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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기풍속도 新詐欺風俗圖 '위험! 추락주의'라는 표지판은 비단 공사 현장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천박한 욕망의 토건산업은 언제쯤 멈출까요? 기어코 바벨탑을 쌓으려는 걸까요? 한국은 지금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자리를 다시 덮고 파헤치고 세우기만을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 높게, 더 고급스럽게 지어지는 수많은 아파트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위한 집인 걸까요?
▲ 신사기풍속도 新詐欺風俗圖 '위험! 추락주의'라는 표지판은 비단 공사 현장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천박한 욕망의 토건산업은 언제쯤 멈출까요? 기어코 바벨탑을 쌓으려는 걸까요? 한국은 지금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자리를 다시 덮고 파헤치고 세우기만을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 높게, 더 고급스럽게 지어지는 수많은 아파트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위한 집인 걸까요?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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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과장 된 거지? 진짜 아니지?"

마티나가 내 앞으로 신문 하나를 쓱 내민다. 뭔가 하니 한 독일 매체에서 한국의 고시원에 사는 학생들에 대한 특집기사를 다룬 것이었다. 그 기사에는 한국의 입시지옥이 얼마나 심한지,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고시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다.

나는 순간 그 기사에 실린 사진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티나에게 대답을 해줘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머리통만한 작은 창문에 빛이 들어오고 있는 비좁은 고시원 방. 그 창문을 통해 하얀 빛이 어두컴컴한 방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언뜻 보면 감옥으로 보일 정도였다. 사진 속 고시원방의 창문이 낯설지 않았다.

독일어로 된 신문, 그 속에 한 한국 남학생이 오락실 노래방에서 열창을 하고 있는 사진 옆에는 이런 인터뷰 내용이 적혀있었다. '내년에는 창문이 있는 방으로 옮기고 싶어요. 스트레스가 쌓일 땐 종종 노래방에 와요.' 제발 이 기사가 과장된 거라고 말해달란 눈빛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마티나에게 나는 실망스러운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야, 나도 이런 고시원에서 살았었고…."

마티나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창문 없는 방에 사람이 산다는 것에 놀란 것이었다. 독일에서 창문이 없는 방이란 곧 창고를 뜻하는 거였다. 창문이 없는 방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아니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기사 속 남학생처럼, 나 역시 창문이 있는 고시원 방으로 옮기는 것이 소망이었던 때가 있었다. 처음 창문이 있는 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아직도 기억난다. 비록 그 창문을 열어도 맞은편 건물의 칙칙한 콘크리트가 보이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때는 그랬다. 나의 '그때'와 '지금' 신문 속 학생의 처지가 별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갑갑해졌다.

학생 때부터 사회생활을 하기까지, 고시원 생활을 시작으로 파란만장한 자취생활이 이어졌다.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뒤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부터 집, 자동차, 주택청약까지 모두 청산하고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멀어져가는 한국 땅이 사라질 때까지 비행기 창문 너머로 바라보면서 뭔가 내가 '큰일을 벌였구나'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베를린에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두렵진 않았다. 소위 자취 짬밥 10년으로 쌓은 내공이 독일에서도 유효할 거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기 때문이다. 상상도 못했던 고생의 서막이 열린 줄도 모른 채 말이다.

베를린에서 집 구하기, 한국과는 많이 다르네

 나의 슬픈 고시원
 한국의 한 고시원 내부 모습
ⓒ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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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강남스타일'보다 훨씬 먼저 한국을 강타한 것이 있었느니 그것은 '유럽스타일'이 아닌가. 한국의 잡지나 인터넷 속에 흔하디흔한 '유러피언 스타일'의 멋진 집, 아늑한 정원, 엔틱한 가구들 등등…. '독일에선 그런 집에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당시에는 그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몰랐다.

나는 아직도 2012년 처음 베를린에서 집을 보러 갔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인터넷부동산 사이트를 통해 알아봤던 집은 가격적인 면이나, 위치적으로나 꽤 마음에 들었다. 집이 마음에 든다고 부동산중개인에게 메일을 보냈고 이틀 뒤 집을 보러 오라는 답신이 왔다.

집주소대로 찾아가보니 웬 걸, 얼추 5명은 넘어 보이는 경쟁자들이 내가 찜해 놓은 집 앞에 쭈뼛쭈뼛 서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같은 집을 동시에 보는 일은 없기에 중개인에 대한 왠지 모를 배신감이 밀려왔지만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는 법이니 잠자코 중개인이 인도하는 대로 낯선 집으로 들어섰다. 내 눈앞에 펼쳐진 집안엔 있어야 할 것이 아. 무. 것. 도. 없었다.

