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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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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이 죽은 지 불과 여섯 달도 안 돼 또 다른 노동자의 죽음을 이소선은 보아야 했다.

서울 영등포에 있는 한영섬유라는 공장에서 노조탈퇴를 거부한 노동자 김진수를 회사 측이 고용한 깡패가 드라이버로 머리를 찔러 죽게 한 사건이었다.

한양섬유(대표 한익하)는 종업원이 600여명으로 편직물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이 회사에서는 1970년 12월 28일 조합원 400여명이 모여 섬유노조 서울의류지부 한영섬유분회를 결성하고 분회장에 김용욱을 선출하였다.

노동조합이 결성되자 회사 측은 우선 200여명의 조합원을 강제 퇴사시켰다가 재입사의 형식으로 채용하였다. 회사 측에서는 공장장 유해풍에게 노조파괴 공작의 책임을 맡겼다. 유해풍은 그 전에 폭행사건으로 해고된 적 있는 사람을 매수, 재입사시키고 자신의 수족으로 삼았다. 결국 깡패들을 고용한 셈이다. 깡패들은 노조원의 탈퇴를 강요하고 1971년 1월 4일에는 노조분회장과 간부 4명을 사칙위반으로 해고시켰다.

공장장 유해풍은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수립했다. 매수자들한테 김진수라는 자가 말을 가장 안 들으니 시비를 걸어 싸움을 벌이게 하라고 지시했다. 매수자들은 1971년 3월 18일 오후 5시쯤 공장 밖 술집에서 소주 2병과 포도주 1병, 막걸리 1되를 마시고 나와 공장으로 돌아왔다. 매수자 중에서 정진헌이 김진수에게 시비를 걸었다. 김진수가 불쾌한 표정을 짓자 가지고 있던 드라이버로 김진수의 머리를 2.5cm나 찔러 혼수상태에 빠뜨렸다.

이들은 사건이 발생하자 김진수를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시키고 사실을 숨기기 위해 넘어져서 다쳤다고 말하여 의사는 응급조치만 하였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한영섬유 분회장과 영등포 산업선교회 실무자들이 병원 측에 급하게 연락을 했다. 연락을 받은 병원에서는 재 진찰 후 수술을 했으나, 때가 너무 늦어 김진수는 줄곧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5월 16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건이 발생하자 한영섬유 노동자 150여 명이 그 다음날인 3월 19일 오후 1시, 김진수 사건의 진상해명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2시간가량 농성하였다. 사건의 당사자인 노조는 회사 측의 소행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상급조직인 섬유노조와 한국노총(위원장 최용수)에서는 이 사건이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개인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발표하였다.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발생한 일까지 회사가 책임을 지고 보상해줘야 하다니, 기업이 무슨 자선사업 하는 곳이냐?"

상급노조 측의 발표가 있자 회사 측은 김진수의 유가족에 대한 보상 문제마저 못하겠다고 강압적으로 나왔다. 이소선은 이 사건에 대한 내용을 알고 나서 관여하기로 마음 먹었다.  적극적으로 투쟁하기로 했다.

이소선은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는 어머니이다. 그 끔찍한 일을 당하고 김진수의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바로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억울한 죽음, 분통한 죽음은 전태일의 죽음으로 끝나야 할 텐데 또 한 삶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신음하고 있었다. 이소선은 당장 그 곳으로 쫓아갔다.

청계노조 간부인 최종인과 이승철하고 함께 김진수가 입원해 있는 세브란스병원으로 갔다. 이들이 병원에 가서 보니 김진수는 의식을 잃고 방치된 채 누워 있었다. 드라이버로 머리가 찔렀는데 겉의 상처만 치료한 채 며칠 동안 내버려두고 있었다.

이소선 일행은 보호자를 찾았다. 그러자 침대 밑에서 김진수 어머니라는 사람이 넋이 빠진 채 기어 나왔다.

"우리는 청계피복노조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나도 작년에 아들을 잃은 사람입니다. 정신이 없으시지만 이러고 있으면 안 됩니다. 시간이 더 가기 전에 하루빨리 아드님이 어떻게 당했는지 진상을 밝혀내야 합니다."

이소선은 얼이 빠져 있는 김진수의 어머니에게 목을 메이는 것도 참아가며 차근차근 얘기해주었다. 이소선은 병원 측에도 조사를 해서 드라이버로 찔린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뇌가 상해 있었고, 쇠에 붙어 있던 녹물이 흘러 들어가서 균이 뇌로 퍼진 뒤였다. 수술을 해도 별 소용이 없게 되어버렸다.

회사 측이 고용한 깡패들한테 노조탈퇴를 강요당하면서 일어난 사건임이 명백해졌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서울의류지부나 섬유노조본조, 한국노총에서는 이 사건이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개인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진상이 밝혀졌는데도 왜 무책임하게 있는 거야? 이 문제 가지고 앞장서서 싸워야 할 노총이 뭐하고 있는 겁니까?"

이소선과 청계피복 노조 간부들은 섬유노조와 노총을 찾아다니면서 강력하게 따졌다. 그러나 그들은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피하기만 했다. 이소선 등은 그들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다른 수단을 쓰기로 했다. 김진수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친구들이 이러고 있으면 안 됩니다. 노총에 가서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야 됩니다."

이들은 김진수 친구들을 설득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티셔츠에 '김진수를 살려내라!' '노총을 규탄한다!'라고 쓰고 친구들에게 다 입혔다. 노총에 가서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까지 상세히 일러주었다.

노총위원장실에 들어가 해결될 때까지 눌러앉아 농성을 벌이라고 힘을 북돋아주었다. 김진수 친구들은 티셔츠를 입고 노총사무실에 쳐들어갔다. 이들은 노총에 가서 위원장실을 찾지 못하고 복도에서 시끌벅적하게 소란을 피웠다. 난데없이 사람들이 들이닥치니 노총직원들이 놀라서 뛰쳐나왔다.

"당신들, 여기 어떻게 왔어?"

노총직원들은 사람들을 가로막았다.

"위원장 최용수 만나러 왔다. 위원장은 앞장서서 김진수를 살려내라!"

김진수 친구들은 흥분해서 마구 소리쳤다.

"이 자식들이 어디서 함부로 말을 하는 거야."

노총직원들은 완력을 쓰며 김진수 친구들을 몰아내려 했다. 김진수 친구들은 노총 직원들을 밀어내며 곧장 싸움을 시작해버렸다. 노총 사무실은 삼면이 유리창이었다. 그 많은 유리창을 다 때려 부수고, 서류는 물에 넣어서 짓이겨 버렸다. 흥분한 김진수 친구들은 마구 날뛰면서 사무실 집기까지 완전히 박살을 내버렸다.

그 일이 터지자 노총에서는 즉각 청계피복노조 간부들을 의심했다. 아마 김진수 친구들이 이소선과 청계 간부들이 시켜서 찾아왔다는 말을 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청계에서 노총을 때려 부수라고 시킬 수가 있소? 우리는 청계한테 해준다고 했는데, 정말 섭섭합니다."

노총위원장은 청계피복 노조 간부들을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소선 등도 지지 않고 맘대로 하라고 뻗대었다. 차마 노총에서 고발은 할 수 없었는지 뒷말은 없었다.


태그:#이소선,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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