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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의 시는 죽은 김소월이가 돌아 온 것 같다. 소월이 죽은 지 30년도 넘었는데 아직까지 소월타령을 하고 있느냐? 그동안 세월이 얼마나 많이 흘렀는데 젊은이들의 의식구조가 부족하다"

이는 부천시청역 갤러리에서 "진달래꽃 김소월을 추억하다" 전시회를 열고 있는 시인 구자룡이 들려준 이야기다. 구자룡 시인 (70살)은 대학시절 시화전을 열었는데 국문과 교수가 건대학보 (1964년, 185호)에 "학생시인 구자룡, 개인 시화전을 보고" 라는 평 속에 자신을 이렇게 평했다고 했다. 좋은 평인지 나쁜 평인지 그 의도야 어디 있던 간에 구자룡 시인의 김소월에 대한 "짝사랑"은 일찍부터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모은 김소월 관련 책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구자룡 시인의 모습은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는 듯하다
▲ 구자룡 자신이 모은 김소월 관련 책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구자룡 시인의 모습은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는 듯하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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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은사님은 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읊고 있는 국문과 제자들이 별로 맘에 안 들었던 모양이지만 이제 김소월은 누가 뭐래도 '국민시인'이다. 그러한 국민시인을 구자룡 시인은 일찌감치 알아보고 소월의 시를 흠모했다.

잔디 잔디 금잔디 / 심심산천에 붙은 불은 가신님 무덤가에 금잔디 /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도 /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린 구자룡은 선생님께서 동시 한편을 써오라는 지시에 고민하다 집에 있던 김소월의 "금잔디" 시를 자기가 쓴 시처럼 베껴낸다. 어린마음에 선생님이 설마 그걸 알까 싶었지만 그러나 선생님은 이내 알아차리고 구자룡을 불렀다. 야단맞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어린 꼬마에게 선생님은 야단은 커녕 "이 시를 베끼려고 얼마나 많은 시를 읽었겠느냐"라며 오히려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벌써 60년 전 일이다.

그러한 질긴 인연이 이번 전시회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구자룡 시인이 그간 모은 김소월 자료 1200여점은 시집을 비롯하여 영화포스터, 레코드 음반, 외국어 번역본, 연구서 등 실로 다양하다.

예전에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던 액자 속에는 띄어쓰기도 틀린 소월 시가 들어 있다
▲ 이발소 그림 예전에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던 액자 속에는 띄어쓰기도 틀린 소월 시가 들어 있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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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라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한때 이발소 그림으로 불리던 그림 속에서도 소월의 시는 살아있었다. 버려진 이발소 그림을 구자룡 시인은 소중한 보물처럼 한점 한점 모아 오늘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소월의 노랫말은 음반으로도 많이 나왔다
▲ 김소월 음반 김소월의 노랫말은 음반으로도 많이 나왔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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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은 살아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 <진달래꽃>을 내고 죽었지만 그로부터 94년이 지난 2014년 현재는 무려 500여종의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연구서, 번역시집, 감상집, 산문집, 소설로 쓴 전기 등 실로 다양합니다. 재미난 것은 같은 내용을 제목만 달리해 만들거나 표지 그림만 살짝 바꿔 출판 하는 등 99%가 인지가 없는 복제품들이 나돌았던 점입니다. 심지어는 육필원고 책이라고 나왔는데 그것 역시 가짜 육필입니다. 그 만큼 소월이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구자룡 시인의 "소월 사랑"은 끝이 없었다. 아니 어쩜 구자룡 시인은 소월을 사랑하기 위해 '시인'이 되었는지 모른다. 전시물을 열심히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김소월은 토속적인 잔잔한 우리의 정서를 잘 나타내는 시인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시 "초혼"은 일제강점기 때 저항시였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소월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여 제목을 붙인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 영화 포스터, 이와 같이 소월의 싯구는 영화 제목이 되거나 책 제목이 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 영화포스터 소월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여 제목을 붙인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 영화 포스터, 이와 같이 소월의 싯구는 영화 제목이 되거나 책 제목이 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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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 초혼 가운데서-

<독립기념관, 통권 제303호 (2013년 5월)>에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김소월의 <초혼>에 나오는 "님"과 "이름"은 "조국"으로 봐야한다고 했다. 이는 일제의 악랄한 검열에 걸리지 않기 위해 "연애시"로 위장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소월의 시 <초혼>은,

산산이 부서진 조국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조국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조국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조국이여!

