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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자동차로 3시간 여를 달려 케리 지역(Conty Kerry)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딩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그림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집에서 자동차로 3시간 여를 달려 케리 지역(Conty Kerry)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딩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그림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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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 지역(County Kerry)은 아일랜드 남서쪽에 위치하는 곳으로 아일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꼽힌다. 이곳의 크고 작은 반도들은 대서양을 향해 뻗어 있는데, 해안선을 따라 펼쳐 치는 풍경은 감탄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 중에 가장 위쪽에 딩글 반도(Dingle Peninsula)라는 앙증맞은 이름을 가진 곳이 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귀여움과는 달리 이 지역 내에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유적지와 크고 작은 산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아일랜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딩글 반도를 찾은 산악인들은 종종 예정했던 날짜보다 더 오래 머물면서 이곳의 산을 즐긴다고 한다.

딩글 반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가봐야 하는 슬리 헤드 드라이브(Slea Head Drive) 코스. 딩글에서 시작해 해안도로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딩글로 돌아오는 이 길은 딩글 반도의 대표적인 관광 코스다. 대략 40km가 되지 않는 길이지만 중간중간 멈춰야 할 곳들이 너무 많아 하루 정도는 딩글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좋다.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풍경이 펼쳐진 그곳

슬리 헤드(Slea Head) 도로를 달리다보면 선사시대의 유적지와 양을 치는 목자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슬리 헤드(Slea Head) 도로를 달리다보면 선사시대의 유적지와 양을 치는 목자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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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아이리시(아일랜드인)들은 아일랜드의 풍경은 어딜 가나 비슷하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는 일리 있는 말이다. 아일랜드는 주변의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과거의 찬란한 유산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아니기 때문에 유명한 건축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람보다 양과 소, 말이 더 많은 나라인 만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드넓게 펼쳐진 목초지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각종 동물들의 모습이다.

어느 지역에는 양 목장이 있고, 어느 지역에는 젖소 목장이 있는 식이 아니라 한 목초지에 양, 소, 말들이 함께 뛰어 논다. 처음 이 풍경을 봤을 땐 사방에서 동물들이 뛰어 노는 것이 신기해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렀지만, 어느새 나 역시 이러한 풍경에 적응해 버렸다.

그래서 아일랜드의 풍경들은 어떤 면에서는 아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리시들이 추천했던 곳이 케리 지역이었다. '이곳의 풍경은 꼭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믿고 우리는 여행을 시작했다.

집에서 출발해 딩글로 가는 아일랜드의 풍경 역시 동네에서 자주 보던 것과 비슷했다. 그렇게 4시간 가량을 달렸을까? 케리 지역을 지나 딩글 반도로 들어가자 신기하게도 항상 보던 풍경들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 대신 운전을 하던 나는 딩글을 향해 들어가면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심상치 않은 풍경들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자기! 저기! 저기!! 옆 좀 봐봐! 빨리 사진 좀 찍어줘요!"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놀란 남편은 부랴부랴 일어나 사진기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아... 아까 거기 찍었어야 했는데..."

우리가 언제 이렇게 높은 지대까지 올라왔던 것일까? 운전을 하는 내내 특별한 경사를 느끼지 못했는데... 창문 밖에는 흐린 날씨가 무색할 만큼 푸르고 넓은 평야지대 아래 에메랄드 빛의 바다와 하늘이 떡하니 자리 잡고 우리를 반겼다. 어디가 바다의 끝이고 어디서부터 하늘이 시작되는지 모를 만큼 바다와 하늘의 경계는 불분명했지만, 하얀 도화지에 그려진 한 폭의 풍경처럼 그곳은 아름다웠고 평온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케리 지역을 아름답다고 하는구나. 이래서 사람들이 딩글을 찾는구나...'

