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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사 입구에 아직 단풍이 곱게 남아 있다
▲ 고란사 단풍 고란사 입구에 아직 단풍이 곱게 남아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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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부여 부소산(扶蘇山)을 찾았다. 비가 조용히 내린다. 절기로 보아 분명 겨울이건만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부소산은 아픈 옛날을 회상하듯 가만히 비를 맞고 있다. 멀리 부소산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비애가 물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700년 백제 사직의 망국의 아픔 때문인가! 꽃다운 삼천궁녀의 원혼 때문인가!

차를 주차하고 매표소를 지났다. 두 갈래 길이 막아선다. 왼쪽은 사자루를 거쳐 고란사로 가는 길이요, 오른쪽은 삼충사와 영일루를 거쳐 고란사로 돌아가는 길이다. 부소산은 백제의 많은 유적를 간직한 곳이다. 부소산을 좀 더 온전히 돌아보기 위해 오른쪽 길을 택했다. 삼충사로 향하는 길은 차량이 다닐 만큼 넓을 뿐 아니라 가파르지도 않다. 누구나 편안히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부소산은 백마강변에 솟은 사비성의 진산으로 해발 106m의 언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얼마 오르지 않아 삼충사(三忠祠)로 들어섰다. 산속은 우중이건만 어디선가 붉은 빛이 쏟아진다. 산속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단풍나무가 아직 고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뜻하지 않은 산속 풍경에 마음을 몽땅 빼앗기고 말았다. 어찌된 일인가! 거리의 나무들이 나뭇잎을 모두 떨 구고 겨울채비에 들어갔건만, 부소산 산속은 아직 가을이 불타고 있으니 말이다. 백제의 충신들의 뜨거운 가슴 때문인가!

부소산에서 뜻밖의 단풍이 펼쳐져 있다
▲ 부소산 단풍 부소산에서 뜻밖의 단풍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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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로 둘러싸인 삼충사에는 성충, 흥수, 계백의 세 충신이 사당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영정을 살려보았다. 형제처럼 세분이 너무도 닮았다. 크지 않은 눈이며 갸름한 얼굴형이 언뜻 보아 구별하기 힘들 것 같다. 성충과 흥수는 사치와 유흥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던 의자왕에게 고언을 했다가 유배를 갔던 충신들이고, 계백은 5천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5만의 신라군사와 맞선 장군이다. 삼충사는 이들 세 충신을 기리기 위해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매년 10월 백제문화제가 열릴 때 제향을 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삼충사를 지나 영일루로 향했다. 영일루는 전설에 의하면  백제의 왕들이 매일 계룡산 연천봉으로 솟아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국태민안을 빌던 영일대가 있었던 곳이라 한다. 영일대로 가는 길은 고맙게도 고운 단풍나무가 우중에 곳곳에 서 있고,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귀신의 눈까지 멀게 했다는 복자기 나무가 동행해준다. 복자기 나무는 이미 겨울채비에 들어 간 모습이다. 아직 나뭇잎은 그대로 붙어 있으나 벌써 갈색으로 갈아입고 영일대로 향하고 있다.

지금의 영일루는 1964년 홍산 있던 조선시대 관아문을 옮겨 놓은 것으로 백제시대에는 영일대가 있었던 곳이라 한다. 이곳에 오르면 멀리 백제시대에 축조된 포곡식 산성인 청마산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임금이 게룡산 연천봉에 솟는 해를 바라본 영일대
▲ 영일루 임금이 게룡산 연천봉에 솟는 해를 바라본 영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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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고 서 있는 소나무가 신비하기만 하다.
▲ 소나무 비를 맞고 서 있는 소나무가 신비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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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은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 서 있다. 수피가 붉어 적송이라 부르는 소나무다. 내륙에 있다하여 육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소나무 사이로 심어 놓은 단풍나무가 너무 잘 어울린다. 사비성의 비원답게 산속 풍경이 걷는 이의 마음을 너무도 즐겁게 한다. 삼천궁녀의 비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군량미를 보관했던 군창지를 지나 반월루으로 향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하다. 마치 소나무 동산 같다. 소나무는 언제보아도 나무중의 왕처럼 기개도 있고 기품도 있다. 거북등모양을 한 소나무 껍질에서 강인함이 느낄 수 있고, 구불구불 휘어진 소나무 줄기에서 고난의 오랜 세월을 느끼게 한다. 소나무는 언제 보아도 아버지처럼 굳고 어머니 같이 따뜻하다.

소나무 숲을 헤치고 반월루( 半月樓)에 들어섰다. 부여시내와 백마강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부여 시내는 높은 빌딩 하나 없이 나지막한 건물로 가득하다. 옛 고도를 말해 주듯 건물들은 낡았고 고색 빛이 완연하다. 차라리 저 아래 보이는 건물이 모두 한옥이라면 어떨까!  옛 고도에 어울리는 멋진 풍경이 될 것 같다.

