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의 한 수'에서의 정우성 사기 도박에 연루되어 형을 잃고, 형에 대한 살인 혐의로 옥살이를 하고 나온 정우성은 그동안 쌓아온 인맥과 실력을 바탕으로 치밀한 복수극을 시작한다,

▲ 영화 '신의 한 수'에서의 정우성 사기 도박에 연루되어 형을 잃고, 형에 대한 살인 혐의로 옥살이를 하고 나온 정우성은 그동안 쌓아온 인맥과 실력을 바탕으로 치밀한 복수극을 시작한다, ⓒ 쇼박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예상했던 건데, 최동훈 감독의 <타짜>에서 볼 수 있는 조승우 역은 정우성이, 유해진역은 김인권이, 백윤식 역은 안성기가, 아귀 역은 이범수가, 팜프파탈 김혜수의 연기는 이시영으로 평행 이동할 것이라 생각했다.

역시 나의 예측은 정확했다. 어쩜 그렇게 초반부터 흘러가는 분위기며 중반의 복수극의 서막을 알리는 장면 등 <타짜>와 흐름이 거의 비슷할까?

뿐만 아니라 범생이 바둑기사가 노련한 '꾼'으로 거듭나기 위해 싸움을 배우는 장면은 <타짜>와 판박이다. 그래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2% 부족한 정우성과 이시영의 연기였다. 그들의 부족함이 오히려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쓸데없이 말 많던 유해진은 김인권으로 빙의되어 영화 내내 긴장하거나 뻣뻣해질 수 있는 정우성의 연기를 말랑말랑 하게 해 주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해 주었다.

안성기의 시각장애인 연기와 허목수로 분한 '안길강'의 연기는 스토리의 비중에 비해 그리 많은 부분이 할애되지 않았다. 이시영에게서 영화 <타짜>의 '도박의 설계자인 꽃'으로 불리는 김혜수의 농염하고 과감한 연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테니 좀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다른 부분을 찾아보기 바란다.

영화 중반 이런 말이 나온다.

"바둑의 고수는 인생을 즐기는 것이고, 하수는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다. 도박꾼들의 세계에서는 게임이란 피를 담보로 한 생존경쟁 그 자체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이해하는 현실이란 평범한 우리네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속고 속이는 사기도박에서는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다. 단지 실력과 돈을 믿는 것뿐이다. 그것이 고수라 불릴 때는 세상을 즐기며 사는 것이고, 하수를 벗어나지 못하면 도박의 언저리에서 꽁지돈 모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타짜>에서 많은 부분 모티브를 차용했을 거라는 생각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타짜>의 그림자는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난 바둑의 룰조차 모르기에 아무리 가로 세로 45센티미터의 흑백 돌이 만들어 낸 기하학을 보여줘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이시영과 이범수, 정우성의 치열한 두뇌싸움 이범수는 나름대로 살수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지만, 이시영과 정우성의 연기는 2퍼센트 부족한 뭔가가 있다. 오히려 그것이 영화 타짜와의 차별이 되고 흥행요소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바둑돌의 흑과 백처럼 이범수와 정우성의 백색 정장과 흑색 정장을 입은 채 격투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보여주려 하는 것을 압축시켜 놓은 듯하다.

▲ 이시영과 이범수, 정우성의 치열한 두뇌싸움 이범수는 나름대로 살수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지만, 이시영과 정우성의 연기는 2퍼센트 부족한 뭔가가 있다. 오히려 그것이 영화 타짜와의 차별이 되고 흥행요소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바둑돌의 흑과 백처럼 이범수와 정우성의 백색 정장과 흑색 정장을 입은 채 격투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보여주려 하는 것을 압축시켜 놓은 듯하다. ⓒ 쇼박스


다만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배경음악을 통해 어딘가 문제가 있구나 하며 그 상황에 공감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바둑을 둘 줄 몰라도 긴장은 되었다. 대충 이 바둑의 성패에 의해 누가 어떻게 하리라는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독특한 것은 바둑의 흑과 백색의 돌이 등장인물의 색감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영화 후반 정우성과 이범수가 마지막 결전을 벌이는 장면을 보면, 정우성은 올 백의 정장을 차려입고 흑돌로 바둑을 시작한다. 반대로 이범수는 검정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고 백색돌로 정우성을 압박한다.

흑과 백의 오래된 싸움은 적과 아군, 부자와 빈자, 승자와 패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바둑판을 뒤엎고 칼을 휘두르며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싸움은 이분법의 논리를 넘어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생존 투쟁을 가리킨다.

어떤 이는 바둑이나 장기를 인생에 비유하며 치열한 정글 같은 이 현실을 살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사람사이에서 부딪히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철학을 배울 거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심은 신선들의 바둑돌 놀음과는 거리가 멀다.

흰 돌, 검은 돌 바둑판에 놓아가며 세상사는 이야기 나누고, 차 한 잔에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대국은 우리와 너무 멀어 보인다. 적어도 이 영화를 기억하는 동안만은 말이다.

신의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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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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