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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수건!" "컵!"

머리를 감기고, 양치 준비를 도와준 뒤 나도 씻기 시작하는데 아내가 계속 나를 부릅니다.

"아... 귀찮아, 투덜투덜..."

그래서 우리는 '부부'입니다

아내와 나.
 아내와 나.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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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서 계속되는 아내의 주문에 때론 짜증을 냅니다. 아내는 그런 나더러 '불성실한 간병인'이라고 합니다. 그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러다 당신이 곁에 없으면 아마 심심해서 죽을지도 몰라!"
"뭔 소리야?"
"온종일 한 번도 누가 안 부르고, 할 일도 없어지면 얼마나 심심할까? 아마 뒤틀려 짜증이 치밀겠지? 강아지라도 한 마리 키워 세끼 밥이라도 주며 살아야지! 크크."

아내가 끄덕입니다. 귀찮을 정도로 일하다 잠깐 짬이 나면 오롯이 내 시간을 달콤하게 맛봅니다. 아내가 잠든 후 나가서 쉬는 한두 시간의 그 꿀맛 같은 자유! 그걸 말로는 설명 못합니다.

"당신은 내게 그 꿀맛을 주려고 살아간다니까! 국화를 피우려고 밤새 울었던 소쩍새처럼!"

아차, 그 이야기는 꺼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우리 부부의 귀여운 설전을 잠깐 들려드리겠습니다.

"환자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떠난 일본 여행.
 "환자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떠난 일본 여행.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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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골집 앞 밭에 국화 심었잖아, 그때 소쩍새 우는 소리 못 들었는디?"
"내가 들었어! 잠이 안 와서 새벽 마당에 나가보면 사방서 소쩍새가 울어대고 있었다고."

"으잉? 그래서 밤마다 잠 안 자고 기어나갔구나... 어떤 잡것이 남의 남편을 불러냈대냐."
"그건 소쩍새가 아니고 뻐꾸기지! 뻐꾹뻐꾹 울면 시부모 몰래 살금 나갔다는 젊은 부부들 이야기잖아!"

"그게 뻐꾸기였었나? 그럼 그렇다 치고!"
"아이고...그만하자, 이러다 우리 두 사람 다 약 처방전 나오겠다! 흐흐."

오래 같이 살다 보면 이렇게 죽이 맞아 곱디고운 남의 시도 비틀어댑니다. 함께 깔깔 웃으면서. 뭐 그런 재미로 같이 사는 거겠지요?

아파서 나를 고생시킨 미운 기억만 담고, 참기만 해서야 어떻게 앞으로 견뎌야 할 많은 날들을 살아 가겠어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비와 추운 겨울을 위해서라도 웃음이 필요합니다.

간병일기 끝!

위에서 말한 "간병일기 끝!"은 이 글의 끝이기도 하고, 연재의 끝을 말하기도 합니다. 간병일기가 34편까지 오기까지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많은 사랑과 위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땅 위에는 질병이나 사고 등의 불행으로 고통 받는 가족들이 정말 많은데 마치 그 중에서 대표로 보상을 받은 듯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겹겹으로 다가옵니다.

많은 기억들이 납니다. 짧지 않은 기간이었지요. 2013년 7월 11일 첫 기사를 썼습니다.(관련기사 :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이 글 씁니다) 1년 2개월 정도의 시간에 담긴 여러 일들과 감상이 떠오릅니다. 처음엔 10만 원짜리 외식권에 혹해 공모 기사에 응했지요. 공모에 떨어지고 난 뒤 아내와 아이들에게 큰소리 친 체면이 숨어 들어 갈 즈음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동안 간병일기를 써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공모와 상관없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연재를 해보시면 어떨까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읽을 만한 글이 될까요?"
"그럼요, 힘든 상황을 겪고 계신 분들께도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만들어주신 이미지, 참 두근거리고 설레였다.
▲ 연재기사의 타이틀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만들어주신 이미지, 참 두근거리고 설레였다.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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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원고료로 아빠 체면 세웠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간병일기 연재기사. 기사 제목부터 어울리는 이미지까지 편집부에서 함께 꾸며주셨지요. 마음 속 쌓였던 말들과 몇 년을 꼭꼭 가슴에 두고 멍이 돼버린 신음들이 쏟아졌습니다. 마치 서러운 며느리가 쌓인 시집살이를 털어놓듯 말입니다.

