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방송 이후 회자된 명장면 또한 KBS 1TV <정도전>을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어록과 명장면이 쏟아진 드라마였지만, 이날 대화에선 총 3개의 굵직한 명장면이 언급됐다. '한국 사극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 장면'으로 꼽히는 개경 시가전과 이어지는 이성계(유동근 분)-최영(서인석 분) 간의 최후의 대결, '한양 나이트'라는 별명을 얻은 한양 천도 기념 연회, 그리고 정도전(조재현 분)의 비참한 죽음 뒤 등장한 정도전의 연설. 이에 대한 제작진의 생생한 설명을 들어 보자.

"개경 시가전, 통 크게 '제작비 쓰자'며 보조출연자 300명 동원"

 KBS대하드라마 <정도전>의 이재훈 PD와 강병택 PD, 정현민 작가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KBS대하드라마 <정도전>의 이재훈 PD와 강병택 PD, 정현민 작가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유독 <정도전>의 전투신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이재훈 PD(이하 '이'): "전투신을 연출하기 전 '적어도 없어보이진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보조출연자를 천 명씩 부를 순 없는데, 몇 만 대군이 싸우는 상황 아닌가. 최대한 화면이 꽉 차게 해서 실제론 (화면 밖엔) 사람이 없지만 더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을 가장 많이 고민했고, 전체 회의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이성계가 날아오는 화살을 모두 쳐내는 건 아무리 뛰어난 장수라도 과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면 일단 화살이 날아오면 팔로 막고 다음 공격을 하는 정도로 수정하면서, 현실감 있는 신을 만들어 낸 게 아닌가 싶다."

- 특히 이성계의 역성혁명 중 치러진 개경 시가전 연출은 KBS 1TV <대조영>의 '역대급' 전투신과도 비견되는 장면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 "그 장면은 내가 아니라 무술감독님이 칭찬받아야 한다. (웃음) 우리가 촬영하는 장소가 광활한 곳이 아니라 협소하다 보니 '어떻게 (장면을) 살릴까' 고민했다. 헬리캠은 요즘의 추세가 있기도 했고, 다른 드라마에서 몇 번 쓰는 걸 봤는데 괜찮더라. 롱테이크 촬영 같은 경우에도 옛날 같으면 스테디캠을 들고 움직였어야 했는데, 이번엔 헬리캠의 카메라 부분만 떼어 무술감독님이 직접 들고 동선을 따라다니면서 촬영했다."

강병택 PD(이하 '강'): "세부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으로 규모가 빈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자는 이야기를 했다. '한 번 정도는 지금까지 아껴둔 제작비를 쓰자' 해서 보조 출연자도 300명 정도 동원했다. (웃음) 마지막 밤 전투 신에서 바리케이트가 등장하는 장면은 영화 <레미제라블>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 해서 연출했다."

정현민 작가(이하 '정'): "내가 예능을 좋아한다. (웃음) <런닝맨>에 나오는 헬리캠 화면이 멋지더라. 나는 작가니까 카메라 앵글도 잘 모르고, 그게 작가의 영역도 아니라 생각했는데 그 개경 시가전에서 딱 한 번 '부감'이라고 썼다. 모든 집집마다 싸움이 벌어지는 장면이 떠오르더라. 우리 시각에서 보여주는 시가전이 포인트가 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관련 논문도 다 봤다. 조금 아쉬웠던 건 장소 문제였다."

 KBS 1TV <정도전>의 한 장면

KBS 1TV <정도전>의 한 장면 ⓒ KBS


강: "원래는 장소가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었다. 현대극처럼 '몇월 며칠 몇시' '어디' 라는 자막도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도저히 소화가 안 됐다."

