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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가본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재판정
 처음가본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재판정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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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3일. 저는 A4 한 쪽짜리 문서를 국민신문고에 올렸습니다. 한 학교의 일용직 주무관으로 다니던 저는 근로계약 해지를 앞두고 국민신문고에 억울한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정규직과의 차별 대우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올린 단 한 쪽짜리 문서는 6개월이 지난 후 한 권의 책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두꺼워졌습니다. 각종 문서와 자료가 첨부됐습니다.

저는 국민신문고에 "대한민국 교육계에서 비정규직을 두어 인간을 차별하고 노동을 착취하는 것은 윤리에도 도덕에도 맞지 않다"는 취지를 밝히며 "2년 6개월여 차별 당한 것에 대한 체불임금을 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6월 말, 노동부에서 여러 장의 문서가 우편물로 왔습니다.

"울산시 교육청은 이 사건 근로자에게 차별적 처우에 해당하는 가족수당·정액급식비·복지포인트를 합한 500여만 원을 지급하라."

간단히 정리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울산에 있는 노동지청 근로감독관이 장장 4개월에 걸쳐 법률적으로 검토한 결과 일부 차별이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노동청은 울산시 교육청에 차별 시정을 요구하는 문서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울산시 교육청은 차별 시정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국민신문고에 올린 제 문서 한 장의 내용은 부산지방노동위원회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산 지노위 담당 조사관의 주문에 따라 절차를 밟았습니다. 울산에서 활동하는 한 노무사님도 소개 받았습니다.

노무사 덕분에 잠시 희망을 엿보다

제 생활 형편이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 소개받은 노무사님이 무료로 변론을 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변창기씨, 8월 12일 오후 4시로 중노위 판결이 잡혔어요. 그날 꼭 가셔야 합니다. 그날 오후 2시 30분까지 우리 사무실로 오세요. 저와 함께 가도록 합시다."

노무사가 뭐하는 업종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날에야 저는 처음으로 그런 제도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노무사는 노동자든 사용자든 노사문제 의뢰가 들어오면 그 일을 대신 맡아 하는 변호사와 같은 직업이었습니다. 저의 경우 1년 수입이 2000만 원 이하여서 무료 변론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노위에서 무료 노무사를 선정해 줬습니다.

지난 8월 12일 오후 2시께 제 담당 노무사 사무실로 들어가니 노무사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사례비 내용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체불임금 건에 대해 주어야 할 사례비가 200만 원이나 되었습니다. 제가 만약 일반 노동자로서 체불임금 소송을 노무사에 의뢰했다면 200만 원이나 비용이 든다는 이야기가 되니, 돈이 없으면 체불임금도 못 받을 것 같더군요.

처음 본 노무사님은 인상이 선해 보였습니다. 나이가 드신 걸 보니 오랫동안 노무사 생활을 해오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분 승용차를 타고 함께 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저는 먼저 고맙다는 인사부터 하고 이번 소송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했습니다. 제가 아는 게 없으니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자 했었습니다. 노무사님은 먼저 두툼한 봉투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문서는 교육청에서 이번 차별시정 진정건에 대해 반박 자료를 모아 지노위에 보낸 겁니다. 한 번 살펴보시면 심판관 질문에 답변하는데 도움될 겁니다."

정말로 두꺼운 자료집이었습니다. 그 속에는 각종 문서와 사진 복사본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울산시 교육청이 지노위에 보낸 반박 문서엔 온통 "차별이 아니다"는 내용으로 가득했습니다. 시간관계상 상세히는 보지 못하고 대충 훑었습니다. 그 자료에서는 다른 학교 정규직 주무관을 앞세웠습니다. 그 정규직은 전기기사 자격증은 물론 여러 가지 자격증을 미리 소유했고,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채용 시험에 합격하여 기능직 공무원으로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략 자료를 살펴본 후 부산까지 가면서 궁금한 몇 가지를 질문해 보았습니다. 저는 비교대상이 없다는 핑계로 근로감독관이 조사하고 검토하여 확정한 내용에 대해 거부할 이유가 있는지 등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우리가 승소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이미 수개월에 걸쳐 조사하고 판단한 결과에 대해 쉽사리 뒤집지는 못할 겁니다."

