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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있는 아파트로 작년에 이사 할 계획이었는데 돈이 조금 부족했어요. 은행융자는 받기 싫어서 조금 미뤘는데, 그동안 엄청 올라버렸네요."

그는 8층 발코니에서 봤을 때 두 정거장쯤 떨어져 있는, 불쑥 솟은 아파트단지를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결혼 25년만에 내 집 장만을 한다는 그의 표정에는 벅찬 감격보다는 목표로 한 아파트단지를 포기하고 주상복합아파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지난해 은행 융자를 받아서라도 집을 사자고 했던 그의 부인은 홧병이 생겨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그는 부인의 말을 듣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도 했다. 남편과 자녀들이 집을 보기 위해 찾아오고, 매매 계약을 하던 날에도 부인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집 열쇠를 그의 손에 넘겨준 뒤 나는 내집 마련 7년만에 다시 세입자가 되었다.

아파트 단지를 선호하는것은 비싸더라도 재산증식으로서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를 선호하는것은 비싸더라도 재산증식으로서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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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뒤 두 번 정도 전세를 전전했다. 세 번째 전세를 알아보다 주상복합아파트를 구입한 것은 2000년의 시작을 몇 달 앞둔 때였다. 폭등하는 전셋값이 매매가과 큰 차이가 없기도 했지만 아내와 맞벌이를 하니, 은행융자금 갚는 건 큰 부담이 되지 않다고 생각했다.

7년간의 아파트 생활 중 내가 느낌 불편함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집안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서 융자금은 부담이 되었고 결국에는 '내집'을 팔아야만 했다. 아파트값이 폭등하던 때라서 오르기는 했지만 주상복합의 특성상 아파트단지 가격상승에 비하면 약했다. 그래도 살때와 팔때의 매매차익으로 그동안 은행융자로 갚았던 5천만 원은 보전이 되었다.

주택의 2층을 전세로 계약하고 이삿짐을 나르던 날 황당한 일이 생겼다. 주인이 살던 집이었는데 안방과 붙은 옆방의 발코니를 방으로 확장하면서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공간을 막지 않고 그대도 둔 것이다. 집을 보러갔을 때는 커튼으로 가려져서 몰랐었다. 부동산 중계인도 황당한 표정이었다. 주인과 전화통화를 했었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계약도 끝났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며 당당하게 굴었다. 집을 보러갔을 때 인자한 표정과 말투로 친절하게 집 자랑을 하던 그 사람이 맞는가 싶었다.

다행히 목수일을 하는 장인이 스티로폼과 합판으로 벽을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발코니를 방으로 확장한 바닥에 난방설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과 창문은 두꺼운 이중창문이 아닌 한 겹의 얇은 유리라는 거였다. 겨울이 시작된 뒤 테이프를 이용해 창문 틈을 막아봤지만 찬 공기는 어김없이 들어왔고 거기에 발코니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더해졌다. 하루종일 돌아가는 것 같은 보일러의 빨간색 점등표시를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가스요금이 20만 원을 훨씬넘어서 30만 원 넘기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겨울을 지내야만 했다.

지옥같은 여름을 보내다

봄이 오고 날이 따뜻해지면서 가스값 걱정은 한숨 돌렸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상황이 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집 주변으로는 음식점들이 많았는데 밥집과 술집, 노래방 등 유흥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다 밀집해 있었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는 편익시설이겠지만 매일 잠을 자고 생활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지옥이 따로 없다는 것을 여름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날이 더워지면서 점포 밖으로 야외테이블이 놓였다. 우리 가족은 조용히 쉬거나 잠을 자야할 시간대에 밖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다고 한여름에 창문을 꼭꼭 잠글 수도 없고... 혹 그렇게 하더라도 얇은 발코니 창문으로는 소음을 완전히 막긴 힘들었다. 잊을만 하면 집 앞 계단에 취객의 구토물이 펼쳐져 있기도 했고, 주차해 놓은 차의 사이드미러가 박살이 나 있기도 했다. 또 커피나 떡볶이 국물이 차 앞 유리 앞에 버리기도 했다.

이 집에서 살 수가 없는 또 다른 사정이 생겨서 일년이 될 무렵 집을 내놨다. 전철역이 5분거리에 있고 대형마트와 운동, 문화 등 편의시설이 밀집해 있는 A급 위치라서 집을 보러오는 사람들은 귀찮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다르게 집 주변의 환경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정확하게 내가 시달렸던 것들과 집의 문제점들을 콕콕 찾아냈었다. 많은 경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찾아내는 그들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전철역이 가까운 역세권과 편익시설을 주변에 많이 거늘이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쉬고 자야하는 주거환경에는 최악의 조건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보러왔지만 전셋값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또는 주거환경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계약을 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집이 오래도록 안 나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슬슬 커질무렵, 젊은 청년이 집을 보러왔다.

세입자도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누수가 생긴 보일러를 결국 교체받았다. 민법(제623조)에서는 집주인에게 책임을 두고 있다.
 누수가 생긴 보일러를 결국 교체받았다. 민법(제623조)에서는 집주인에게 책임을 두고 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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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곧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구하는데 무조건 전철역이 가까워야 한다고 했다. 집을 둘러본 뒤 옥상까지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 했다. 1년 동안 살아봤던 사람으로서 최소한 내가 겪었던 문제들을 그에게 말해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며칠 생각해보며 결정하겠다고 한 그가 다시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을 말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은 홀가분해졌다.

부동산중개소로부터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연락이 왔다. 며칠 전 돌아간 그 청년이었다. 다시 집을 보러온 청년은 내가 지적한 집안의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서 발코니의 창문 등을 줄자로 재어보고 집안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메모했다. 청년은 건축법, 그리고 임대차계약에 관련된 법률적인 내용들을 나에게 이야기했다. 법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였다.

청년의 단촐한 이삿짐을 실은 용달트럭이 도착했고, 전세 대금을 돌려받을 일만 남았다. 집주인에게서 걸려온 전화기에서는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집안의 문제점들을 청년이 지적하면서 보수공사를 요구하는데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자 집 주인은 계약이 안 될 수도 있다면서 큰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계약파기로 발생하는 금전적, 정신적 피해보다는 청년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는지 계약은 청년 뜻대로 되었다.

다시 살게 될 집으로는 전세가 아닌 월세를 구해야 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주거조건에 맞는 월세집을 찾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세입자는 "살기 괜찮다"는 말만 할 뿐 겪어봤을 만한 문제들을 말하지는 않았다. 집안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주인에게 필요한 것들을 요구했다. 주인은 처음부터 월세는 이렇고 전세는 이렇다는 식으로 책임을 집주인과 세입자가 나누는 관행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도배와 방충망 및 낡은 전등기구의 교체를 비롯하여 눈에 보이는 결함들을 해결해달라고 주인에게 요구했다. 그 이후에 발생하는 문제는 세입자인 내가 알아서 하기로 했다. 누수가 있는 오래된 보일러를 교체해 달라는 것에서 서로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새 보일러로 교체했다.

올해로 6년째 살고 있는 이 집은 3월이 계약 만료일인데 올해는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없어서 웬일인가 싶었는데, 4월에야 전화가 왔다. 바빠서 깜박 잊고 있었다며 또 월세금을 올려 달라고 했다. 주인에게 임대차보호법을 말해주면서 계약서를 보라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살기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 목소리를 높이는 주인에게 법률에 의해서 내년 3월까지는 살 수 있으며 그때 비워주겠다고 말했다. 물론 월세금을 억지로 요구하는 것도 가볍게 물리쳤다.


태그:#세입자, #전세, #임대차보호법, #민법, #보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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