정: "하천에서 한 번, 궁궐이 내려다보이는 남산 쪽에서 한 번, 그런 식으로 여러 개 나눠봤는데 잘 안 되더라. 찍을 데가 없어서. 부곡마을의 논밭도 실제로 구현할 수가 없어서 어떻게 구한 게 억새밭이었다. 그래서 부곡마을 주민들이 억새만 뜯었지 않나. (웃음) 그래도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잘 나올 줄 몰랐다. 제작비를 쓰자고 했던 게 중요했나…. (웃음) 사실 다 아는 전쟁이지 않나. 그래서 최대한 지형지물을 현실화하려고 했다. 자문해주는 분께 여쭙기도 하고. 기록들이 많이 없는데 또 찾아보면 있다. 특히 개경 시가전은 구성을 아주 잘해놓은 논문이 있어 그걸 그대로 따 왔다."

 - 반면 마지막에 이성계와 최영이 1:1로 맞붙는 장면은 의견이 분분했다. 마치 <삼국지>의 일기토를 보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정: "어딘가에서 비슷한 기록은 본 적이 있다. '최영이 그냥 순순히 항복하진 않았다'는…. 그리고 그 정도는 각색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는 걸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더. 그때 자신감이 붙어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드라마적인 감정들을 따라가 주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 <친구>에 조오련 선수와 바다거북이가 수영시합을 하면 누가 이기겠냐는 대사가 있는데, 그런 것처럼 '이성계와 최영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라는 생각도 있었다. 한편으론 최영에 대한 헌사의 의미, 역사적 인물에 대한 존경의 의미도 있었고."

강: "(최영이) 멋지게 붙잡혀 걸어가는 것도 멋있겠지만, '서로를 사랑했던 두 남자가 한 번 진하게 싸우면 어떨까'라는 건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청자가) 문제 삼았을 때 조금 당황했다. 단순히 '역사를 바꿨다'기보단…두 사람이 헤어지는 마당인데 그 정도의 신은 가 줘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그래야 헤어짐도 더 아팠을 테고."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KBS 1TV <정도전>의 스틸컷 ⓒ KBS


정: "드라마가 아무리 역사에 충실하다 해도 다큐멘터리와 다른 게 그런 부분이다. 그런 데서 또 감동도 나오는 거라 생각한다. 또 두 분 연기자를 보면 작가로서 그렇게 안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누가 이기고 지는 게 나오면 왜곡이 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강병택 PD와 많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촬영 후 서인석이 '내가 칼을 던지는 게 맞았다'고 말하더라."

"'한양 나이트', 이성계 역 유동근이 가장 열심히 춤췄다"

- 반면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조선의 개국공신들이 춤판을 벌이는 장면도 또 다른 의미에서 화제가 됐다. 과거 <용의 눈물>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지 않나.

이: "<용의 눈물>에도 그런 장면이 있단 걸 알고 있었다. 시청자의 기대도 컸고. 보통 카메라 한 대로 찍는데 그 신은 걱정도 되고 잘 찍고 싶어서 카메라 하나를 더 썼다. '정도전이 춤추는 걸 길게 촬영할 때 한 대는 상반신 위주로, 한 대는 발 위주로 찍어 달라'고 해서 편집해 맞춘 거다. 가장 신경쓴 건 자유로운 분위기와 즐거운 현장을 만드는 거였다."

- 실제 촬영장 분위기도 궁금하다.

이: "얼마 전 <해피투게더3>에서 '아수라장'으로 노는 거 보지 않았나. (웃음) 그런 분들이다. 처음엔 다들 쭈뼛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정말 귀엽게 춤추더라. 우리가 '노세요~'라면서 바람도 넣었지만…. 촬영하면서 스크립터와 함께 모니터를 보는데 정말 웃겼다.

사실 (촬영 전에) 다 일일이 물어봤다. 상황이나 인물을 잘 아는 건 배우들이니까. '어떻게 하시고 싶으시냐'고 했더니 남은(임대호 분)은 '나도 당연히 일어나야지!'라고 했고, 조준(전현 분)도 '쭈뼛쭈뼛 일어나겠다'고 했다. 이지란(선동혁 분)은 '나도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해서 '너무 일찍 나오시면 안 된다'고 말렸다. (웃음) 이성계는 더 열심히 췄다."

