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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마다 돌아오는 전국 단위의 대형선거.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해도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는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업무 교육의 미흡함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정의당 당직자인 나는 6·4 지방선거 당시 경기 광명 지역 투표소에 투표참관인을 추천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이번 선거를 치르는 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 기자 말

모호한 규정·업무교육 미비로 헤매는 선거관리 담당관들

6·4 지방선거 당시 광명시 관내 18개 동에는 사전투표소가 1개소씩, 본투표소는 동별로 서너 곳(많게는 아홉 곳)씩 총 83개소가 설치됐다.

공직선거 규정상 모든 투표소에는 총 8인의 투표참관인이 배정되며, 해당 선거에 참여한 모든 정당 및 무소속 후보자들이 투표소별로 2인의 투표참관인을 추천해 신청한다. 이 인원이 8명이 초과할 경우, 추첨에 의해 투표참관인을 지정하게끔 돼 있다. 이 경우 정당 및 후보자별로 1명씩은 우선 선정하되 나머지 인원이 추첨에 의해 선정된다(공직선거법 제10장 투표, 제 161조 투표참관 2~4항).

하지만, 투표참관인이 열두 시간에 달하는 투표시간 동안 계속해서 참관을 하는 것은 무리다. 규정된 바 '동시간대에 총 8명, 후보(정당)별 최대 2명'이라는 것이지, 규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한 사람이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쉬지않고 12시간 동안 눈을 부릅뜨고 투표를 참관하라'거나 '오전 5시 반에 나가서 투표함·투표용지 준비하는 것도 지켜보고, 오후 6시 이후로 투표함 봉인하고 운반하는 것까지 총 13시간 이상 책임지고 참관하라'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내가 만난 몇몇 '근본주의적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따라서 '6시간 이상 4만 원 지급'이라는 투표참관인 수당 규정과 맞춰, 오전과 오후 담당자를 정오에 교대 혹은 교체하는 게 관례화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참관인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게 된다. 결국, 광명시의 경우 추첨 가능성을 고려해 우선 선정 인원만을 따져보면 83개 투표소에 총 166인의 투표참관인이 배정될 수 있다. 실로 엄청난 인원이다.

하지만, 내가 본 담당 공무원들은 사전투표일부터 지방선거 투표일까지 헤매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전투표제는 6·4 지방선거 때 처음으로 시행됐다. 사전투표는 본 투표일과 달리 이틀간 치러졌다. 하지만 광명시 선관위는 안내 책자에 나온 문구대로만 규정을 해석해 "규정상 (투표참관인이 2명이니 이틀간 번갈아 나오시든, 오전 오후 교대로 두 번씩 나오시든 하라"라고 설명했다.

나는 투표소당 투표참관인 8인 초과로 추첨을 하게 돼 추첨에서 탈락된 인원에 대한 교체신고서를 제출하려고 했다. 한 동 주민센터의 선관위원은 '정당·후보자·선거사무장 또는 선거연락소장은 그가 선정한 투표참관인에 대하여는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읍·면·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고 교체할 수 있으며, 선거일에는 투표소에서 교체신고할 수 있다(공직선거법 제10장 투표, 제 161조 투표참관 5항)'라는 조항을 "(신고된 인원 전체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선거 당일 해당 투표소에 본인이 직접 제출해야 한다"라고 못박기도 했다.

덕분에 선거를 하루 앞두고 업무 상황의 급박함이 가중됐다. 일단 추첨으로 인해 탈락된 인원은 하루 동안 일일이 직접 만나 교체신고서를 전해드렸다(광명 관내 다른 동에서는 동 주민센터로 일괄 접수받았다, 코미디 같은 이야기다). 그렇게 당일 투표소에서 교체신고서를 제출하니 "이건 교체신고서가 아니라 투표참관인신고서라서 안 된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이래도 되나요?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규칙 별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와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규칙 별지 제51호 서식의 (가) (투표참관인)·(사전투표참관인)신고서에는 '주 : 1. 교체신고시에는 "비고"란에 이미 신고된 자 "OOO과 교체"라 기재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동일한 서식이라는 이야기다.

덕분에 사전투표일 교체 시각인 정오부터 여러 참관인들의 문의전화가 걸려왔다.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렸는데" "난 일부러 오전 11시에 일찍 나와 있었는데, 명단에 없다고 집에 가래요" 등등. 나는 투표소 관리관을 바꿔달라고 했지만, 투표소 관리관은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재차 동 주민센터 담당관에게 연락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주민센터 담당관은 직접 해당 투표소에 지침을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이러는 중에 또 다른 투표소의 참관인으로부터 전화와 문자가 왔다. 이 같은 상황은 2시간여 반복됐다.

투표록을 작성하며, 정의당은 해당 지역에 지역구 후보자가 없이 정당비례대표 선거만 있어 당명만 적게끔 돼 있었다. 그런데도 몇몇 담당관들은 "후보자명을 적어야 한다, 후보자명도 모르느냐"라며 참관인들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규정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6월 4일, 광명시 선관위에 개표참관인 명단을 제출하고 확인까지 받았는데도 명단에는 정의당만 통째로 빠져 있었던 일도 있었다. 결국 담당자가 다시 확인하는 동안 30여 분 동안 개표참관인 여덟 명이 로비에 서서 기다리는 풍경도 연출됐다.