사경을 헤매던 시절의 두려움, 홀로 늦은 시간 병원 계단에 앉아 눈물을 삼키던 기억들. 그동안 써 놓았던 일기를 다시 돌아보며 모르고 앓았던 병, 한이 제 마음 속에 있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이것들이 모두 앙금이 되고 도지면 암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새삼 깨달았지요.

좋았던 일도 있었습니다. 독자분들께서 보내주신 연재기사 원고료가 제법 됐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수입이었고 눈물이 핑 도는 기쁨이었습니다. 24시간 간병에 매달리느라 보낸 5년 동안 천원짜리 한 장 못 벌던 제게 다시 생긴 수입. 아내와 아이들에게 체면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아내를 간병한 이야기를 KBS1 '강연100도씨'에서 강연했다.
 아내를 간병한 이야기를 KBS1 '강연100도씨'에서 강연했다.
ⓒ KBS <강연 100도씨>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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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아빠가 니 통장에 돈 좀 보냈다. 돈 아끼느라 밥 굶지 말고 많이 먹고 다녀! 이건 아빠가 번 돈이니 마음 놓고 받아!"

송금란에 "밥먹고다녀라"고 찍어 보냈습니다. 학자금 대출로 빚지기 싫다고 군대에서 1년을 더 연장 근무하며 대학 등록금을 벌어 나온 큰 아들. 밥값까지 벌어내기엔 무리였습니다. 돈 한 푼 보태주지 못하는 뻔한 집안 형편을 알고, 대학교에서 파는 공기밥 하나와 반찬 하나로 겨우 끼니를 때운 아이. 그렇게 그렇게 최대한 아끼면서 식비를 절약하는 아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독자분들이 보내주신 원고료는 그렇게 만 5년 만에 아빠 노릇을 하게 해줬습니다. 간병 생활에 찌든 감정을 훅! 날려 버릴 만큼 힘이 되는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이후 한 출판사의 연락을 받고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라는 에세이도 출간했습니다. 초판도 팔리기 힘든 어려운 출판계 상황 속에서 3쇄까지 찍을 수 있었던 것도 <오마이뉴스>의 연재 덕분이 아닐지요.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 장기 입원환자,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당하기 쉬운 불이익과 어려움을 글로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추락'에 가까운 장애 등급 판정이 나오는 등 속상한 일이 생길 때마다 글로 풀어냈습니다. "불의를 당하면 오마이뉴스에 알려버려야지!" 하면서요.

연재기사가 인연이 되어 출간하게 된 간병일기 에세이
▲ 간병일기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책 출간 연재기사가 인연이 되어 출간하게 된 간병일기 에세이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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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에 소개된 우리 부부 이야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받은 2월 22일 상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받은 2월 22일 상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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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기사를 본 라디오와 TV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와 몇 번 출연도 했습니다. 또 책이 인연이 되어 <강연100도씨> 프로그램에도 나갔습니다. 다른 곳의 출연도 제안 받았지만 병원 생활의 여건 때문에 미안하게도 거절을 더 많이 했습니다.

작년 7월에는 오마이뉴스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올해 2월에는 오마이뉴스 2월 22일상까지 받아 상암동 본사로 상을 받기 위해 외출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글 한 편을 송고하고 기사로 채택되길 기다리는 시간은 어찌 그리 긴지... 어떨 때는 혹시 내용이 수준 이하라서 그냥 넘어가는 걸까? 별별 생각으로 마음을 졸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메인에라도 오르면 너무나 기뻤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변덕스럽고 복잡한가 봅니다.

간병일기를 연재하는 동안 제 생활은 두 개의 선로를 달리는 기차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나는 아내 병을 보살피는 일이고, 또 하나는 나와 비슷한 고통을 3자의 입장에서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이 중요했지요. 균형이 잡히면 참 평안했습니다. 외롭지 않은 여행처럼 느껴졌지요.