로 바꿔 읽을 수 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며 나라를 잃은 슬픔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노랫말이다. 소월은 나약하게 이 시를 마무리 짓지 않았다.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조국이여!
사랑하던 그 조국이여
사랑하던 그 조국이여.

소월이 사랑한 이름이 "조국"이었음을 기자는 전시장을 둘러보며 새삼 느껴보았다. "저는 학자가 아닙니다. 그저 책이 좋아 수집하는 수집가(콜렉터)입니다. 지난 60여 년간 전국의 새 책방, 헌 책방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며 잡지 창간호 1만여 권과 함께 5만여 권의 고서를 수집했습니다. 김소월의 자료도 그 가운데 일부분이지요."

7호선 부천시청역 갤러리는 인사동 갤러리 못지 않은 매우 깔끔한 곳으로 전시중인 모습, 앞쪽 우산은 기념품으로 모 회사에서 만든 것인데 소월의 시가 새겨져 있다
▲ 김소월전 7호선 부천시청역 갤러리는 인사동 갤러리 못지 않은 매우 깔끔한 곳으로 전시중인 모습, 앞쪽 우산은 기념품으로 모 회사에서 만든 것인데 소월의 시가 새겨져 있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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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시인은 그간 모은 소월 관련 자료들을 <구자룡 컬렉션 김정식 80주기 추모집, 도서출판 산과들, 2014> 신간 책에 컬러로 하나하나 소개해 두었다. 이 한권만으로도 김소월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사려 깊은 책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올해 칠순을 맞는 그가 칠순잔치 따위를 접고 그 비용으로 김소월을 택해 전시회와 책 비용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소설가 박완서 씨가 "박수근 화가" 를 소재로 한 "나목"을 써서 우리에게 박수근을 다시 보는 계기로 만들었다면 구자룡 시인은 32살로 요절한 김소월을 우리 곁으로 아주 가까이에 불러준 사람이다. 막연히 "진달래 꽃" 의 작가로만 김소월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전시회장으로 발걸음을 한번 옮겨 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일 것이다. 서두르자. 전시회는 아쉽게도 내일 26일까지다. 

김소월전 포스터
▲ 김소월전 포스터 김소월전 포스터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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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 김정식( 1902~1934)>
향토적 소재와 설화적 내용을 민요적 기법으로 노래한 시인으로 아버지 성도(性燾)와 어머니 장경숙(張景淑)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2살 때 아버지가 철도부설 공사를 하다가 일본인에게 폭행당해 정신이상이 되자 할아버지가 손자를 극진히 키웠다.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고, 숙모 계희영에게〈심청전〉·〈장화홍련전〉 등의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그는 1915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들어갔으나 3·1 독립운동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해 졸업했다. 그가 오산학교에 다닐 때 조만식이 교장, 서춘·이돈화·김억이 교사로 있었는데, 김억에게 시적 재능을 인정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23년 도쿄상과대학에 입학했으나, 9월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학교를 그만두고 귀국하여 광산일, 신문지국 일등을 했으나 실패하고 1934년 32살 때 평북 곽산에서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김소월 관련 자료를 모아 전시하는 <시인 구자룡>

1945년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과, 동대학원 졸업
정한모 시인 추천으로 등단
부천, 소명여중고 국어교사 30년 재직

저서로는 시집 <깊은 구지 세탁소> 등 25권, 수필집 <똥 기저귀 빠는 남자> 등 6권, 동화집 <햇님나라 구경간 채송화> 등 11권 연구서<병영로 연구> 등 8권

*전시회 <진달래꽃 김소월을 추억하다> 11월 11일 부터 11월 26일까지
*지하철 7호선 부천시청역 갤러리
* 문의: 010-6248- 2918

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신문 얼레빗과 대자보에도 보냈습니다.



태그:#김소월, #김정식, #구자룡,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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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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