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전설의 비밀>에 출연한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MBC <전설의 비밀>에 출연한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 MBC


1997년 11월 23일부터 2001년 11월 4일까지, 대한민국의 고도 성장기라는 그 시대적 담론에 걸맞게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바로 MBC <성공시대>였다. 그로부터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나라도 아니고, 그 시절처럼 '성공'이 시대적 화두가 되지도, 될 수도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시절 성공시대를 거쳤던, 혹은 전설이라 불릴 정도의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되었던 인물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MBC에서 새롭게 선보인 <전설의 비밀>은 바로 그 전설이라 불렸던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불러낸다.

지난 22일 방송된 첫 회 <전설의 비밀>에서 불러낸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로 198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 가장 많은 커튼콜을 받은 프리마돈나 강수진과 88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엽, 과거 대우전자 사장으로 탱크주의 광고를 통해 더 잘 알려진 배순훈 S&T 중공업 회장이다. MC를 맡은 이성재가 이 세 사람을 각각 찾아가고, 인터뷰와 함께 이미 전설로 알려진 이후 이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화려하게 빛나지만은 않았던 '전설' 이후의 삶

<전설의 비밀>의 제작 방식은 <성공시대>의 그것과 흡사하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성공시대>가 변창립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에 의해 진행되었다면, <전설의 비밀>은 이성재의 인터뷰라는 방식의 변형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강수진 편에서 그녀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시절의 활약상, 김재엽 편에서 그의 88올림픽 금메달 수여식, 배순훈 편에서 대우전자 시절의 광고 영상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역시나 <성공시대>처럼 김재엽의 중학 시절, 배순훈의 대우전자 사장 시절이 재연 드라마의 형식으로 삽입된다.

하지만 <전설의 비밀>은 그저 예전처럼 그들이 어떻게 성공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무용수에서 국립발레단의 단장으로, 김재엽은 국가대표 유도선수에서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동서울대 경호학 교수로, 이제 70이 넘은 배순훈은 무보수 회장으로 지내는, 전설이 된 이후의 삶에 대해 조명한다.

각자 보여주고자 하는 바도 다르다. 강수진의 경우, 왜 국립발레단의 단장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 결심 과정을 인터뷰하고, 단장이 되었음에도 은퇴를 2016년으로 정한 채 여전히 현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마흔 후반의 발레리나의 분주한 나날을 보여준다.

제 2의 인생이라도 김재엽은 전혀 다르다. 어린 시절 악동에서 국가대표 유도선수가 되기까지의 우역곡절이 많았듯, 유도 금메달리스트에서 마사회 유도 코치, 그리고 파벌 파동을 겪으며 유도계에서 퇴출당해 자살의 고비까지 겪은 그가 경호과 교수라는 새로운 인생을 회복하기까지의 인생역전을 재연해 낸다.

 배순훈 S&T 중공업 회장.

배순훈 S&T 중공업 회장. ⓒ MBC


배순훈의 경우, 대우전자가 망한 이후 김대중 정부의 정보통신부 장관을 거쳐,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이제 다시 무보수 회장에 이르기까지 70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도전을 멈추지 않는 말 그대로 창조적 인생에 초점을 맞춘다. 거기에 덤으로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성공 비법을 찾으라는 젊은이들을 위하 멘토링까지 얹는다.

'성공'이 화두가 되었던 시대의 전설이 되었던 이들은 그 이후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순조롭게 프리마돈나로서 화려한 삶을 이어가고 그 여파를 몰아 국립발레단 단장까지 되었는가 하면, 자신의 꿈이었던 유도는 물론 그 대신 선택했던 사업조차 철저히 실패를 거듭하며 죽음의 문턱에 이른 김재엽도 있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하는 배순훈은 개인적 발언이 정부의 입장과 달라 정보통신부 장관직 임명 1년도 안 돼 사임을 하고,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되어서도 국정감사 때 발언과 태도 논란으로 임기를 4개월 남겨두고 사표를 내는 등 풍파를 겪었다.

제목이 '전설'이듯이 여전히 그들은 또 하나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 성공은 90년대가 추구했던 수직적 상승 곡선의 성공과는 느낌이 다르다. 전설이지만, 마치 이제는 거울 앞에선 누님처럼, 전설의 자리에 등극한 이후 각자 저마다의 분야에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시절이 훈장처럼 드리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전설의 비밀>은 전설의 자리를 지기키 위해, 혹은 전설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온 이들의 성공담으로 2014년판 <성공시대>라 할만하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그 시절 <성공시대>처럼 겉핥기식 성공담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조금 더 21세기에 어울리려면, 예를 들어, 국립현대미술관장직에의 신선한 도전이나 낙하산 임명을 그저 슬쩍 짚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터뷰의 내용으로 삼아 배순훈 사장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국정 감사장의 태도 논란을 이제 와 터놓고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야 또 하나의 성공 시대가 아니라, 고비를 넘겨서도 여전히 탱크처럼 추진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의 멘토로서의 진면목을 읽어낼 수 있고, 뻔한 성공담을 넘어선 공감을 얻을 것이다.

좀 구태의연하면서도, 전설로 여겨지던 이들의 후일담을 보는 면에선 신선했던 <전설의 비밀>은 그래도 지난 몇 주간 목요일 그 시간을 채웠던 예능 프로그램들에 비하면 한결 충만하다. 타 프로그램과의 시청률 경쟁을 넘어, 좀 더 유의미한 프로그램으로 승부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전설의 비밀>은 꽤 유익했으며 타 방송의 예능과의 차별성도 분명했다. 지난 몇 주간 MBC가 선보인 파일럿 프로그램 중 굳이 한 표를 던져야 한다면, <전설의 비밀>에 투표하겠다. <성공시대> 전설들의 후일담은 나름 무궁무진할 테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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