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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막고, 귀 막고 그렇게 버텨.' 5년차 직장인 친구가 저에게 했던 말입니다. 그 친구는 아직 비정규직이지만 정규직이 되기 위해 악착같이 버틴다고 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라고 불리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듯합니다. 아직 우린 '노동조합'이라는 네 글자를 회사에서 말한다는 게, 혹은 활동을 한다는 것에 큰 결심이 필요한듯합니다.
 '눈 막고, 귀 막고 그렇게 버텨.' 5년차 직장인 친구가 저에게 했던 말입니다. 그 친구는 아직 비정규직이지만 정규직이 되기 위해 악착같이 버틴다고 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라고 불리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듯합니다. 아직 우린 '노동조합'이라는 네 글자를 회사에서 말한다는 게, 혹은 활동을 한다는 것에 큰 결심이 필요한 듯합니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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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한 콧수염과 멀끔하게 슈트를 차려입는 중년의 남자가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기자들 사이에 홀로 서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클라우스 베절키(Claus Weselsky). 그는 독일 철도 기관사노조(GDL)의 대표로서 앞으로 있을 전국적 파업과 철도운행 중단을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노동조합원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단결투쟁'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빨간 머리띠를 하고 있지도 않았고 파업선언에 대한 결의 넘치는 감정적 동요도 없어보였습니다. 그는 그저 왜 파업을 하며, 무엇을 협상하고자 하는지, 언제까지 철도 운행중단을 할 것인지를 침착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노조원들이 깃발과 피켓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거나 파업 결의 대회에서 목청을 높여 투쟁구호를 외치는 모습도 볼 수 없었습니다. 많아봤자 10여 명이었고, 대부분 2~3명의 노조원들이 베를린을 비롯한 각 지역의 철도역사에서 파업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독일철도 기관사노조 파업은 조용히, 하지만 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10월 15일 독일철도기관사노조파업으로 인한 한시적 열차운행 중단에 이어 18일~19일 주말 동안의 2차 열차운행중단으로 하루 평균 30만 명이 오고 간다는 베를린 중앙역은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 독일철도기관사노조는 독일의 노동조합 중에서도 규모가 상당히 작은 편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파업과 운행중단의 파급력은 상당했습니다.

철도기관사노조의 전국적 파업 및 운행중단에 이어 20일~21일 독일 대표 항공사인 루프트한자 조종사들이 파업과 동시에 35시간의 비행기 운행 중단을 선언했으니 독일의 10월은 가히 '파업의 달'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무척 '독일스러운' 독일 노동조합 파업

 평소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간임에도 독일철도기관사노조(GDL)의 운행중단으로 베를린 중앙역 선로가 텅텅 비어있다.
 평소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간임에도 독일철도기관사노조(GDL)의 운행중단으로 베를린 중앙역 선로가 텅텅 비어있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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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베를린 시민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루프트한자 조종사들의 파업보다 독일철도기관사노조(GDL)의 파업이었습니다. 그들의 열차운행중단은 비단 고속열차뿐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애용하는 S반 전철(S반 : 지상철로 한국의 지하철 1호선과 비슷하다)에도 해당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베를린에서는 버스 안이나 지하철 안이 사람들로 꽉 차서 불가피하게 낯선 사람과 가깝게 마주할 일이 없었지만 독일철도기관사노조(GDL)가 열차를 운행중단한 날 만큼은 한국의 '지옥철'같은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베를린에서 생활하고 있는 프랑스 친구는 독일의 파업들에 대해 파업도 너무 '독일스럽게' 한다고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파업은 앞을 알 수 없는 싸움인 건데 노조가 정확히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운행중단을 하겠다고 미리 선언하는 게 너무 독일스럽지 않아? 그리곤 다시 협상을 하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을 하잖아. 프랑스에선 독일보다 많은 파업이 진행되지만 파업 기간 동안 이렇게 착 착 착 질서 있게 투쟁을 하지는 않거든."

그는 일부 회사에서 '노동조합'이라는 말도 함부로 꺼내지 못하는 한국에서 자란 저와는 또 다른 시각으로 이번 파업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노동조합 파업에 대처하는 독일인들의 자세

이번 독일철도기관사노조의 파업을 알리는 독일 언론들의 보도 태도 또한 좀 달랐습니다. 독일철도기관사노조가 열차운행 중단을 선언하자, 대다수 독일 언론들은 그간의 성향(진보든 보수든)과는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정보'를 기사에 담았습니다. 대략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언제까지 독일철도기관사노조의 파업이 진행되는가
- 현 철도노조와 철도회사 간의 협상과정
- 실시간 교통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서비스센터 연락처
- 표를 이미 예매한 승객이 환불받을 수 있는 방법과 절차
- 열차 운행중단이 시작될 때 열차 안에 이동 중일지 모르는 승객을 위한 팁
- 당신이 열차 대신 목적지에 갈 수 있는 방법
- 택시, 버스 운행표 외 다양한 대안교통수단의 홈페이지 주소와 관련 인포메이션 웹사이트

