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홍대, 출격한다. 이번에는!

불타는 금요일. 내 전화는 항상 부르르 떤다. 죄다 놀자는 메시지. 특히 홍익대학교 입구 앞에서 놀자는 연락이 가장 많이 온다. 그 위대한 핫플레이스를 감히 내가 밟을 수 있단 말인가? 매번 사양하던 나였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며칠 전부터 계속 '썸'에 실패하던 나였다. '밀당'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가. 연이어 3명을 놓치고 나서 무척 외로운 때였다. 그때 울린 카카오톡. "오늘 좋은 사람 한번 만나볼래? 홍대에서 불금 보내자!" 가자.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러.

훑어 보는 눈길이 느껴지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향한 곳은 홍대. 홍대에서도 요즘 가장 '핫'하다는 장소였다. 거기서 만난 친구. "오늘 쫙 빼입었네~" 위, 아래로 나를 훑어 본다. 청바지, 옥스포드 셔츠를 입고 잭퍼셀 스니커즈. 오늘 복장은 깔끔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평상시 입는 건데?" 친구한테 핀잔을 한 번 준다.

9시경에 만나서 그런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그곳에 가니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들로 인해 기다려야 했다. 한 20분쯤 지나고 들어갔다. 단순히 술집을 들어간 것인데도 분위기는 동네와는 사뭇 달랐다. 경쾌한 음악소리와 이곳 저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 이상한 것은 누군가가 나를 훑어 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와 마주 앉아 묻는다. "오늘 만나기로 했다던 사람은 언제와?"

한 번 재밌게 노는 거지~

친구의 눈이 왕방울 사탕처럼 커진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소리야?" 친구는 이곳이 '감성주점'이란 곳이라고 했다. 감성주점이란 일반 술집과는 달리 '헌팅'을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놓은 곳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었다.

'헌팅' 그저 신문기사로만 읽어보던 단어가 지금 내 앞에 살아 있는 것이다. "헌팅?" 내가 다시 되묻자 친구는 대답 대신 웃음을 짓는다. "여기 이슬 하나요~" 이곳은 클럽 갈 아이들을 구별하기 위해 11시 전에는 움직이는 곳이 아니란다.

술집에 온 남자들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일단 술부터 마시는 거다. 한 잔, 두 잔이 목구멍을 넘어 혈관을 타고 흐른다. 그 양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속깊은 얘기까지 술잔에 비워 넣는다. 한창 우리끼리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인 11시. 친구가 갑자기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 좋은 사람을 만나볼까~" 헌팅이란 걸 할거냐는 질문에 친구는 씩 웃는다. "한 번 재밌게 노는 거지~"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친구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곳저곳 테이블을 훑어본다. 문득 가게 안을 훑어보니 많은 남자들이 이곳저곳 여성들이 있는 테이블로 옮기고 있었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머리에 힘을 꽤 준듯한 인상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자리로 가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남자 2명도 한창 술을 먹더니 한 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친구도 '잠시만'이란 말과 함께 사라졌다. 뒤에 있던 여성 2명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어느새 남자들이 앉아 얘기를 건네고 있었다. 시덥지 않은 농담으로 시작해서 어떻게든 번호를 받아가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슬쩍 눈치를 보니 다른 테이블에서도 남자들이 '수작'을 거는 테이블을 힐끔힐끔 처다보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 같다고나 할까? 한 사람이 실패하고 돌아가면 잠시 후 다른 사람이 다가와 그 테이블에 말을 걸었다.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나'라는 상품을 판매합니다

친구가 돌아왔다. 술을 잔뜩 마신 듯했다. 뭐하다 왔냐고 묻자 친구는 다른 테이블을 갔다왔다면서 '썰'을 푼다. "꽤 괜찮은 여자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갔는데 얘기도 잘됐어. 그런데 내가 첫번째로 온 남자라고 다른 남자들 더 와보고 얘기해 주겠다고 하네" 적잖이 놀랐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순위를 매겨가면서 비교하는 것이었던가. 아니. 우리가 드러내놓고 하지 않던 비교를 이곳은 대놓고 하고 있었다.