초청을 받긴 했지만 아내를 데리고 일본까지 다녀올 용기를 낸 것도 다 그래서였습니다. 아픈 사람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이룰 수 있다는 걸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가족도 주저 앉히고, 환자 본인도 꿈을 포기하며 스스로 움츠러드는 투병 생활을 조금이라도 극복해보자, 우리가 보여주자!"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해내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아픈 아내와 제게도 큰 추억이 됐습니다. 기념이 될 만큼 신났던 것은 제 이야기를 드라마처럼 읽어주시고, 인터뷰까지 해주신 팟캐스트 '사이다 25회'에 방송된 것이었습니다.(관련 팟캐스트 : 7년 동안 아내 간병... 아직 남은 게 있습니다) 대화체로 읽어준 아내와 저의 이야기는 낯간지럽고 쑥스러우면서도 소중한 선물처럼 남았습니다.

연재하며 만난 고마운 분들

또 하나 잊지 못할 일은 간병일기 30편 '학원 한 번 안 갔는데...1등 상장 받아온 딸' 편이었습니다. 독자 분들이 정말 많은 원고료를 보내주셨지요. 제 글이 그렇게 뛰어난 글도 아닌데... 후원금이라 생각하고 고맙게 받았지요.

당시 그 기사는 오마이뉴스 '독자 원고료 많은 기사' 1등을 차지했습니다. 기사의 제목대로 된 것일까요? 아마 아프리카로 무료 급식봉사를 나간 딸의 이야기에 마음을 더 보태 주신 것으로 짐작합니다. 덕분에 딸에게 적립된 원고료와 더불어 100만 원이라는 여비를 보내줄 수 있었습니다.

다들 고맙고 잊지 못할 분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기억나는 몇 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기사를 보고 멀리 외국에서 연락해 송금해 주신 분도 계십니다. 본인이 이름 밝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 그냥 과천이 친정인 고 선생님이라고 전하겠습니다. 환자에게 좋다는 천연 염수를 병원까지 택배로 보내주신 정 사장님, 그 외에도 이런저런 물품과 몸에 좋은 음식을 보내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또 저의 간병일기를 보면서 함께 힘내신다는 투병 중인 분들... 어찌 보면 제가 간병일기를 연재로 꾸려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돼주신 분들입니다. 연재를 멈춘다는 말에 메일과 쪽지로 아쉬움을 전해오셨습니다. 이 모두가 제게 보물이 됐습니다.

오마이뉴스 랭킹30 중 독자원고료 부분 1등. 이 많은 사랑을 받은 기록. 숫자로 남은 증거 앞에 감사만 드릴 뿐.
 오마이뉴스 랭킹30 중 독자원고료 부분 1등. 이 많은 사랑을 받은 기록. 숫자로 남은 증거 앞에 감사만 드릴 뿐.
ⓒ 오마이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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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

사실 아내의 병도, 간병으로 발 묶인 제 생활도 이 간병일기 연재 기사처럼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시간에 비례해 찾아오는 합병증들이 우리를 계속 괴롭히겠지요. 한편에선 더 단단해져야만 하는 아내와 저의 분투가 있을 것입니다. 6개월마다 200만 원씩 들어가는 항암 주사비와 병원비, 생활비도 여전하겠지요.

하지만 부디 우리 세 명의 아이들 장래까지 포박하고 싶지 않습니다. 희귀난치병으로 함께 무너지는 아이들의 미래는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때론 새벽녘에 보따리 싸서 아이들이 영원히 찾지 못할 곳으로 도망이라도 가버릴까 고민하기도 합니다. 우리 같은 가족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복지 국가를 꿈꿉니다. 아내의 건강도 좀 더 회복됐으면 하고 날마다 빕니다.

그동안 응원해주신 고마운 마음을 계속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라도 같이 나누고 싶은 일이 생기면 단편 기사로라도 올리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2014년 10월 1일
청주의 한 재활병원에서 희망으로, 김재식 올림.

덧붙이는 글 | 2014년 9월까지의 간병일기 - 간병일기의 마지막 편으로 올립니다.



태그:#간병일기, #희귀난치병, #다발성경화증,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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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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