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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세의 예술> 표지
 <헤세의 예술> 표지
ⓒ 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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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예술>(그책, 2012)은 헤세 문학의 권위자인 폴커 미헬스가 헤르만 헤세가 쓴 소설·에세이 등에서 예술에 관련된 구절을 뽑아 엮은 책이다. 이런 책들은 흔히 널리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에서 '편집부' 이름을 달고 출판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 책은 독일의 헤세 연구자가 편찬했고, 제대로 된 번역을 거쳐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단 이 점을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 책에는 헤세의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발견했다면 분명히 밑줄을 그어놨을 듯한 문장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물론 대부분의 아포리즘이 그렇듯 긴 설명이나 논증이 없이 그저 인상비평적으로 기술해 놓은 문장만이 눈앞에 드러나 있다. 하지만 독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서 읽기에는 이런 조건이 더 좋기도 하다. 몇몇 구절들은 아주 마음에 깊이 담아둘 만큼 깊은 울림을 주기도 했다.

헤세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썼다고 해도 믿을만한 다음 문장을 보자.

"알다시피 쇠락해 가는 이데올로기의 옹호자들만큼 형편없이 글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황야의 이리> 중)

물론 어느 이데올로기가 쇠락해가고 있느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쇠락해 가는 이데올로기의 옹호자들이 엉터리 글을 쓴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불행하게도 일간지의 사설이나 칼럼에서 이런 글을 찾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다.

한국문학의 현재를 비추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음미해 볼만하다.

"적대적인 당파에 속해 있는 작가는 공격당하든 조롱당하든 거부의 대상이 된다. 자기 당파에 속해 있는 작가는 찬양의 대상이 되거나 최소한 보호받는다. 어떤 당파에도 속하지 않은 작가는 아예 주목받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배후에 아무런 권력도 없기 때문이다."(<문학과 비평이라는 주제에 관한 메모들> 중)

헤세가 살던 시절의 독일 문단도 지금의 한국 문단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일까? 하기는 이것이 한 나라나 문단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헤세의 언급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진정한 예술가는 무당파여야 한다는 것입니까?' 물론 헤세는 김춘수나 김동리가 말했던 순수예술론 따위를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평범하지만 독자의 가슴을 치는 구절은 심심찮게 발견된다.

"예술은 덧없음의 극복이다."(<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중)

이 평범한 구절을 읽고 한참을 생각했다. 삶의 덧없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삶은 덧없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예술은 덧없지 않은가. 극복하려는 의지 그 자체는 덧없지 않은가. 모든 것이 덧없기 때문에 순간 순간 인간은 그 덧없음을 극복하기 위해 덧없지만 무엇인가에 매달리는 것 아닌가. 헤세에게 그것은 예술이었을 것이다.

어설픈 아방가르드에 대한 헤세의 경멸은 아주 재치있다.

"오늘날 작품들이 보여주는 언어적 곡예는 그것이 창작자의 머리에 흰머리가 나기도 전에 낡은 고물이 될 것입니다."(후고 마르티에게 보낸 편지 중)

예술은 은근한 것이어야 한다. 드러내놓고 새로움을 주장하는 건 홈쇼핑 쇼호스트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언어처럼 천박함을 면할 수 없다.

언론인의 객관적 태도에 대한 헤세의 일침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언론인의 미덕은 그가 이해하지도 못하고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것은 결코 배우지 않을 것입니다."(콘라트 하우스만에게 보낸 편지 중)

물론 정말 좋은 저널리스트는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동시에 지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언론인이 소수라는 게 늘 문제다.

마지막으로 예술가의 지위에 관한 헤세의 언급은 깊이 생각해 볼만하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주인과 고객을 위해 봉사하는 일종의 궁정 광대로 남아야 한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궁정 광대를 좋아하고 먹고 살 수 있게 해주고 몇 가지 소소한 자유도 허락하지만 진정한 영향력은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술가는 발언의 자유를 갖고 있지만 그 발언으로 타인을 억압해선 안 된다. 그는 권력자가 되어선 안 된다. 그 순간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위에 제시한 구절들 말고도 이 책에는 곱씹을 만한 구절이 많지만, 그것을 다 열거하려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이기에 이만 줄이고자 한다. 변명을 하자만 일정한 체계를 갖추지 않은 아포리즘(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읽다보니 내 글도 이렇게 아포리즘이 되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 <헤세의 예술>(헤르만 헤세 씀 / 폴커 미켈스 엮음 / 이재원 옮김 / 그책 / 2012 06. / 1만1000원)



헤세의 예술 - 예술은 영혼의 언어이다, 개정판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켈스 엮음, 이재원 옮김, 그책(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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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강사입니다. 공저로 <문학으로서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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