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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자 녀석이 시키지도 않은 엎드려뻗쳐를 시도 때도 없이 합니다. 벌주는 거 절대 아니랍니다.
 제 손자 녀석이 시키지도 않은 엎드려뻗쳐를 시도 때도 없이 합니다. 벌주는 거 절대 아니랍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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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명 조교가 외칩니다. “엎드려! 하나에 ‘양심을’, 둘에 ‘속이지 말자’ 하나! 둘!”
 천정명 조교가 외칩니다. “엎드려! 하나에 ‘양심을’, 둘에 ‘속이지 말자’ 하나! 둘!”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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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명이 실제로 보니까 별로던데, 그지?"
"야, 천정명이다. 천정명..."
"실제로 보니까 별롭니다."

서경석과 두 친구가 병영 내무반에서 쑥덕거립니다. 그러다 정말로 조교 모자를 정연히 쓴 천정명이 보무도 당당하게 등장합니다. 그들의 쑥덕거림에 찬물을 끼얹는 천정명 조교의 한 마디 말.

"방금 조교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천정명'이라 한 사람 나와!"

모두가 얼음이 됩니다. 서경석이 손을 들까 말까 하다 결국 들지 못합니다. 그 위세가 여간해야지요. 침을 꼴깍 넘깁니다. 천정명 조교가 다그칩니다. "다시 한 번 기회 준다. 셋 셀 동안 나와! 하나, 둘, 셋!" 결국 아무도 나오지 않습니다. 서슬 퍼런 명령이 떨어집니다.

손자 녀석의 엎드려 뻗쳐, 벌주는 거 아니랍니다

"엎드려! 하나에 '양심을', 둘에 '속이지 말자' 하나! 둘!"
"나는 민간인 천정명이 아닌, 조교 천정명이다."

목소리가 작다고 또 엎드려뻗쳐를 시킵니다. 이어 웃었다고 또 엎드려뻗쳐를 시킵니다. MBC <진짜사나이> 병영체험 프로그램의 한 장면입니다. 엎드려뻗쳐, 학창시절과 군대시절 참 잊을 수 없는 기합입니다. 그때는 그리도 지옥 같더니 이젠 아스라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요즘처럼 '인권'이니 '체벌'이니 하는 말이 뭔지도 모르던 때였기에 엎드려뻗쳐가 가장 수위 낮은 기합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손자 녀석이 시키지도 않은 엎드려뻗쳐를 시도 때도 없이 합니다. 힘들까봐 하지 말라고 말려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긴 말귀를 알아들을 연세(?)가 못되니까요. 이제 6개월을 넘겨가고 있습니다. 요새 팔과 다리에 힘이 좀 생기는 모양입니다. 힘이 남아 도니 별짓을 다합니다.

요새 사람들은 '뻘짓'이라고 하지요. 원래 '뻘짓'은 전라도 사투리로 '허튼짓'을 말하는데 어찌하다 젊은이들 사이에 통용어가 된 모양입니다. 서준이 녀석 뻘짓 중에 가장 황당한 뻘짓이 바로 '엎드려뻗쳐'입니다. 아이에게는 먹는 일, 싸는 일, 우는 일, 웃는 일, 침 흘리는 일 등이 뻘짓이 아닌 일이겠지요. 그런 아이의 주된 사무(?)를 보지 않을 때는 어김없이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하는 겸손한 손자 녀석이 참 귀엽습니다.

처음에는 무릎을 꿇고 팔만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하더니 차츰 무릎도 세우는군요.
 처음에는 무릎을 꿇고 팔만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하더니 차츰 무릎도 세우는군요.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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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타기 놀이도 꽤 볼만합니다.
 비행기타기 놀이도 꽤 볼만합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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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무릎을 꿇고 팔만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하더니 차츰 무릎도 세우는군요. 비행기타기 놀이도 꽤 볼 만합니다. 그러곤 한참을 몸을 흔들어댑니다. 곁에서 식구들이 재밌어 하면 자신도 기분이 업되어 더 흔들거립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좋답니다. 늘 싱글벙글입니다. 녀석 웃는 모습을 보면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엎드려뻗쳐를 하는가 했더니 하루 이틀 지나니 팔과 발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기기 시작하는 겁니다. 딸내미는 아이가 성장이 조금 늦은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 할애비가 육아 사이트를 뒤졌습니다. 아이 성장이 더딘 것인가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6개월 된 아이가 노래 부른다고요? 네

소아과 전문의 하정훈 원장에 따르면, 아이가 6개월이 되면 뒤집기는 물론 기고 조금씩 앉기도 한답니다. 한 번에 두 음절을 발음하고, 시야도 넓어져 멀리도 보고 두리번거리며 탐색을 한답니다. 소리 나는 장난감을 좋아하고요. 고집도 생긴다네요.