정: "나한테는 '안 일어나겠다'고 했는데!"

 KBS 1TV <정도전>의 한 장면

KBS 1TV <정도전>의 한 장면 ⓒ KBS


이: "아니다. 촬영 처음부터 이미 부채를 쥐고 있었다. 현장에서 가장 열심히 춤췄다."

강: "중간에 심경의 변화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촬영장에서) 부채를 촥 펴고 손짓을 하는데, '저럴 걸 왜 그러셨나…' 싶더라. (웃음)"

정: "작가 입장에서 '정말 잘 찍었다'고 느낄 때가 있고, '별론데?'라고 느낄 때가 있다. <정도전>을 하면서는 '별론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특히 '한양 나이트' 마지막에 정도전이 웃는 것을 끝으로 장면이 넘어갔는데, 순간 '정말 잘 찍었다' 싶었다. 그 웃음을 끝으로 이야기가 어둡게 흘러가지 않나.

'한양 나이트'에도 비하인드가 있다. 작가 입장에서 정도전에게 성격을 줘야 한다 생각했다. 정도전이 이숙번(조순창 분)을 패는 것도 사실 의도적이었다. 몇 회 안 남은 상황에서 한양 천도 이후부터 정도전이 변한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 게 그 장면이니까.

그러려면 그 전에 노는 장면도 있어야 하는데, 인터넷에서의 반응을 보고 ('한양 나이트'가) 있단 걸 알았다. 보조작가들에게 물어봤더니 <용에 눈물>에 그런 신이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실록을 보니까 정말 있어서 쓴 거다. (웃음) 또 하나, 연출하기도 힘들었겠지만 그런 '떼신'은 쓰기 힘들다. 인물이 수십 명이다 보니 누구에게 대사를 줘야 할지, 안 줘야 할지 애매하고…. (웃음)"

"마지막회 연설, 오글거려도 현재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 마지막 회 정도전의 죽음 이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등장하는 정도전의 연설도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KBS 1TV <정도전>의 마지막 회 장면

KBS 1TV <정도전>의 마지막 회 장면 ⓒ KBS


정: "처음부터 그런 느낌을 갖고 었었다."

강: "정현민 작가를 존경하는 이유가 있다. 초반에 생각했던 바를 실제로 써먹질 못하고 엉뚱한 데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 작가는 초반에 '해보고 싶다'고 말했던 게 대부분 실현됐다. 엔딩도 그랬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나는 꿈이 있습니다'의 느낌을 이야기하기에 '좋다, 그렇게 가자'고 했다. 그런데 그 날이 온 거다.

사실 초고는 안 좋았다. '처음에 생각했던 걸 좀 더 확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두 번째 수정고를 받았는데, 짜릿할 정도로 좋았다. 오글거리는 느낌도 있었지만 이정도 메시지를 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게 대하드라마의 미덕이 아닐까. 현재 젊은이들이…희망을 갖기가 어렵지 않나. 취직하기에도 바쁘고,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메시지를 주면 반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이 장면은 마지막 촬영 이틀 전에 찍었다. 그런데 찍으면서 '이게 마지막 신이구나'라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장면이 드라마의 마지막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니 느낌이 새롭더라. 촬영을 하다 보면 (배우가)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런데 조재현에게 '마지막 장면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인물이 정면을 응시한 장면일 거다. 하지만 그게 더 메시지를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도전'의 세 남자, 강병택 PD-정현민 작가-이재훈 PD를 만나다===
①-"겉돌았던 정도전이 우리 드라마 주인공인 이유?"
②-"낙마사고 당한 선동혁, 전투신 표정 가장 좋았다"
③-'정도전' 속 화제의 명장면, 어떻게 만들었나 알고 보니
④-"매회 1회 같았던 '정도전', 이제는 넘어야 할 산"


정도전 런닝맨 유동근 조재현 서인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