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애호가들에게도 프랑스 영화는 꽤 난이도 있는 축에 속한다. 철학적인 메세지를 던지고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에 대해 사색하게 만드는 프랑스 영화는 분명 어렵지만 그만큼 매력이 넘친다. 한 가지 메세지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와는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영화를 오로지 엔터테인먼트로서 즐겨야겠다면 프랑스 영화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 <삼바>는 프랑스 영화에 대한 당신의 편견을 무참히 무너뜨릴 수 있는 코미디 영화다.

<언터처블:1%의 우정>을 연출한 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토레다노 감독의 영화 <삼바> 속 주인공 삼바(오마 사이 분)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세네갈 출신의 불법체류자다. 그는 거주권 신청이 거부되면서 법원으로부터 추방명령을 받았지만 프랑스에 숨어 살고 있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를 그가 온전히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인 앨리스(샤를로뜨 갱스부르 분)는 이민협력 자원봉사자로 이민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일을 한다. 그렇게 삼바와 앨리스는 자원봉사자와 이민자로 만나 사랑과 우정 그 어딘가에 있는 감정을 느끼며 지낸다. 하지만 <삼바>는 단순히 사랑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거주권에 목숨거는 이민자들의 삶

 영화 <삼바>의 한 장면. 윌슨(타하르 라힘 분)과 삼바(오마 사이 분).

영화 <삼바>의 한 장면. 윌슨(타하르 라힘 분)과 삼바(오마 사이 분). ⓒ Quad films, Ten films


영화 <삼바>는 하나의 줄거리만 가지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작은 사건들이 서로 엮이며 하나의 큰 사건을 향해 전개되고, 그 사건이 해결되며 결론에 치닫고 엔딩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에 반해, <삼바>는 세네갈 출신의 이민자가 거주권을 받기 위해 프랑스에서 고군분투하는 큰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위기-절정 이라는 일반적인 전개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작은 에피소드들이 모여 각각의 이야기를 가질 뿐 그 이야기들은 결론을 향해 하나로 모이지는 않는다.

아마 일반적인 상업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은 이런 전개 방식이 다소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대부분이 <삼바>와 비슷하다. 우리의 이야기는 할리우드 영화처럼 거창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다. <삼바>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겪는 소소한 갈등과 이야기가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매일 아침 인력시장에서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는 주인공의 삶에는 고단함이 묻어있다. 삼바는 큰 돈을 주고 위조 거주권을 구입하지만 조악한 기술로 만들어진 탓에 들통나기 십상이다.

미래에 대한 계획은 차치하고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 그의 인생은 마냥 침울 할 것 같지만 삼바와 그의 친구들은 그 속에서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고층 빌딩의 유리창을 닦으면서도 삼바의 친구 윌슨(타하르 라힘 분)은 빌딩 안에 있는 여성들에게 매력을 어필할 뿐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증'의 문제

 영화 <삼바>의 한 장면. 삼바(오마 사이 분)와 앨리스(샤를로뜨 갱스부르 분).

영화 <삼바>의 한 장면. 삼바(오마 사이 분)와 앨리스(샤를로뜨 갱스부르 분). ⓒ Quad Films, Ten Films


영화 속의 이민자들은 고작 '거주증' 하나를 얻기 위해 공권력을 피해 파리 목숨을 살고 있다. 프랑스 시민에게는 '고작'인 그 네모난 플라스틱 하나에 많은 이민자들은 삶과 죽음을 오가기도 한다. 영화는 프랑스의 이민자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선과 악을 구분짓지는 않는 다. 무엇이 정의냐는 질문은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을 뿐이다.

'증' 하나에 달라지는 그들의 현실이 각박하게 느껴진다. 한국의 학생들에게 이미 대학교는 명문대와 비명문대로 나눠져 있고, 기업은 대기업과 그 외로 구분된다. 거주지가 강남이냐 강북이냐, 혹은 서울이나 지방이냐로 사람을 판단하기도 한다. 학생증, 사원증, 주민증으로 이분화되는 세상 속에서 '증'이 가지는 위력은 대단하다. 플라스틱 하나를 얻기 위해 매일을 불안하게 살아야 하는 삼바의 삶이 우리가 다르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고단함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삼바의 태도도 우리와 비슷하다. 가명을 써가며 경찰을 피해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리며 삼바는 '이제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도 끝까지 그가 자신을 기억할 수 있었던 힘은 곁에서 기억해 주는 앨리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내가 기억하잖아요."

영화 속에서는 '증' 하나에 사람을 판단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를 기억해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석준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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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안녕의 안녕」 작가.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씁니다. https://brunch.co.kr/@byul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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