뒤집기는 벌써 한 달 전부터 했으니 제 코스를 밟는 것이 분명합니다. 기는 게 서툴긴 하지만 막 시작했으니 되었고요. 앉는 건 잡아주면 됩니다. 혼자서는 아직 아니고요. 그러나 곧 앉겠지요. 하 원장께서 말하지 않은 것도 하는 걸요. 손을 잡아 주면 선답니다.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서서 하하 웃으면 천하가 다 즐거워하죠.

장난감을 째려보기도 하고, 아니 장난감 오리와 눈싸움도 한답니다. 항상 서준이가 지긴 하지만 말입니다.
 장난감을 째려보기도 하고, 아니 장난감 오리와 눈싸움도 한답니다. 항상 서준이가 지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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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으로 손을 뻗어 잡으려고 여간 애쓰는 게 아니거든요.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합니다.
 장난감으로 손을 뻗어 잡으려고 여간 애쓰는 게 아니거든요.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합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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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번거리고 자신이 무엇인가 잡으려고 움직이는 걸 보면 시야도 꽤 넓어진 것 같습니다. 장난감으로 손을 뻗어 잡으려고 여간 애쓰는 게 아니거든요.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합니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뿐이 아닙니다. 장난감을 째려보기도 하고, 아니 장난감 오리와 눈싸움도 한답니다. 항상 서준이가 지긴 하지만 말입니다.

장난감 오리야 그려놓은 눈이니 깜빡일 수가 없잖아요. 살아서 눈을 깜빡일 수 있는 서준이가 항상 지는 거죠. '지는 게 이기는 거'라잖아요. 또 실증주의 철학자 콩트는 "역사는 살아있는 자들에 의해서 보다 죽은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거든요. 그건 죽은 자가 산 자를 이긴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서준이가 져야 합니다. 그게 이기는 거니까요.

문제는 두 음절을 발음하는 건데... '빠빠' '마마' 이렇게 하는 게 두 음절을 발음하는 거랍니다. 그런데 아직 서준이는 거기까지는 못 갔습니다. 큰소리치는 건 좀 합니다. 화통을 삶아먹었는지 녀석이 소리를 지르면 가구가 다 들썩거립니다.

또 하나 잘하는 거. 노래 흥얼거리기입니다. 노래를 그리 좋아할 수가 없답니다. 춤을 춰가며 노래에 빠진답니다. 아마 독자들 중엔 이 할애비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거짓말이 아닙니다. 노랠 흥얼거려요. 음과 발음이야 전혀 아니지만.

요샌 장난감도 노래를 한답니다. 노래하는 장난감을 작동시켜 주면 집중력 빵빵합니다. 울다가도, 신경질 좀 부리다가도 노래하는 장남감만 틀어주면 귀를 기울입니다. 그냥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론 부족한지 흔들거리며 춤사위를 펼치고, 더 나아가 노래에 맞춰 소리를 지릅니다.

아무래도 가수를 시켜야 할 모양입니다. 이 의견에는 딸내미도 동의한답니다. 하긴 어린아이 자랄 때 대통령 안 시켜 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요. 다 대통령감, 장군감이죠. 뭐. 옛날 얘기라고요? 맞아요. 요샌 아이돌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한두 번 시키지 않는 부모 없지요.

우리 서준이 녀석 좀 늦은 모습도 보이지만 어떤 건 탁월하게 두각을 나타내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늦은 게 아닌데 딸내미는 그리 성화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 우리 서준이 벌준 사람 아무도 없답니다. "엎드려뻗쳐!" 천정명 조교처럼 외친 사람 아무도 없다니까요. 그러나 오늘도 엎드려뻗쳐 몇 번을 해야 잠자리에 들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손을 잡아 주면 선답니다.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서서 하하 웃으면 천하가 다 즐거워하죠.
 손을 잡아 주면 선답니다.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서서 하하 웃으면 천하가 다 즐거워하죠.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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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꽃할배 일기, #서준, #손주, #손자,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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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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