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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글자를 몰라서 앞이 캄캄해 보신 적 있당가요. 버스를 타려고 해도 글자를 모릉게 콩닥콩닥 거려서 혼자 여행은 꿈 꿔 본 적도 없었제요. 혹여라도 손주들이 그림책 갖고 와서 물어볼까봐 이뻐하다가도 도망쳐 버리는 시골 엄니들의 애통터지고 복창 터지는 심정 모르시제라. 조합이나 면사무소라도 갈라치면 서류 갖다 작성하라고 할까봐 눈치 보여서 내 이름 석자라도 써 봤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던 엄니들이 당당하고 황홀하게 발표회를 했당께요. 혼자 보기 아까워서 살짝 공개할께라, 잉.

지난 수요일(11월 5일) 전북 순창군 구림면에 소재한 장암교회에서는 꺄르르 깔깔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걸랑요. '2014 전북지역 특성화 문화예술 지원사업'의 하나로 순창 문화원에서 추진한 '부뚜막에서 펼쳐 내는 책놀이 여행'이 35강을 마치고 책거리 겸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는 자리를 마련하였거든요.

8개월 교육을 기록한 활동사진.
 8개월 교육을 기록한 활동사진.
ⓒ 황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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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전 모습
 시화전 모습
ⓒ 황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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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메, 워쪌라고 나만 요로코롬 입벌리고 웃었당가, 흐미 누가 보면 챙피허겄네."
"울덜이 요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었네 잉, 맨날 논 것 같은디, 오지고 또 오져부네."

교회 강당에 삥 둘러서 펼쳐 놓은 사진들 보시며 이야기 꽃 피우시느라 연습하자고 혀도 딴 소리들만 허신당께요. 본인들이 한 자 한 자 쓰신 시화들을 보면서는 가슴이 울렁거리시는지 피시식 고개 돌려 웃어 불지요.

8개월 동안의 사진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책과 시들로 함께 공부에 매진했는지를 한눈에 보여 줘 버렸응께요. 무지개꽃으로 엄니들의 소망을 적었고 무지개 물고기에 깨알 같이 적어서 만든 공동 작품도 눈길을 끌었제라. 꿈 나무에 적어 놓은 글들과 그림 작품들이 풍성한 발표회를 예고했응게요.

아침 나절부터 일하고 오신 할머니 학생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예쁘게 꾸미려고 머리도 올리고 스프레이도 뿌리고 화장도 해부렀어라. "워메 시집가도 되불겄네. 울덜도 단체로 선보러 갈까?"라며 소녀처럼 꺄르르 웃으시지만 속은 시방 겁나게 떨리고 있다고 얼굴에 쓰여있는디요. 드레스를 입고 리허설 작업을 하는데 목소리들이 평소 같지 않게 떨리고 헤매느라 어떻게 마친 줄도 몰랐당께요.
 
자작시를 낭송하는 할머니 학생들
 자작시를 낭송하는 할머니 학생들
ⓒ 황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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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공연
 축하공연
ⓒ 황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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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부터 시작된 행사에는 할머니 학생들의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지역 아동센터 학생들이 모두 모여 축하해 주기 바빴제요. 면장, 군의원 조합장까지 축하하러 오시고 순창 문화원 관계자들도 많이 오싱게 다들 얼굴 빨개졌제라. 

1부 행사는 부뚜막에서 펼쳐 내는 책놀이 여행 소개와 내빈들의 축사가 이어졌구요. 그리고 진달래꽃 피던 봄부터 빠알갛게 물든 가을까지 밤 늦게까지 웃고 공부하며 책놀이 한 슬라이드와 동영상을 틀었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워메 저런것까지도 원제 찍어놨다냐. 저것 만들 때 참말로 오지게도 재미졌었는데 잉. 오메 못살어"하시며 박장대소했죠.

2부 행사는 '책 읽어 주는 할머니'라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지요. 버스 타야 할 때가 무섭고 농협이나 면사무소 가서 서류 하라고 할 때가 두려웠던 할머니 학생들도 제일 무섭고  난감할 때가 따로 있었다고 하지라. 손주가 책을 갖고 와서 글자 가르쳐 달라고 할 때였지라. 손주가 청했는데 모르면 챙피할까봐 늦은 밤에도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공부하던 열정으로 책을 읽어주기로 한 것이다죠.

