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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이순신 동상의 높은 기단은 권력을 상징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 보게 만드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동상이 그러하듯 대한민국의 권력 역시 세월호 침몰에도 불구하고 끄떡없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 있습니다. 아니 권력의 산이 좀 더 높아지고 있는 듯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높이까지 올라간 듯합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의 높은 기단은 권력을 상징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 보게 만드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동상이 그러하듯 대한민국의 권력 역시 세월호 침몰에도 불구하고 끄떡없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 있습니다. 아니 권력의 산이 좀 더 높아지고 있는 듯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높이까지 올라간 듯합니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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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8월 13일. 독일 베를린 동쪽과 서쪽 사이에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세워집니다. 바로 '베를린 장벽'입니다. 그리고 53년 뒤인 2014년 8월 13일, 베를린에서는 장벽이 세워진 날을 기리며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과거 브란덴부르크 문을 사이에 두고 베를린 장벽이 서 있었고, 통일이 되던 날 독일인들은 하나 둘씩 이곳에 모여 장벽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브란덴부르크 문은 독일의 중요한 역사적 순간들을 모두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한데 이날 베를린의 가장 대표적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독일 애국가도 아닌 한국 애국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과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어림잡아 15명은 넘어 보이는 한국인들이 양복을 차려입고 분주하게 줄지어 어디론가 향합니다.  그곳에는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이라는 글씨가 크게 써진 상설무대와 대형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한데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사이에 두고 문 앞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촉구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고, 문 뒤에서는 <조선일보> 주최의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출정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 모습(왼쪽)/<조선일보> 주최의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출정식(오른쪽)
 브란덴브르크문을 사이에 두고 두가지의 한국관련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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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출정식이 진행되는 무대 앞에는 각종 카메라와 음향장비들이 설치되어 있고, 다양한 단체티셔츠를 입은 한국인들로 북적북적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출정식이 시작되자 사회자가 애국가 제창을 외칩니다. 이어서 대통령 축하메시지가 대형 전광판을 통해 나옵니다. 참석한 인사들도 화려합니다. 박원순 시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이재오, 정병국, 원유철, 김영우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의원의 얼굴이 보입니다. 이 행사의 <조선일보> 특별취재단만 17명이나 됐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촉구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반대편은 비교적 조용합니다. 마이크도 없고 음향시스템도 없지만 교민들은 직접 접어온 노란 종이배와 노란 피켓을 들고 독일 현지인들의 서명을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세월호 참사 관련 유인물을 독일어 버전, 영어 버전별로 준비하여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출정식에 참석한 많은 유명인사들 중 이곳 '세월호 특별법 촉구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곳으로 먼저 와서 인사를 나눈 사람은 단 한 사람.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뿐이었습니다.

유럽 순방길에 오른 박원순 시장이 덴마크에 이어 독일 베를린에 온 것이었습니다. 맞은편의 출정식에는 특별 취재단 17명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세월호 특별법 촉구 서명운동'을 진행한 곳을 취재하는 사람은 단 한 명, 저뿐이었습니다.

 유럽 순방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조선일보> 주최의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출정식에 참석하러 왔다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을 보고 먼저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출정식에 참석하기 전 특별법 촉구 서명운동을 하는 교민들에게 와서 수고한다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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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 될 때까지 끝까지 한다

저는 세월호 관련 구호를 독일어와 영어로 열심히 외치는 한인들을 멀리서 바라보던 한 여성에게 다가갔습니다. 독일 작센주에서 베를린으로 여행 온 그녀의 이름은 예나 멘첼(Jana Menzel)이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느냐"고 묻자 그녀는 "당연히 알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외국 먼 나라의 일임에도 그녀는 몇 개월 전 독일뉴스에 보도되었던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특별법 제정을 위해 유가족들이 단식을 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리곤 그녀는 한걸음에 특별법 서명 테이블로 달려가 서명을 하곤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는 말을 보탰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에 동참하는 외국인들 모습.
 이날 많은 관광객들과 독일인들이 세월호 특별법 촉구를 위해 서명을 했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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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세월호 베를린 분향소에 이어 이번 서명운동을 준비를 도운 한상원씨를 만났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독일분들과 외국인들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주고 계신 것 같아요. 그들의 관심에 저도 놀랐습니다. 이번 참사 관련해서 주변 독일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북한은 세계 최악의 3대 세습국가라면 한국은 세계 최악의 신자유주의 국가라고, 국가적 재난구조를 민간 기업이 독점한 것은 정말 말도 안 된다고요."

베를린에서 공부중인 그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눈에서 조용하지만 단단한 결심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다른 한 쪽엔 땡볕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한 여성, 홍은아씨가 있었습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정부와 정치인들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요. 자신들의 가족을 잃었어도 이렇게 방관했을까요? 제 외국인 친구들은 이번 참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자세한 이야기는 너무 슬퍼서 듣기가 힘들 정도라고 말했어요... 제발 이해관계를 접어두고 유가족 입장에서, 유가족이 만족하는 협상해줬으면 좋겠어요."

저와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그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목청껏 구호를 외쳤습니다.

서명테이블에서 영어과 독일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던 임선아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베를린에서 안산분향소까지 직접 찾아갔다고 합니다.

"이 서명운동 이벤트성으로 하는 거 아니에요. 베를린에서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될 때까지 매달 서명운동 할 거예요. 오늘이 그 첫날이지만 앞으로 베를린 뿐만 아니라 다른 해외 지역 교민들과도 연대해서 끝까지 싸울 거예요."

그녀의 이야기 중에 '끝까지'라는 말이 제 귓속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끝. 까. 지.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끝까지 싸운다'는 그녀의 말이 '이제는 세월호 이야기 그만 해라'라는 말을 들으며 힘들게 싸우고 있는 유가족들 귓가에 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덧 '세월호 특별법 촉구서명'을 받고 있는 반대편의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출정식은 끝나가는 듯합니다. 여느 큰 행사가 그러하듯 단체사진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참석한 몇몇 정치인들이 한껏 포즈를 취하며 방긋 웃음을 짓습니다. 몇 십대의 카메라 셔터가 요란하게 터집니다.

 여타 다른 행사들처럼 <조선일보> 주최의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출정식도 단체사진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 출정식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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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불과 200여m 떨어져 진행되었던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대장정'과 '세월호 특별법 촉구 서명운동' 사이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했습니다. 그 벽은 비단 이번 행사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닐 겁니다. 유가족들과 정부사이에도 커다란 벽이 놓여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정당과 정당 사이에도, 국민과 국민 사이에도, 그 벽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가장 오랜 된 벽인 바로 남북간의 벽은 여전히 허물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요즘 들어 세월호 유가족 단식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합니다. 이 두 영웅의 동상에서 불편한 권력의 냄새가 풍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기단 때문일 것입니다. 영웅의 동상이 올라가 있는 기단은 권력의 상징이자 사람들로 하여금 영웅을 우러러 보게 만드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들어서 베를린에 설치된 영웅들의 동상이나 기념비는 바닥에 세워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되새겨야 할 진정한 영웅은 바로 우리와 같은 눈높이에 서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광화문에서 침몰하는 대한민국을 붙들고 있는, 정부가 포기했던 국민의 목숨이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싸우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자 합니다.

"독일에서도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오늘날 진정한 우리들의 영웅은 광화문 기단 위에서 국민을 내려다보는 이순신이 아니라 바로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싸움은 생명보다 돈이 우선이 되어버린 잔인하고 암혹한 대한민국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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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공미술가로 활동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연구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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