이는 연이어서 벌어진 루프트한자의 파업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파업에 대한 찬반을 떠나 시민들의 불편이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독일 언론이 파업 보도를 할 때 중요시하는 첫 번째 항목인 듯했습니다. 물론 이와 더불어 '노조가 왜 파업을 하는가'와 노조의 요구안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도함으로써 시민들이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파업에 대한 다양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물론 교통시설 종사자들의 파업으로 빚어진 '어쩔 수 없는 불편함'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저 역시 이번 파업으로 인해 10분이면 갈 수 있는 목적지를 한 시간 가량 걸려서 우회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노동조합 자체를 부정한다든가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출·퇴근길이 불편해졌고 혹은 화가 나기도 했지만, 단결권에 따라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 제가 만난, 혹은 제가 언론을 통해 본 대다수 독일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이들의 파업을 비판하는 칼럼도 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인>은 독일철도기관사노조(GDL)파업 막바지쯤에 <이 남자(독일 철도 기관사노조(GDL)의 대표)를 멈춰라>라는 제목의, 다소 강한 어조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중에는 "기사에 매우 공감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마치 60년대의 기사 같다'며 너무 편파적이라는 반응을 보인 이들도 있었습니다.

또 일각에서는 독일의 노동조합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독일의 노동조합은 스웨덴에 비해 영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독일 언론인 <디 자이트>가 각 국가별 노동조합 규모의 추세를 그래픽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노동조합의 규모가 감소하고 있다.
 독일 언론인 <디 자이트>가 각 국가별 노동조합 규모의 추세를 그래픽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노동조합의 규모가 감소하고 있다.
ⓒ 디 자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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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관련 기사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디자이트(Die Zeit)>의 보도였습니다. 독일철도기관사노조(GDL)와 루프트한자의 조종사들의 파업을 함께 다루며 현 상황에 대한 장·단점을 같은 비율의 지면을 할애해 다뤘습니다. 더불어 파업과 노동조합에 관련한 전문용어 '결사의 자유', '파업권'과 같은 말들에 대한 간단한 뜻풀이와 법적인 내용들을 첨부했습니다.

독일 노동조합과 독일 노동관련 법규에 대해 잘 모르는 저도 이 기사를 보고 이번 상황에 대한 장단점과 독일노동조합에 대한 전문적 정보들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론 보도보다 더욱 흥미로웠던 건 정치인들이 이번 파업 사태에 대해 이렇다 할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교섭자율주의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단체협약과정에 정부가 간섭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공권력이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것은 독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2009년 쌍용자동차노조가 파업했을 당시 한국에서 벌어진 공권력의 개입은 독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이번 독일의 파업을 바라보며 2013년 한국의 '철도노조 파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국토부와 한국철도공사 등은 자회사 분할 설립이 '독일식 성공모델'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철도공사 등은 지금 독일 철도공사가 부분적 자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 문제를 갖게 되었는지 또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너무 복잡해서 그 내용까지 서술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를 테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최근 독일 철도 기관사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운행 중단 역시 그러한 문제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게 구조조정입니다. 독일철도는 부분적 자회사가 설립되면서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그에 따라 인력 축소가 이뤄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환경은 세분화됐고, 열악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거대노조로는 수용할 수 없는, 직종간 차별과 불만이 생기게 됐습니다. 결국 독일철도공사 안에 독일기관사노조(GDL)와 같은 작은 산별노조가 생겼습니다(그 밖에 EVG, GDBA와 같은 노동조합이 존재한다). 이후 사측은 자신의 입맛에 맞춰, 혹은 기회주의적으로 어떤 노동조합과 협상할지를 저울질하며 노조간 경쟁을 유발하는 등 또 다른 분쟁을 낳고 있습니다.

너무나 다른 독일과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

파업이 있을 때마다 경제적 손실을 따지는 것은 한국이나 독일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독일에서는 파업노동자들에게 벌금을 물리거나 사회적 손실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른바 '대목'이라는 가을휴가철에 철도와 비행기가 운행을 중단했었지만 운행이 재개된 현재, 언론이나 시민들은 파업으로 인한 손실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진 않습니다.

똑같은 노동조합 대표임에도 독일철도 기관사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슈트를 차려입고 다리를 꼰 채로 불평, 불만을 쏟아내는 시민들에 굴하지 않고 '만족스러운 파업'이었다라고 말하고, 한국철도노조 위원장은 구속되는 현실이 바로 한국과 독일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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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공미술가로 활동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연구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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