함께 시를 암송하는 할머니들.
 함께 시를 암송하는 할머니들.
ⓒ 황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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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공연
 할머니 공연
ⓒ 황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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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줄줄이 꿴 호랑이'. 곱게 드레스를 입고 두 줄로 서서 목소리 흉내까지 내시며 책읽어 주는 할머니 학생들에게 "멋져요"라는 환호성이 터졌어요. 할머니들도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셨는디 더 말 안 해도 거시기 허게 알아 들으시겠죠, 잉!  

처음으로 시를 쓰자고 했을 땐 "내가 워떠케 시를 다 쓴당가"라면서 빼시며 새침해 하셨던 분들이 처음 배운 한글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시낭송도 했어요. 사회를 보던 제가 "시집을 다섯 권이나 내신 유명한 시인도 엄니들 시보고 좋다고 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사진도 찍어가면서  눈물 글썽이는 분들도 있었다"고 하자 다들 공부 잘해서 칭찬 받는 아이들처럼 좋아하셨죠.

수업 내내 할머니 학생들 옆에 앉아서 한글도 가르치고 간식도 나르고 했던 귀염둥이 선생님, 김서영·최진하·김국현·최진서가 '까딸레나'라는 최신 춤으로 축하했어요. 또 구림 한사랑 아동센터 아이들의 기타 연주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도 축하 분위기를 띄웠죠. 곱게 한복을 입은 세 분의 강사들과 자녀들이 장구와 함께 한 흥겨운 민요부르기는 틀릴 때 웃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단연코 가장 절정은 12분의 학생들이 나태주 시인의 '풀꽃'과 김용택 시인의 '다 당신입니다'라는 시를 암송했을때 였는데 큰 박수가 터져 나왔죠. '내나이가 어때서'를 개사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인데' 노래와 동시를 노래로 만든 '이웃집 순이' 노래는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불러서 마지막을 장식했제라.

마지막엔 수업 때 하던 것처럼 차렷 경례와 함께 "모두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서로를 껴안아 주는데 눈물 나올라고 허는 것 억지로 밀어 넣었당께요. 남 앞에 나서기를 한사코 두려워 했던 젊은 수강생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라고, 너무 고맙다고 눈물이 나올 것 같다며 강사들을 꼭 껴안아 주었죠. 비록 서툴고 틀리고 어수룩했지만 보시는 분들 모두 뿌듯한 느낌을 가지셨다고 하셨어요. 제가 할머니 학생들께 선생님 소리를 들었지만 제가 배운 게 더 많고 가슴 뭉클해졌답니다.

하나 더 자랑치자면, 어머님들의 시와 편지글들을 넣어서 자그마한 책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공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라는 책인데 평균 연령이 칠십이 넘은  할머니들이 쓴 책이지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열정으로 생애 처음으로 시를 썼어요. 그 시를 시화전에 출품도 하는 기쁨도 맛보았기에 시화 옆에서 행복한 포즈로 찍은 사진도 들어가 있어요.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쓴 편지글도 그대로 실려 있어요.

할머니들이 만든 시화
 할머니들이 만든 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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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이 펴낸 책
 할머니들이 펴낸 책
ⓒ 황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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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처음으로 어머님의 편지를 받은 자식들의 답장글도 가감없이 옮겨 놓았기에 보는 사람의 눈시울을 적신답니다. 시화를 제출한 열두 분마다 네 쪽이 배당돼 첫 면에는 자랑하고 싶은 나의 매력, 앞으로의 인생에서 꼭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등의 설문 조사도 기록되어 있어요. 농사일을 잘하는 만큼 자식도 잘 키웠다는 자랑부터 남을 잘 웃긴다, 즐겁게 살아간다, 쌍꺼풀이 이쁘다 등의 매력이 써있지요.

특히 '앞으로의 인생에서 꼭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와 있어요. 죽을 때까지 꾸준히 공부하고 싶다, 공부해서 이장도 하고 면장도 하고 조합장도 하고 싶다, 어디에 가서든 줄줄줄 읽고 술술 쓸 수 있고 싶다,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 혼자 여행을 못해 봤응게 나홀로 여행을 하고 싶다 등이 적혀 있었어요. 80쪽 분량의 작은 책이지만 글을 읽는 즐거움과 글을 쓴 어르신들의 놀라움이 담겨져 있지요.

어머님들 사랑합니다. 겁나게 고생한 김원옥 선생님, 이영화 선생님, 박인순 선생님까지 모두 싸랑합니다.

기념촬영
 기념촬영
ⓒ 황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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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들의 율동 공연
 강사들의 율동 공연
ⓒ 황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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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글공부, #책놀이, #순창군 구림면, #황호숙, #순창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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