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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힘들고 배 아프고 그냥... 하나만 낳아 기르자 했는데... 하나 더 낳아 키워야겠어요. 준짱 키워보니 너무 사랑스러워."

참 희한한 일입니다. 그저 아이였던 딸내미가 진짜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려. 이 애비가 봐도 애 엄마인 게 뿌듯한 모양입니다. 딸아이는 서준(손자 녀석)이가 아무리 보채도 짜증 한 번 안 냅니다. 아이가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제 엄마를 성가시게 해도 힘들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대견스럽다는 듯 "귀여워. 귀여워!"를 남발하며 아이 곁을 지키네요.

딸내미, '진짜 엄마'가 되다

서준이는 보고만 있어도 좋습니다. 한 번 웃어주면 시름이 팍 날아가고요.
 서준이는 보고만 있어도 좋습니다. 한 번 웃어주면 시름이 팍 날아가고요.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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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딸내미가 육아용품 박람회장에 들어가는 카드를 뽑아들고 있습니다.
 제 딸내미가 육아용품 박람회장에 들어가는 카드를 뽑아들고 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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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죠. 제 어머니께서 그러셨듯이, 제 아내가 그러했듯, 제 딸이 그렇습니다. 제 어머니는 언제나 제게 어머니일 뿐이어서 그저 강하기만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여자인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 집에서 39살에 청상과부가 되어 3남매를 키워냈으니 말 안 해도 아시겠죠.

그런 어머니를 보던 제게 아내가 생겼을 때 그는 그저 '여자'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제 아내가 딸내미(서준 엄마)를 낳고부터 '엄마'가 되더군요. 물론 아이가 응가를 싼 기저귀를 제가 가끔 갈아주기도 했죠. 그래도 남매를 키워내며 아내가 '엄마'가 되더라고요.

할머니가 돼버린 제 아내는 이제 '억척'쯤은 아니어도 '천생'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란 소리 듣기 싫다지만 어디 그런다고 듣지 않을 수 있는 거랍니까. 제 아내가 '여자'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할머니'로 서서히 진로를 잡아가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아내는 서준이가 응가를 한 보따리 싸면 딸내미의 손이 미치기 전에 지체 없이 치웁니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아이를 안고 가 뒤처리를 말끔하게 하고 나옵니다. 어디 딸내미 키우던 초창기에는 있었던 일인가요. 후에 조금 익숙해졌을 때에야 응가 치우는 게 그런 대로 봐 줄만 했죠. 원래가 비위가 약한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자기가 솔선수범하여(?) 손자 녀석 똥을 치우고 있으니 어찌 할머니가 아닙니까. 제 아내가 이리 '여자'이기를 서서히 포기하는 동안 제 딸아이도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서 '엄마'로 자리를 이동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나 이런 걸 알아내죠. 아마 본인들도 모를 걸요.

딸아이가 '아이'에서 '여자'로, 또 '여자'에서 '엄마'로 거듭나는 모습을 지켜보니 우습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합니다.

"어린아이 티를 못 벗은 녀석이 벌써 엄마가 되다니?"

그저 제 눈엔 아직 어린아이인데, 서준이에게 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엄마네요.

딸내미, '지름신'에 들리다

딸내미가 지름신에 붙들려 집안에 들인 카시트에 앉아 있는 서준이 모습이 의젓합니다.
 딸내미가 지름신에 붙들려 집안에 들인 카시트에 앉아 있는 서준이 모습이 의젓합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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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싶은 게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사 버리는 사람이 믿는 가상의 신'이라나 뭐라나. '지름신'이라고. 그 신에 들린 것 같아요. 제 딸내미가 말입니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건 아깝지 않은 모양입니다. 마구 사대는 걸 보면 살 떨립니다. 허 참.

지난 달 28일부터 나흘 간 '육아용품 박람회'란 게 코엑스에서 열렸습니다.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합니다. 지난 10년간 육아용품 시장이 10배가 성장했다고 하니 가히 천문학적입니다. 지난해 육아용품 시장규모는 27조 원이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데 육아용품 시장은 이리 성장하는 게 웬일일까요. 싱가포르 등 일부국가를 제외하곤 출산율이 자꾸 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심각한 수준이고요. 그런데 육아용품은 불티나게 팔린답니다. 서준이 애미 같은 사람이 많기 때문 아닐까요.

제 딸내미도 마지막 날 그곳에 있었고 행복하게 질러댄 모양입니다. 하하하. 주차문제를 힘겨워하는 사위를 배려하여 서준이는 시집에 맡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박람회장으로 달려간 딸내미는 '지름신'을 맘껏 환영하며 즐긴 것 같습니다.

시누이에게 물려받아 대부분의 육아용품은 있거든요. 그런데도 필요한 게 있었던 모양이더라고요. 카시트와 앞보기 아기띠 구매가 목적이었던 같습니다. 심사숙고하고 또 보고 또 관찰하고 하는 제 아내와는 달리 딸내미는 카시트를 글쎄 첫 번 매장에서 보자마자 샀다는 겁니다.

서준이 녀석에게서 해방된 딸내미가 먹었던 그 아이스크림, 드시고 싶으시지요?
 서준이 녀석에게서 해방된 딸내미가 먹었던 그 아이스크림, 드시고 싶으시지요?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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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시간이 없다"라나 뭐라나. 그러면서 스티커랑 돗자리를 덤으로 받는 카시트를 28만 원에 그 자리에서 질렀데요. 그리곤 와서 후회해요. "쿨시트를 사올 껄"이라나 뭐라나. 허. 그리곤 다른 외국매장에 가서 이름도 희한한 아기띠를 액세서리 포함 18만 원에 질렀답니다. 그런데 계산대에 와 보니 워머는 액세서리가 아니어서 따로 돈을 지급했다나요. 침받이도 16000원에 더 구매했고 합니다.

서준이 없는 딸내미는 '민족 해방구'잖아요? 그래서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 집에서 망고 잔뜩 든 아이스크림을 배 두들기며 먹었다고 하네요. 얼마나 맛있었을까요. '지름신'에 제대로 붙잡힌 제 딸내미 누가 좀 말려 줄 수 없을까요. 집에 들어앉은 카시트에 서준이를 앉혔는데 카시트가 좋아서 그런가, 의젓합니다. 뭐 딸내미 행복해 하는 거 보니 저도 그 놈의 '지름신' 그리 나쁜 신 같지 않네요.

목사(제가 목사거든요)가 하나님 말고 '지름신'을 이리 좋게 보니, 제가 손자 바보인 거 분명하죠? 하하. 그렇다고 이 글 읽으시는 분들, 이단이니 뭐니 하면 안 돼요. 오늘도 이렇게 딸내미가 엄마로서 성숙해 가는가 하면, 아까운 줄 모르고 제 손자를 사랑하는 거 보니 저도 덩달아 기쁩니다. 서준이 녀석은 오늘도 싱글벙글 입니다. 그 웃음 한 번에 이 꽃할배 시름 팍 날아갑니다.


태그:#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 #서준이, #육아일기, #육아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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