아직 딩글 반도의 본격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첫 풍경만으로도 나는 작은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았다. 사진에서만 봤던 드넓은 대지의 아름다움을 바로 옆에서 보았고 그곳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벅찬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대서양의 아름다움이 집약되어 있는 곳, 슬리 헤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것 같은 도로이지만 엄연히 2차선 도로다. 하루에도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이 길을 오간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것 같은 도로이지만 엄연히 2차선 도로다. 하루에도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이 길을 오간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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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 헤드(Slea Head)는 아일랜드 국도인 R559 도로를 따라 펼쳐진 해안도로다. 드라이브 코스는 딩글에서 시작해서 딩글에서 끝난다고 할 수 있지만 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딩글반도의 서쪽 끝에 있는 곳을 이야기한다.

딩글 반도 자체가 대서양을 향해서 튀어 나와 있지만 그 반도 중에서도 더 튀어 나간 곳을 슬리 헤드라고 한단다. 해안 도로를 달리다 보면 던베그 포트(Dunbeg Fort)를 시작으로 곳곳에 유명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장소들이 많이 있다.

슬리헤드를 향해 가는 중간 지점에는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장소, 초기 기독교 시대의 예배당 등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들이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슬리헤드 드라이브 코스를 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절벽 위에 있는 해안도로는 주로 좁은 이차선이거나 일차선 도로다. 처음 이런 도로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공포감을 느끼기 충분할 만큼 좁고 위험해 보인다.

도로와 절벽의 경계에 특별한 안전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작은 돌담이 놓여 있거나 나무로 만들어진 엉성한 나무 지지대만 이곳을 운전할 때 조심하라는 암묵적인 신호를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관광 버스는 하루에도 여러 번 수많은 관광객을 태운 채 이 좁은 길을 달린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길은 약 20km 가까이 되니 어찌 보면 여행자들은 20km짜리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이곳이 더 스릴 있고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이곳을 달리면서 나는 특별한 감정을 느꼈는데 바로 쉽게 올 수 없는 길 위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타 해안도로를 달릴 때의 느낌과 달리 내가 달리고 있는 길은 아일랜드에서 대서양과 가장 가까운 곳에 닿아 있었다. 많은 산들을 오를 때보다 가장 높은 산을 오를 때의 기분이 남다르듯이, 많은 해안도로 중에서 대서양과 가장 가까운 끝자락을 나도 밟았다고 생각하니 더욱 기분이 짜릿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모험을 떠나는 구나. 쉽게 닿을수 없는 곳에 깃발을 꼽고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몇 년을 준비하는 과정을 참고 견디는구나...'

슬리 헤드 드라이브 코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
 슬리 헤드 드라이브 코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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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베그 포트(Dunbeg Fort), 슬리 헤드(Slea Head), 던모어 헤드(Dunmore Head)에서 본 풍경들. 너무 아름다워서 어느 순간부터는 무덤덤해져 버리는 그곳. 드넓게 뻗어 있는 목초지 아래로 보이는 절벽, 그리고 멀리 보이는 크고 작은 바위섬들은 묵묵하게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섬들은 '블라스켓 섬들' 혹은 '웨스턴 섬들'이라고 불린단다. 아주 오래 전 이런 섬들 곳곳에는 은둔지와 요새들의 폐허가 있었고 역사의 초창기 시절엔 사람들도 거주했단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고립된 바위섬, 그것도 지구상에서 가장 거친 환경을 지닌 이곳에서 살아간 것일까?

그렇게 딩글 반도는 신비한 비밀을 간직한 비밀의 요새와 같았고 마치 우리는 새로운 모험을 떠난 탐험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흐린 날씨에 찾아간 딩글 반도는 나에게 적지 않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다듬어지지 않아 더 순수했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대서양의 끝자락을 경험할 수 있었던 기쁨.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는 날 다시 딩글 반도를 찾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때는 지금보다 더 순수한 그곳의 매력에 빠질 수 있을까?


태그:#아일랜드, #케리 지역, #딩글 반도, #슬리 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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