"에이, 하지마, 하지마!"

담당관들의 업무 숙지 미흡만 문제였던 건 아니었다. 투표 사무에 임하는 담당관들의 태도도 문제였다. 신경질적으로 짜증 섞인 반말을 내뱉는 담당관들이 있었다는 증언이다. 투표참관인에 따르면 투표사무원 등 투표를 하러 온 시민들에게조차 그랬다고 한다. 광명시 투표참관인들의 증언 간략히 옮겨놓는다.

하나. 한 50대 남성이 거동이 힘든 노모를 부축해왔다. 그런데 그가 기표소까지 함께 들어갔다. 담당관은 불법행위가 벌어져도 그저 말로만 제지하는 데 그쳤다. 부축을 하던 이는 노모를 대신해 투표를 했고, 투표용지를 넣은 뒤 유유히 사라졌다.

둘. 기표소가 잘못 설치돼 기표소 안이 어둡자 연세 드신 분들은 투표용지가 잘 안 보인다고 호소했다. 투표참관인이 스마트폰 전등을 비춰드리려 하자 담당관은 "에이, 하지마, 하지마!"라고 제지했다.

셋. 한 투표참관인이 틈틈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투표율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러자 담당관은 "그거(스마트폰)로 뭐 찍고 그러면 안돼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투표참관인은 "지금은 찍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찍을 수도 있지만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담당관은 "뭐요? 그거 규정 확인해봐야겠네?"라고 답했다. 담당관은 투표참관인의 권리 및 의무에 관한 규정도 숙지하지 않고 귀찮은 심기만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넷. 한 투표참관인이 개표소 앞에서 투표함을 기다리다 담당관을 만났다. 투표참관인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그 담당관은 "하이고, 오전에 투표참관하고 오후에 개표참관하고, 아침저녁으로 돈 버시네?"라고 답했다.

선거는 끝났지만, 수당은 지급되지 않았다

문제는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도 계속됐다. 6월 10일 현재, 선거가 끝난 지 6일이 지났음에도 나는 정의당 투표참관인들로부터 전화와 문자를 받고 있다. 왜냐하면 교체 투표참관인들이 수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일, 선관위는 투표참관인 수당이 현금으로 준비되지 않았다면서 교체된 투표참관인들에게 추후 계좌로 직접 입금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들은 수당을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나는 동 주민센터 및 광명시 선관위에 문의를 해봤다. 나와 통화한 동 주민센터 담당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래 참관인 수당은 당일 현장에서 지급할 수 있게끔 현금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교체 인원(투표참관인)의 경우 정확하게 미리 파악할 수 없어 준비하지 못한다. 그래서 계좌로 나중에 직접 입금하여 드리는데, 하필 연휴(6일 현충일)이 끼는 바람에 다음 주에나 집행할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한 일자는 답변 못 하겠다."

지난 9일, 광명시 선관위에 제차 문의했지만, 답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이다. 투표소별 8인, 오전과 오후로 투표참관인 교대 혹은 교체를 하기 때문에 6시간 기준 하루 2인씩 총 16명에게 지급할 예산을 준비했을 법하다.

추첨으로 인해 탈락이 발생할 경우 투표참관인 교체 인원을 신고하겠으니 해당 투표소를 알려달라고 요청했고, 또 선관위 측에서 투표참관인 교체 신고서를 미리 접수해달라고 해 동 주민센터로 보냈던 서류가 있었다. 그런데 인원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니…. 나는 담당자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돈 몇 만원 때문에 문자 보내야 했던 투표참관인들

큰 단위의 예산을 집행하는 담당관들에게 4만 원에서 5만2000원에 해당하는 수당은 큰돈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수당이 미지급되는 상황을 묵과할 수는 없다.

투표참관인을 신청해주신 주민들은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같은 투표소에서 같이 앉아 투표참관 업무를 수행한 이들은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수당을 받는데, 교체된 투표참관인들에게는 '나중에 따로 수당을 입금해주겠다며 계좌번호를 적으라 하다니. 게다가 선거일로부터 6일이 지난 시점까지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교체된 투표참관인들은 어떤 기분일까.

교체된 투표참관인들은 돈 몇만 원 때문에 반나절짜리 투표참관 일을 소개해준 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했다. 혼자 속앓이를 하다가 '돈은 언제 받을 수 있느냐'는 부끄러운 질문을 해야만 하는 그분들에게 나는 "지금은 (공무원들이) 곤란하니 기다려 달라'는 옹색한 답변을 해야만 했다. 선거관리 담당관들이 단 한 번이라도 이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봤다면 그 미안함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이 글을 쓰는 10일 화요일, 방금 또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아직도 수당이 안 들어왔는데요. 언제 받을 수 있는지요.'

이 분께 나는 또 뭐라고 답해야 할까. 나는 지금도 왜 선관위 측에서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지에 대한 옹색한 답변을 고민하고 있다. 업무 교육도, 담당 업무 숙지도 제대로 되지 않은 듯한 공직자들을 믿고 중차대한 선거를 계속 맡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태그:#6·4지방선거, #광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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