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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트랜스젠더이자 여성으로서 지금까지 겪은 성 전이(Transition)에 대한 기록을 총 3회에 걸쳐 게재하고자 한다. 이 글에는 내 몸이 '여성화'하면서부터 내가 세상과 빚은 마찰에 대해 담았다... 기자 말

여성 호르몬은 매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몸에 변화를 주었다. 얼굴과 온몸을 단단히 덮고 있던 근육이 조금씩 흐물흐물 풀어졌다. 평편하던 가슴에 몽우리가 지고 유방이 자라기 시작했다. 허리가 잘록해지는 등 몸 라인이 부드럽게 변해갔다.

이 변화는 나에게 양가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다달이 내 모습이 변해감에 따라 블라우스나 긴 치마 등 '여자 옷'을 사다가 입을 때면,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 즐거움을 만끽했다. 하지만 내 겉모습이 확연히 '여성의 모습'을 하게 되면서부터 나와 세상 사이의 마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용감해져야 하는데...

가슴에 작은 봉우리 두 개가 솟아나자 나는 남자 화장실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나는 남자 화장실에는 예전부터 발도 들여놓기 싫었다. 문제는 여자 화장실을 쓰기도 난감했다는 것이다. 아예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라면 모를까, 내가 몇 년째 종일 붙어 있는 학교에서는 여자 화장실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학교 화장실 중 유일하게 성별 표기가 돼 있지 않은 화장실을 사용했다.

다니는 학교 캠퍼스 크기가 아담한 덕분에, 학교에서 화장실을 쓰는 데 겪는 어려움은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다. 이보다 더욱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지난 삶 동안 겪어본 적 없었던, '여성의 일상'에 숨어 그녀들을 찔러 온 께름칙한 시선들이었다.

여성의 신체가 언제 어디서든 너무나 쉽게 비판과 평가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저 문장을 외고 읊으면 되니까. 하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그러나 내가 아닌 절대다수 여성에게는 일상이라는 그 상황들 속에 직접 놓인다는 것은 어지간히 내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일이었다.

한여름 땡볕에 더워 죽겠어서 얇고 짧은 옷을 입고 돌아다닐 때면, 내 몸을 대놓고 위아래로 훑는 아저씨들의 끈적한 시선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갓 착용하기 시작한 브래지어의 갑갑한 착용감을 온종일 느끼느라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나에게 그 끈적한 시선은 매우 짜증 나는 것이었다.

내가 다리털을 싹 밀어 버리고 핫팬츠를 입고 학교에 갔을 때는, 핫팬츠 아래에 떡하니 달린 내 탄탄한 종아리 근육을 보며 "쟤 뭐야?"라는 식으로 수군거리며 나를 흘겨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듯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지난 수년간 익숙하던 학교가 점점 낯설어진다는 생각에 무척 서글펐다.

나는 밥을 먹을 때에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었다. 하루는 내가 자취방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웬 아주머니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저기요! 아가씨, 남자예요? 여자예요?"하고 큰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아주머니는 대체 내가 내 돈 내고 내 밥 퍼먹는데 내 성별이 무슨 상관이라고 그런 질문을 했던 걸까? 또 이미 나를 아가씨라고 불러놓고는 내 성별을 다시 묻는 건 나더러 무슨 대답을 하라는 것이었을까?

나는 그 아주머니를 똑바로 보며 "그쪽이 그걸 알아서 뭐하시게요?"라고 대답하고는 마저 식사했다. 내가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음에도, 아주머니는 식당을 떠날 때까지 계속 나를 쳐다보며 연거푸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시기에 내가 적어둔 짧은 글이 당시 내가 느끼던 바를 그대로 전해준다.

"언제부턴가 옷 가게에 가면, 나는 자연스럽게 여성복 코너로 안내를 받게 되었다. 발뒤꿈치에서 피가 철철 난다며 툴툴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굽 3cm짜리 구두를 편히 신고 다니게 되었다. 머리끈을 잃어버릴까 봐 미리 손목에 머리끈 한두 개 걸고 다니는 것도 이젠 익숙하다. 하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다.

내가 내 삶에 적응해갈수록, 세상은 내게 더 위험한 곳이 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혼자 거리를 돌아다니는 게 무섭다. 나를 아래 위로 훑는 사람들의 시선, 분명히 어떤 의아함을 담고 있는 그 눈길에서, 나는 그들의 나를 향한 적의를 읽는다. 핫팬츠를 입고 집을 나서던 날 집주인과 마주친 이후 그와 인사 나누기가 버겁다.