노무사님 이야기에 위안을 얻었고 뭔가 희망이 보였습니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내년에 대학에 입학합니다. 차별이 시정되고 체불임금 500여만 원을 받으면 사랑스러운 딸의 대학 입학금으로 보태 쓰려 했습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부산이었습니다. 부산지방노동위원회라는 곳에 난생 처음으로 가보았습니다. 건물 높은 곳으로 가니 그곳에 전화로만 대화한 조사관님도 있었습니다. 10여 명도 넘는 직원들이 노사문제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벽에는 여러가지 벽보가 붙어 있었습니다.

"비정규직이 행복한 일터 '차별 없는 일터'에서 시작됩니다."

멋진 그림과 함께 붙어 있는 벽보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비정규직이 행복한 일터라... 저에게는 "비정규직을 계속 고용해도 된다"는 문장으로 보였습니다. 차별 없는 일터는 그 벽보 안이나 노동부 안에만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는 엄연히 시정되지 않고 있는 많은 차별이 있으니까요.

오후 4시가 넘으니 우리 차례가 됐습니다. 심판하는 장소로 들어가 보니 법정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다만, 판·검사란 말 대신 '공익위원'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공익위원 세 사람은 법대 교수와 법률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양 옆에는 사용자 위원과 근로자 위원이 각 한 사람씩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 쪽에는 저와 노무사 그리고 그 옆으로 울산시 교육청에서 담당자 두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차별이 있는데 왜 다른 사람은 진정서를 올리지 않나요?"

나이 드신 공익위원이 우리에게 질문했습니다. 노무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보통 이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학교에서 노동법에 대해 공부하지 않으니까요."

수많은 내용이 오갔지만 저 말 한 마디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1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우리는 다시 울산으로 왔습니다. 울산으로 오면서도 노무사님은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제가 승소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우리가 울산으로 올 때 교육청 관계자는 그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별도로 심판관을 만나려 하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한장의 문서를 보냈더니 책 두께만큼 많아진 반박 자료들이 만들어 졌네요.
 한장의 문서를 보냈더니 책 두께만큼 많아진 반박 자료들이 만들어 졌네요.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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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적 케이스 하나로 전체 차별 정당화한 노동위원회

그러나 그날 저녁 노무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럴 줄 몰랐는데 우리가 패소했다는 연락이 왔네요. 판결문서가 오면 잘 보시고 10일 이내에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증빙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한 승소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울산시 교육청을 상대로 한 체불임금 진정서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습니다. 10일 이내에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하고 싶지만 노무사님이 승소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습니다. 쓸 데 없는 시간과 돈 낭비라 여겨서 여기서 접기로 했습니다. 저는 울산시 교육청에서 제출한 자료의 주인공이 궁금했습니다. 전기기사 자격증은 물론 여러 자격증을 소유한 기능직 공무원이라는 그 주무관 말입니다. 과연 그 방대한 자료가 당사자 허락을 받고 제출되었는지, 저는 자료에 있는 그 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난번에 어디 쓴다는 이야기도 없이 교육청에서 조사를 한 적은 있는데 그게 그렇게 쓰였나 보네요. 저는 제 자료를 지방노동위원회에 자료로 쓰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 듣고 보니 기분이 좋지 않네요. 제 개인 자료를 교육청에서 마음대로 사용한 것 같네요."

그분은 서른다섯 살의 아직 젊은 주무관이었습니다. 지난 2010년도에 울산시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기능직 공무원 시험을 통과하여 지금은 모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어 말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특별한 경우고요. 지금 나이 드신 분들은 모두 시험도 안 보고 입사한 경우가 많아요."

통화를 마친 후 참 허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울해도 포기 할 수밖에 없는 소송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요? 그럼에도 다른 분들에게, 억울하면 승소 가능성이 낮더라도 추진하라고 권합니다. 노무사님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 제 마음에 와 박혔기 때문입니다.

"잠자는 권리는 보호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법리에서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는 국가도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 권리를 찾아 먹으려면 설령 승소할 가능성이 적더라도 창기씨처럼 추진해 봐야 해요. 그런 면에서 창기씨는 참 대견스러운 사람입니다."


태그:#울산시 교육청, #체불임금,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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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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