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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원 전 로이터통신 사진부장이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을 주제로 오마이스쿨 특강을 하고 있다. 정태원 기자는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항쟁 등 20세기 한국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87년 연세대 이한열 열사의 사진은 6월 항쟁의 기폭제이자 상징이되었다.
 정태원 전 로이터통신 사진부장이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을 주제로 오마이스쿨 특강을 하고 있다. 정태원 기자는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항쟁 등 20세기 한국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87년 연세대 이한열 열사의 사진은 6월 항쟁의 기폭제이자 상징이되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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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들을 카메라에 촘촘히 담아온 전 로이터 통신 한국지국 사진부장 정태원 선생. 그가 모처럼 청중 앞에 섰다.

지난 4일 <오마이뉴스> 대강의실에서 열린 오마이스쿨 공개강좌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에서 그는 현장을 누비며 겪은 경험과 사진 이면에 절절히 서려 있는 시대의 아픔을 '정직한 목격자'의 입장에서 강의했다.

생사를 넘나들었던 광주 그리고... 이한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도 그는 현장에 있었다. 5월 27일 전남도청 쪽으로 진입하던 탱크를 촬영하던 중이었다. 카메라 교체를 위해 고개를 숙이는 순간, 진압군의 총알이 그의 머리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빗나간 총알은 그가 서있던 바로 뒷벽을 때렸다.

"콘크리트 파편에 머리를 맞아 피가 났어요. 외신기자들한테 다친 곳을 보여주며 '얼마나 다쳤냐' 물어보니까 ABC 기자가 씨익 웃으며 담배를 주면서 하는 말이...'담배 연기가 머리 뒤로 나오면 못 사는 거고, 안 나오면 괜찮은 거다'라 하더라고."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정태원 선생이 찍은 이 사진은 외신에 타전되며 광주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정태원 선생이 찍은 이 사진은 외신에 타전되며 광주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 정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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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정태원 기자가 찍은 사진은 <TIME>등 외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정태원 기자가 찍은 사진은 <TIME>등 외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 정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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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찍은 사진은 국내 민주화 열기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지만, 시위 현장을 진압하던 경찰 폭력에 대한 고발장 노릇을 하기도 했다. 민주화 운동 당시 경찰은 '직격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카메라에 담긴 '진실'은 그와 달랐다.

6월 항쟁의 상징이었던 연세대 이한열군의 죽음도 바로 전투경찰의 직격 최루탄에 의한 것이었고, 이한열군이 직격 최루탄에 맞은 순간을 찍은 사람이 바로 정태원 선생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이한열군의 죽음을 사진으로 기록한 사람이 바로 정태원 전 로이터 한국지국 사진부장이다. 피격직전 이한열군이 교문앞에 나와있던 왼쪽 사진은 정태원 선생의 동생이 찍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이한열군의 죽음을 사진으로 기록한 사람이 바로 정태원 전 로이터 한국지국 사진부장이다. 피격직전 이한열군이 교문앞에 나와있던 왼쪽 사진은 정태원 선생의 동생이 찍었다.
ⓒ 정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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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원 전 로이터 한국지국 사진부장이 1990년 광주에서 찍은 전투경찰의 직격 최루탄 발사 장면. "직격발사를 하지 않는다"는 경찰측 발표를 이사진 한장으로 무색하게 만들었다.
 정태원 전 로이터 한국지국 사진부장이 1990년 광주에서 찍은 전투경찰의 직격 최루탄 발사 장면. "직격발사를 하지 않는다"는 경찰측 발표를 이사진 한장으로 무색하게 만들었다.
ⓒ 정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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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간 취재했던 판문점 에피소드

정태원의 카메라는 분단된 조국의 현장에도 있었다. 그는 26년 동안 취재했던 판문점에서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1986년 영국 대처 수상의 판문점 방문 에피소드, 북한 어부가 판문점을 넘어 북으로 돌아가면서 갑자기 옷가지들을 벗어 던진 사건 등 그 어느 사진 기자도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이었다. 

다음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군 유골이 판문점을 통해 인도됐을 때의 에피소드.

"1991년 6월, 한국 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에서 11구의 미군 유골을 보내 주었는데, 나중에 미군 측에서 발표한 것을 보니깐, 그중에 하나는 개뼈다귀였던 거예요. 북한 친구들이 좀 엉뚱한 데가 있습니다."

어찌보면 정태원의 인생을 반추하는 강연. 그래서인지 언론과 사진을 공부하는 젊은 대학생들과 청소년들의 얼굴이 많이 보였다. 그의 '현대사 특강'이 끝난 후 기자 정태원이 견지하는 삶의 원칙과 기자로서의 사명감 등을 묻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오마이스쿨 홈페이지(school.ohmynews.com)에서 정태원 선생의 12월 4일 특강을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 외신 사진기자 정태원 특강 바로가기

1978년 6월 13일 판문점. 북으로 송환되는 어부들이 판문점을 넘으며 남에서 제공했던 옷가지들을 모두 벗어 던지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슬픈 현장이다.
 1978년 6월 13일 판문점. 북으로 송환되는 어부들이 판문점을 넘으며 남에서 제공했던 옷가지들을 모두 벗어 던지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슬픈 현장이다.
ⓒ 정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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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원 선생이 한국 현대사 고비고비에서 찍은 귀한 사진들은, 오마이스쿨이 최근 출시한 서중석 교수의 온라인강좌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에서 더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서중석 강좌 바로가기



태그:#정태원, #현대사,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오마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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