저번 달 관리비 고지서가 자취방 문에 붙은 걸 보고는 혹시 '뒷면에 어떤 섬뜩한 문구라도 적힌 건 아닐까' 하면서 텅 빈 종이 뒷면을 몇 번 훑었다. 내가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보았을, 그래서 더 나를 노골적으로 뜯어보는 집 근처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다. 혼자 있기가 힘들다. 이젠 어떤 옷을 입어도 마찬가지일 텐데. 멀리 나갈 일이 있을 때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다. 용감해져야 하는데."

'여성의 일상' 속으로

나는 계속해서 규칙적으로 호르몬 주사를 맞았고, 내 몸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여성화'해 갔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내 몸을 향한 어떤 의아함을 담은 시선들이 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확실히 여성으로 판단되는 외모를 갖출수록, 나는 호르몬 주사를 맞기 전까지는 겪은 적 없었던 황당한 일들을 겪기 시작했다.

일단 나는 자취방이나 학교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는 담배를 피우기가 조심스러워졌다. 담배를 피우라고 있는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데도 심심찮게 나를 노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운 적도, 비흡연자의 권리와 안전을 침해하면서 담배를 피운 적도 없다. 이런 나에게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로부터 날카로운 시선을 받는 것은 내 몸이 '여성화'하기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또 이제 나는 너무나 쉽게 '남자 지갑이나 텅텅 비우는 나쁜 여자' 취급을 받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게 하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B(내가 수술을 받기 전에 나와 만나던 남자 애인)와 데이트를 하다가 마실 음료를 사러 작은 가게에 들렀다. B가 마시고 싶다는 음료와 내가 마실 음료를 집어 들고 계산을 하는데, 가게 주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아가씨가 사는 거야?"
"네."
"허허, 그렇구먼."
"평소에 제가 B한테 이것저것 많이 얻어먹거든요."
"이봐, 아가씨."

가게 주인은 갑자기 나를 매우 진지한 눈으로 쳐다보며

"베푸는 건 잃는 게 아니라 얻는 거야."

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가게 주인은 내가 말귀를 못 알아먹은 걸 눈치챘는지 나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베푸는 건 기분 나쁜 게 아니라 기분 좋은 거라고."
"아, 예. 예."

나는 그때 비로소 가게 주인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똑바로 이해했다. 한 마디로, 남자에게 들러붙어 돈 빼먹고 배 채우며 살지 마라, 뭐 그런 소리였던 거다.

나는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그것도 나와 B가 마실 걸 사는 중에 그런 소리를 들었다. 가게 주인이 나에게 그 말을 하는 데에 어떤 근거가 있었을까? 전혀 없었다. 딱 하나, 내가 그의 눈에 여성으로 보였고, 남자와 데이트하고 있었다는 것 외에는.

'개념녀' 하기 싫은데요?

여성 호르몬을 맞고 몸이 '여성화'하면서 입기 난감해진 예전 옷들을 벼룩시장에 내놓았다.
▲ "옷들아, 잘 가! 새 주인 만나 행복해야 해!" 여성 호르몬을 맞고 몸이 '여성화'하면서 입기 난감해진 예전 옷들을 벼룩시장에 내놓았다.
ⓒ 강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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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내가 남자를 만날 때에 데이트에 드는 비용을 최대한 평등하게 부담하려 한다면, 나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개념녀'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NO(아니오)'다.

나는 가능하면 남자와 만날 때, 특히 데이트 초기에는 비용을 평등하게 부담하려 애썼다. 물론 나는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가 분명하고 여성의 노동 조건이 매우 열악한 사회에서, 더군다나 데이트를 하는 당사자들 간의 사정 차이와 그들이 맺은 관계의 맥락 등을 깡그리 무시한 채 '여자와 남자는 무조건 더치페이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남자와 데이트를 할 때 나와 상대가 지출하는 비용의 비중을 최대한 비슷하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개념녀 코스프레'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가 상대보다 데이트에 드는 비용을 덜 부담한다는 이유로 그에게 은근히 끌려다니게 되는 상황이 기분 나쁘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어차피 여성으로서 살아갈 거라면 '개념녀' 소리 듣고 사는 게 좋지 않아?" 과연 그 '개념녀' 소리는 내가 듣고 좋아할 만한 말일까? 나는 어떤 남성들이 여성을 '개념녀' 아니면 '김치녀'로 바라보는 것은, 이를 통해 그들이 여성을 매우 폄훼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 뿐,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성을 함부로 '개념녀' 아니면 '김치녀'로 나누고 그녀들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판단하는 시선과 권력을 남성이 독점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중 진실로 '개념녀'가 될 수 있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면, 종일 '개념녀'와 '김치녀'를 찾던 사람들 중 일부는 꼭 내게 이렇게 묻는다.