반월루를 거처 부소산 제일 높은 곳에 세워진 사자루에 올라섰다. 이곳에도 소나무가 가득하고 고운 빛을 쏟아내는 단풍나무가 사람들을 유혹한다. 푸른빛과 붉은 빛이 섞여 어찌나 아름다운지! 누구라도 그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영화 속의 주인공인 듯싶다. 사자루는 부여 임천면 관아의 정문이던 것을 1919년에 부소산 제일 높은 송월대로 이전하여 지으면서 이름을 개산루에서 사자루로 바꾼 것이라 한다.

아직 사자루에는 단풍이 떠나지 않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 사자루 주변 풍경 아직 사자루에는 단풍이 떠나지 않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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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루(泗疵樓)를 내려와 고란사로 향한다. 고란사로 향하는 길에 한 할아버지가 고란사 약수를 마시고 젊어 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득한 옛적 소부리의 한 마을에 금슬 좋은 노부부가 살았는데, 늙도록 자식이 없어 할머니는 늘 되 돌릴 수 없는 세월을 한탄하며 다시 한 번 회춘하여 자식 갖기를 소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일산(日山:금성산)의 도사로부터 부소산의 강가 고란사 바위에는 고란초의 부드러운 이슬과 바위에서 스며 나오는 약수에 놀라운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다음날 새벽 남편을 보내 그 약수를 마시게 하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다음날 일찍 약수터로 찾아가보니 할아버지는 없고, 웬 갓난아이가 남편의 옷을 입고 누워있어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아차 했다. 도사가 한잔 마시면 삼년이 젊어진다는 말을 남편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갓난아기를 안고 집에 돌아와 고이 길렀는데 후에 이 할아버지는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백제시대 최고의 벼슬인 좌평에 올랐다고 한다. "

삼천궁녀가 떨어진 낙화암에 소나무가 지키고 있다.
▲ 낙화암 삼천궁녀가 떨어진 낙화암에 소나무가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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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사(皐蘭寺 )로 내려가는 길에 백화정자가 길을 가로 막아선다. 그 뒤로 삼천궁녀가 몸을 백마강에 던졌다는 낙화암이 있다. 낙화암은 의자왕 때 나당 연합군에게 사비성이 함락 당하자 궁녀들이 적군들에게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정조를 지키겠다고 뛰어내렸다는 곳이다. 원래 이름은 타사암이다. 궁녀들이 마치 꽃잎처럼 떨어졌다하여 낙화암( 落花岩)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낙화암에는 큰 상처를 입은 듯 소나무 한그루가 바위틈에 서서 그 곳을 지키고 있다. 강물로 뛰어 내려야만 했던 궁녀들의 안타까운 심사를 그 소나무만 아는 듯 백마강에 시선을 떨 군 채 침묵하고 있다.

과연 삼천이나 되는 궁녀가 이곳 낙화암에서 몸을 던졌을까? 백제의 왕 궁터의 규모를 볼때 삼천의 궁녀가 살기에는 너무 작다. 아마 궁녀를 비롯한 사비성의 여인들이 많이 뛰어 내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삼천궁녀가 전설로 내려오는 것일까? 낙화암에 서서 백마강을 가만히 바라보니 알 것 같기도 하다. 정사를 돌보지 않고 여자만 좋아했던 왕의 방탕한 생활을 비판하고, 역사의 교훈을 주기 위해 후세들이 지어낸 말이 아닐까 한다.  

고란사에 낙엽이 두텁게 쌓여 있다.
▲ 고란사 고란사에 낙엽이 두텁게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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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을 돌아 고란사로 내려갔다. 우중이건만 붉은 단풍이 그대로 남아 그만 걸음을 멈추게 한다. 고란사 지붕에는 낙엽이 가득 쌓여 있고, 바위 뒤에는 단풍이 활짝 피어 있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우중에 보는 단풍이라 더 곱고 맛이 다르다, 고란사에는 아직 가을이 떠나지 않고 삼천 궁녀가 숨겨둔 보물처럼 빛나고 있었다.

고란사 절 뒤에는 고란정이라는 우물이 바위 틈에 있고, 그 위에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다. 고란사는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백제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도 하고, 낙화암에서 떨어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고려 헌종 때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백제의 많은 유적을 간직한 부소산, 비록 망국의 슬픔을 간직한 곳이지만, 뜻하지 않게 만난 가을단풍이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백제인의 숨결이 고스란이 느껴지는 곳에서 잡다한 생각을 떨치고 마음에 위안을 얻을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더욱이 우중에 만난 고운 단풍과 소나무 숲은 부소산 여행의 백미로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또한 부소산의 아픈 역사가 우리의 가슴에 영원한 울림으로 남아 역사에 뜨거운 교훈이 될 것이다.


태그:#무소산 , #고란사, #삼천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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