.

어렵게 참사의 책임주체를 밝혀냈다고 해도 보상 문제가 매듭지어지면 모든 것은 없던 일이 된다. 경찰과 사법부도 기업이나 공무원들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법이 만인에 평등하다는 말은 맞지 않았다.

참사를 당한 유족들에게 가장 힘든 일은 또 다른 죄인이 된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분노를 마치 죄로 취급했다.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면 '죽은 사람을 갖고 돈 더 받으려고 투쟁한다'고 해당 지자체장이 유족들에게 대놓고 모멸감을 주기도 한다.

언론도 그렇게 유족을 매도하면서 그들을 몰상식한 인간으로 몰아갔다. 가족을 잃었다면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 유족들이 환자인가. 으레 참사가 터지면 즉각 트라우마 치료 지원을 하게 되는데, 유족이 진정 원하는 것은 참사의 원인을 밝히는 일이다. 그래야 아픔이 치유되기 때문이다.

핵심은 '판'을 바꾸는 일이다

지난 11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200일 범국민 추모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참가자들이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지난 11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200일 범국민 추모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참가자들이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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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것이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관광지에서 배를 출발시킬 때 인원수를 정확히 제한하는 것을 보니 바뀌는 것이 있긴 있었다. 장비 점검도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핵심은 '판'을 바꾸는 일이다. 우리 재난안전가족협의회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안전점검 한 번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사회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우선 재난에 대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원칙을 바꿔야 한다. 구조와 복구에 중심을 두는 게 아니라 예방과 근절이 우선이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안전에 대해 대비책을 만들고, 시간과 재정이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사전점검을 철저히 해야 한다. 국민들의 '안전불감증'을 탓할 일이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재난 안전 예방책을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둘째, 참사 책임자들의 처벌규정을 강화해 안전을 소홀히 하는 풍토를 아예 근절해야 한다. 실제 인적 과실이 아니더라도 사전 안전대책을 소홀히 한 것도 처벌 대상이 돼야 한다. 한편으로는 책임에 상응하는 권리와 통제권을 실무자들에게 줘 정치 권력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주로부터 이들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셋째, 진실규명에 따르는 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서 진실규명이 필요한데, 진실규명의 단초는 정보에 있다. 안전에 관련된 정보가 성역 없이 공개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민간기업에 이르기까지 의무적으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

재난 참사는 개인이 떠안아야 할 문제가 아니다. 안전이 국가와 지방단치단체의 책임이라는 것을 천명해야 하고, 그것을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지금까지 나는 재난안전가족협의회에서 활동하면서 참사에 대한 조사와 피해 유가족의 요구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재난 안전을 위한 독립기구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재난과 참사가 벌어지면 유가족들은 어찌해야 할지 알기 어렵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럴 때 재난안전을 위한 독립기구가 유가족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고, 유가족이 진실을 알기 위한 지난한 싸움을 할 때 옆에 서주며,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전문지식을 가진 이들을 조직한다면 참사의 원인 발생 및 문제 해결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지난 10일, 존엄과 안전을 위한 인권선언 운동이 제안됐다. 우리 유가족들이 느꼈던 아픔 그리고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모두의 권리로 함께 논의되고 선포되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재난안전가족협의회 소속 유가족입니다.



태그:#세월호, #인권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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