각 방에는 전등 하나 없었고, 천장에는 가느다란 전선만 삐죽 나와 있을 뿐이었다. 부엌에는 싱크대나 이렇다 할 수납장도 없었다. 화장실에도 전등은 물론 변기와 욕조 외에 거울 하나 달려있지 않았다.

'그래. 이래서 월세가 싼 거였구나.'

이미 인터넷에서 평수와 위치 기준으로 베를린 집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평균가격을 계산해봤기 때문에, 집안에 전등 하나 없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어서 빨리 이 집을 계약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이 너무 마음에 드네요. 오늘 바로 계약하고 싶습니다."

키가 커다란 독일 중개인 아줌마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나에게 네 장의 집 신청 양식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학생인가요? 직장인인가요?"

당시 독일에 온 지 한 달도 안 된 시기였기에 나는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그저 '무직'의 외국인일 뿐이었다.

"신청서가 통과 된 후에 계약 할 수 있지만 학생이나 직장인이 아니라면 이 집은 좀 어려울 것 같군요. 경쟁자가 꽤 많거든요."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뭔가 잘못 해석했나? 아니 잘못 이해했나? 이건 인종차별도 아니고 대체 뭐지? 수천,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한국에 간혹 모범사례로 소개되는 독일의 '기준임대료'나 '공공임대주택제도'도, 일단 집을 구할 수 있어야 좋다 나쁘다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인터넷으로 본 집만 1000개... 집 보러 가서 줄 서기도

그 후로, 인터넷상으로 어림잡아 1000개가 넘는 집을 본 것 같다. 직접 집을 둘러본 것은 30군데 정도였다. 어떤 곳은 같은 날, 같은 집을 보러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5층의 집 현관문에서부터 건물계단 그리고 건물 밖 인도까지 기다란 줄이 늘어설 정도였다. 줄 서있는 사람들을 보면 연령부터 인종, 국적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독일의 부동산과 집 시스템, 베를린의 거주문화를 하나둘씩 '공부하는 자세'로 이해한 후에야 베를린에서 처음 집을 봤을 때의 당황스러웠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집값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다는 재정적인 서류증빙을 이것저것 해야 한다는 독일 방식은 전혀 모른 채, 한국의 방식대로 부동산 중개인과 이야기하면 끝이라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발품 팔며 베를린에서 제대로 된 집을 구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부동산에 계약을 하러갔을 때는 헛웃음이 나왔다. 중개인이 나에게 내민 계약서는 15장이 넘었고, 그 속에는 '환기는 하루 최소 10분 이상 해야 한다'는 따위의 시시콜콜한 의무와 책임에 대한 내용과 법적 조항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독일을 '자동차의 나라'로만 알고 있다면 오늘부터 하나 더 추가해주길 바란다. 독일은 '서류의 나라'이다. 집을 구할 당시, 마음 같아서는 누군가 '베를린에서 집구하기'라는 주제로 A부터 Z까지 정리해 줬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알아야 할 것과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집에서 이사를 나갈 경우, 원상복구의 원칙대로 페인트칠이며 청소를 세입자가 모두 해놓고 나가야 한다는 따위의 것들 말이다. 내가 정리해도 책 한 권은 나오겠다 싶은 정도였으니 말이다.

학생들의 천국 베를린... 외국인이라고 예외 없다

단언컨대 베를린은 학생들의 천국이다. 학생시절, 고시원 자취생활과 더불어 각종 알바들을 골고루 해본 나에게 한국은 강제적 '알바천국'이지만 베를린은 '학생들의 천국'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집과도 연결된다.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단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다.

- 학생은 경제적 차별 없이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렇기 때문에 대학은 등록금을 받지 않는다(학생회비와 기타 교통비 제외).
- 학생은 등록금이 없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돈을 버느라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 학생은 '아르바이트(Arbeit)'를 할 수 없다. 다만 '부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법적으로 정해져있다(참고로 '아르바이트'라는 말이 독일어였다는 사실을 나는 독일어 공부를 시작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독일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뜻에는 부업의 개념이 아니라, 본업, 직장인이라는 개념이 함의되어 있다).
- 고로 학생은 많은 돈을 벌 수 없는 신분이기에 등록금뿐만 아니라 집, 교통, 문화생활 등등의 생활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 사회에서 공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
- 결론적으로 학생은 일반인들보다 집, 교통, 문화생활, 심지어 식비까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생활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어느덧 독일에서 다시 '학생'이 된 나는 '공공임대주택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서 공부하는 학생'이기에 독일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임대주택제도'에 속한 저렴한 집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혹시나 외국인이라고 구청에서 허가를 안 해줄까봐 덜덜 떨면서 담당공무원에게 억지 미소를 날렸던 나를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다양한 공공의 혜택을 받다보니, 돈을 벌게 되면 월급의 40%에 달하는 세금을 기꺼이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베를린의 '공공임대주택'은 각 단지별, 건물별로 다양하게 분포가 되어있다. 소위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이라고 특화해서 한 곳에 모아놓지 않았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건물에 넓게 분포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임대주택이라고 해서 주거환경 수준이 중산층들이 사는 곳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비슷한 금액의 월세를 내는 공공임대주택이라 하더라도 한 부부에게 두 명 이상의 자녀가 있을 경우,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보다 더 넓은 평수에서 살 수도 있다.