"너 지금 네가 여성이라고 여성 편드는 거냐?"

내가 트랜스젠더든 시스젠더(성별 정체성이 생물학적 성과 일치하는 사람)든, 나는 이미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부당한 경험을 숱하게 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여성의 일상에서 매우 흔하게 벌어지게끔 하는 조건들을 개선하지 않는 한, 나는 평생 여성에 대한 모욕과 차별에 시달려야 한다. 그런 내가 이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에게 '개념녀'인지 '김치녀'인지를 묻는 사람들 편을 들어줄 이유가 없다.

2013년 겨울, 나는 당시 짝사랑하던 사람에 대한 내 집착을 내려놓기 위해 남자 C와 미팅을 했다. (2011년에 내가 A를 잊기 위해 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이게 한때 내 안 좋은 버릇이었던 것 같다.) 내게 C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나와 데이트를 시작한 지 두어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나를 두고두고 불쾌하게 할 발언을 했다.

C는 내게 좋아하는 음식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치킨과 맥주를 좋아한다고 했고, 곧 나와 C는 만난 장소 근처에 있는 치킨집에 가서 치킨과 맥주를 주문했다. 곧 바삭하게 튀긴 치킨 한 바구니와 500cc 맥주 두 잔이 나왔다.

치킨을 반쯤 먹었을 때, 나는 C에게 이제 집에 가보겠다고 했다. 그와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밤늦게까지 같이 있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마침 C도 치킨을 대충 다 먹었다고 하기에, 나는 "그럼 이제 슬슬 갈까요? 치맥 값은 대충 반반씩 내죠?"라고 했다.

그러나 C는 그가 계산을 하겠다면서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내가 낼 테니까, 대신 여기 한 시간 더 앉아 있다가 가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C에게 호의를 받은 건지, 아니면 뭔가 C의 숨은 의도에 말려들기 직전인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C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했고 혹시라도 지하철이 끊겨도 버스 타고 집에 가면 되니까.

당연한 듯 외모 지적... 불쾌했다

안타깝게도 이어진 C와의 대화는 역시 지루했다. 그래도 앉은 김에 어떻게든 약속한 한 시간은 앉아 있다가 C와 예의 바르게 헤어지자고 결심한 터라, 나는 일단 그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내가 2014년에 수술을 받을 계획이라는 말이 나왔다.

수술 얘기가 나오자 C는 천진하게 웃으며 내 얼굴 곳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은하씨 수술하시는 김에 여기랑 여기 고치면 예쁠 것 같아요" 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뭔가로 머리를 '띵' 하고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 역시 내 얼굴에 그리 만족하지 않았기에, C에게 불뚝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C와의 데이트가 끝나고 나서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탔을 때, 나는 C의 발언으로 인해 내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나도 내 얼굴에 썩 만족하진 않는다. 수술 과정에서의 안전과 수술의 성공적인 결과가 보장된다면 미용 성형 수술을 받아볼까도 수없이 고민했다. 또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미용 성형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욕구와 필요는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기에, 미용 성형수술을 단순히 '찬성 대 반대'로 놓고 논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처음 본 사람에게 '당신 얼굴의 어디 어디가 고쳐봄직 하군요' 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을까?

'나에게 그 말을 하는 당신은 성형수술을 받게 된 당사자가 느낄 금전적인 부담, 수술 자체에 따르는 고통과 위험성, 수술이 실패하거나 환자에게 부작용을 남길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이 있지?'

나는 결국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C와의 메신저 연락을 차단했다. 그리고 이날, 나는 미용성형수술을 받지 않고 살기로 결심했다.


태그:#MTF, #진화론, #트랜스젠더, #여성, #성소수자, #성 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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