"헌팅이란 게 다 이런 거야~ 기왕 하루 노는 건데 더 좋은 애들과 놀고 싶다 이거지. 솔직히 우리가 뭐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게 아니야. 잘생겼거나, 돈이 좀 많아보이거나 하면 장땡!"

친구는 이 말을 마치고 화장실을 간다며 다시 일어났다. 과연. 곳곳에 '잘생긴' 사람들은 저마다 테이블을 옮겨 가며 얘기를 걸고 있었다. 상품을 팔기 위해 좋은 포장지로 감싼 선물들이 사달라고 발버둥 치고 있다.

이곳은 전부 거짓말뿐이야

"데리고 왔다~"

우리란 상품도 꽤나 잘 팔렸나보다. 친구가 2명의 여성을 데리고 온다. 22살이란다. 한 잔, 두 잔. 처음 만난 자리지만 사람을 꽤 좋아하는 나로서는 친구의 노력(?)을 무시할 순 없기에 너스레를 떨며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자리는 감성주점을 나와 조용한 소주집으로 옮긴다. 거기서 다시 술. 대학 기자 시절 먹었던 술 실력이 이곳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깔깔 웃는다.

문득 왜 이런 모습으로 이 사람들과 이래야 될까란 의문이 든다. 그래도 어떻게 하랴. 이미 같이 놀기 시작한 것을. 분위기가 조금은 차분해지자 슬그머니 기자 정신을 발휘한다. "죄다 거짓말들이지~" 홍대에서 제법 자주 논다고 하는 A씨는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얼마나 믿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오빠는 거짓은 없어보이네~ 이렇게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거짓말투성이야~"

거짓투성이인 사람들과 왜 술자리를 하느냐고 물었다. "재밌잖아. 내가 원하는 스타일, 재력 등등. 그래도 내가 끌리는 사람을 고를 수 있으니까. 게다가 깔끔하게 서로 재밌게 놀고 나면 질척일 일도 없는 거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냐는 질문에 피식 웃는다. "나도 모르지~ 술이나 마셔~"

결국 어떻게 만나느냐가 문제다

새벽 첫차가 풀리고 여성 2명과 헤어졌다. 친구와 집으로 오면서 헌팅에 대해 물었다.

"헌팅? 그냥 재밌게 노는 거야.그래도 너나 나는 양반이지. 여기서 노는 애들은 어떻게서든 한 번 해보려고 하는 거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단다. 거짓말이든 허세든. 어차피 하루 보면 말 사람들이기 때문에. "번호를 따는 것도 다 그런 이유지. 당장에 만나진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거거든" 너도 그런 거냐는 질문에 친구는 머리를 쓰다듬는다.

"난 그냥 놀려고 오는거지~ 즐겁잖아 새로운 사람 만나서 술 한 잔하면서 친해지는 거~ 그러다가 좋은 사람 만나면 더 잘해보는 거고~"

헌팅을 처음 해본 날이었지만 그렇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마치 내가 만남이란 것을 수단으로 쓴 기분이라고 할까? 그 새벽의 즐거웠던 기분이 지금은 허무감으로 가득하다. 그 친구는 말했다. "니가 이 만남을 더 좋은 만남으로 하려면 그만큼 잘해야 한다"고.

씁쓸한 허무감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간다.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저 하룻밤 놀이로 끝나는 것인가? "카톡!" 내 휴대폰을 울리는 소리에 발신자를 확인해 본다. 아, 아까 그 A씨다. 술자리에서 만나는 사람과는 연락도 안한다던 그 A씨였다. '뭐해요?' 결국 만남을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개인의 경험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태그:#홍대, #헌팅, #감성주점, #만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갓 전역한 따끈따끈한 언론고시생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