주변의 독일 친구들 같은 경우, 학생 때 살던 곳을 신혼집으로 꾸미는 경우도 많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사를 가지 않고 한 집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주변의 집값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월세를 내고 지속적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기준임대료제도' 덕분이다.

집을 한 번 계약하면, 집주인이 집값을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으며 특수한 상황(리모델링, 재건축 등)이 아닌 이상 거주자를 함부로 내쫓을 수도 없다. 독일 사람들이 이사를 자주 하지 않고 한 집에서 오랫동안 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덕분에 독일 이사시스템은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낙후되어 있다고 느껴질 정도다.

베를린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유러피안 스타일 아파트

그렇다고 베를린의 주거환경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전쟁으로 도시가 훼손이 많이 되었다 하더라도 1850년에 지어진 건물부터 시작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래되고 낡은 건물도 많기 때문이다. 베를린에서 1970년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은 너무나도 흔하다. 심지어 나는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동안 1950년대식 석탄난로난방시스템이 설치된 집도 몇 군데 본 적 있다.

어쨌든 건물을 함부로 부술 수 없는 법규 덕분에 시내에서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베를린의 매력 중 하나인 확 트인 도심 스카이라인은 바로 고층아파트단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독일 주간지 <디 자이트>는 지난딜 20일, 날로 상승하는 월세에 항의하는 베를린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보도했다.
 독일 주간지 <디 자이트>는 지난딜 20일, 날로 상승하는 월세에 항의하는 베를린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보도했다.
ⓒ 디자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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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베를린은 불과 몇 년 사이에 독일 내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상승한 도시이기하다. 독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사람들로 베를린의 인구는 점점 증가하고 있고 주택난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들어 거대 캐피털들이 베를린의 건물들을 대거 사들이고 있고 '구조 변경' 또는 '재건축'을 하겠다는 핑계로 입주민들을 내쫓고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 사람들 역시 주거문제에 있어서는 '카오스(혼돈)'라고 표현할 정도다.

주변 독일친구 중엔 아파트에선 살기 싫다는 사람들이 많다. 대개 '아파트=비호감' 또는 '흉물스런 콘크리트 덩어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현재 베를린 곳곳에서는 날로 치솟는 집값과 주거부족의 문제로 변두리로 내쫓기는 사람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있었을 때와 비교하면, 학생인 나에게 베를린은 많은 것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보편적 복지를 위한 공공성을 포기하지 않고 국민들을 책임 질 때, 우리들의 삶은 얼마큼 달라질 수 있는지를 몸소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나의 살림살이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줄어들었고, 차도 없고, 미래를 위한 아파트주택청약도 없지만, 살 만하다. 어차피 이제는 한국아파트 신분양 광고에나 나올 법한 이른바 '유러피안 스타일 아파트'에 살고 싶은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헌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유러피안 스타일 아파트'이란 말이 참 웃기다. 내가 느끼기에 유러피안 스타일 집은 시간을 머금고 있는 집, 즉 가족의 역사가 있는 집인 듯한데 말이다. 유럽 어디에도 한국에서 광고하는 '유러피안 스타일의 아파트'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욕망의 바벨탑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도 가끔 내가 살았던 고시원의 작은 창문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떠올려본다. 아니, 행복할 겨를이 있었던가, 학점 걱정, 등록금 걱정, 졸업 걱정, 돈 벌 걱정만 하며 청춘을 보내진 않았던가. 물론 이런 식의 '사는 걱정'이 지금은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른바 '아파트 공화국'인 대한민국을 하나의 집으로 생각해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캄캄한 어둠에 싸인, 창문도 없는 집 혹은 공사가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욕망의 바벨탑이 생각나는 것은 나만의 상상일까.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시즌2'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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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공미술가로 활동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연구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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