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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 어느 날 초지대교 근처에 있는 해수탕에 갔더니 비를 피해 왔는지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목욕을 하려고 강화도까지 오지는 않았을 테고, 나들이 삼아 왔다가 비도 오고 하니까 한증막에 지지러 온 것 같았다. 그 중에는 친목계원들인 듯한 부인네들도 여럿 보였다. 그들은 허물없는 사이인 듯 한증막 안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자 말자 자기 집인 양 이야기를 나눈다.

"뭐 먹을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자 다른 사람이 얼른 그 말을 받는다.

"요즘 밴댕이가 나오는 철 아니야? 밴댕이회 먹을까?"

그러자 밴댕이회를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밴댕이는 어떤 성질을 가진 생선인지 등 갑자기 불 한증막 안이 밴댕이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월곶돈대 안에 있는 연미정입니다.
 월곶돈대 안에 있는 연미정입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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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는 보리가 누렇게 익을 무렵에 제 맛이 나는 생선이라고 한다. 아직 보리가 익으려면 더 있어야 하는데도 마치 보리타작이라도 하는 양 요란스럽다. 밴댕이는 그물에 걸려 배에 올라오면 제 성질을 못 이겨 죽어버린다고 해서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성미가 급해서 그럴 텐데, 한증막 안의 여인들도 급하기는 그에 못지않다. 당장 맛을 보러 갈 기세로 입맛을 다신다.

여행의 또 다른 재미, 식도락

집을 떠나 여행을 하면 새로운 것들을 보니 눈이 호사를 하고 마음도 풀어진다. 그런데 여행의 재미가 이것만 있는 것이냐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평소에 먹기 힘든 색다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여행이 주는 큰 재미일 것이다. 그 지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찾아 식도락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걸 보면 먹는 재미에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여인네들의 경우 부엌에서 해방이 되어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을쏘냐. 

그러나 색다른 것은 어쩌다 한 번이면 족하다. 그것 역시 일상이 되면 색다를 게 없다. 오히려 집 밥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금방 한 밥에 김치 한 가지라도 마음이 담겨 있으면 그게 바로 집 밥이고 또 엄마 밥이다. 

강화도는 대도시 인근에 있어서 주말이나 휴일이면 나들이를 오는 사람들이 많다. 전등사나 마니산처럼 이름이 알려진 유명 관광지 근처의 음식점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찾아오는 손님들로 호황을 누린다. 그러나 그 외의 지역들은 보통의 농촌 마을들처럼 길 가에 식당이나 가게를 흔하게 볼 수 있지는 않다. 더구나 나들길은 사람이 사는 동네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산자락이나 들길 또는 바닷가 둑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보니 끼니때가 되어도 찾아갈 식당이 근처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도시락이나 김밥을 싸오는 사람들도 있다.

쌀을 불려놓았다가 손님이 오면 금방 밥을 해냅니다. 손님들은 매번 특별한 밥을 받습니다.
 쌀을 불려놓았다가 손님이 오면 금방 밥을 해냅니다. 손님들은 매번 특별한 밥을 받습니다.
ⓒ 김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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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강화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식당을 찾아가서 밥을 사먹는 사람들도 많다.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해준 강화와 강화 사람들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아름답다.  

그이들이 찾는 식당은 별다른 것을 해주는 곳은 아니다. 마치 집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김치에 우거지 된장국, 그리고 나물 반찬 몇 가지가 전부일 때도 있다. 생선조림이라도 올라오는 날이면 횡재라도 한 양 기분이 좋아져서 환호를 한다. 이렇게 단출한 상차림이지만 그래도 밥상을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은 것은 그 밥이 엄마가 해주는 밥처럼 주인장의 따스한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강화읍 월곶리에는 '연미정(燕尾亭)'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다. 앉은 자리가 마치 제비 꼬리처럼 생겨서 연미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우리 역사 속에도 여러 번 등장을 한다. 예전에는 민통선 안에 있어서 외지인들은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검문 초소가 연미정 뒤로 물러나서 누구나 갈 수 있다. 

민통선과 연미정

연미정은 '월곶돈대'안에 있는 정자이다. 돈대(墩臺)는 대개 평지보다 높은 곳에 세워서 적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군사시설을 말한다. 강화도에는 해안을 따라 53개의 돈대가 있는데 그중 이곳 월곶돈대는 한양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더욱더 중요한 곳이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이곳 연미정 근처는 온갖 배들이 머물렀다 가는 정거장이었다.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에서 올라오던 세곡선(稅穀船)을 비롯해서 평안도와 황해도의 배들도 이곳을 거쳐 한양으로 들어갔다. 썰물이 나면 밀려 내려오는 물살 때문에 배가 한양으로 올라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연미정 근처에서 머물면서 밀물이 들 때를 기다렸다.

반찬이라야 그다지 새로운 것도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집에서 먹는 밥처럼 맛있습니다.
 반찬이라야 그다지 새로운 것도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집에서 먹는 밥처럼 맛있습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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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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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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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연미정 앞 바다는 천여 척의 배들이 오가는 곳이었다고 하니 그 정경이 굉장했을 것 같다. 자동차가 천여 대 세워져 있어도 대단할 텐데 바다에 배가 천여 척이 오간다고 생각해보라. 그 얼마나 대단한 장관이었겠는가. 

연미정과 월곶돈대는 그렇게 잘 나가던 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분단과 함께 숨만 붙어있다 뿐이지 죽은 것이나 매한가지가 되어 버렸다. 바다에는 배 한 척 다니지 않는다. 바닷가로는 아예 내려갈 수조차도 없게 철책이 가로막고 있다. 바다 건너편의 북한 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 민족의 참담한 현실 앞에 비통함을 금치 못하게 된다. 

연미정 아래에는 조립식 주택이 한 채 있다. 그냥 보기에는 보통 집과 다를 바 없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시멘트 바닥에 탁자가 댓 개 놓여있다. 간판도 없던 집이라 사람들은 '연미정 할머니 밥집'이라고 불렀다. 할머니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이른 듯한 아주머니가 입가에 웃음을 베어 물면서 맞아주는 이 집은 연미정 인근에서는 유일한 밥집이다. 

검문 초소가 뒤로 물러나기 전에는 근처 동네 사람들이나 찾아주던 한미한 곳이었다. 그러나 강화나들길이 생기면서 하나둘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제법 알아주는 명소가 되었다. 비록 간판도 없고 그럴듯한 탁자도 없는 간이식당이지만 그래도 밥맛만은 어느 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맛있다.    

그래도 본업은 근처 동네 사람들이 오가며 들리는 주막이다. 군내버스가 서는 정류장이 앞에 있어서 읍에서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사람들이 밥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문을 열고 들어선다.

금방 한 밥을 먹어야 뼈가 되고 살이 된다고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지요.
 금방 한 밥을 먹어야 뼈가 되고 살이 된다고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지요.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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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일이라도 있을 양이면 그곳은 남정네들로 가득 찬다. 막걸리 한 사발에 돼지껍데기 볶음을 앞에 두고 시국 돌아가는 이야기며 못자리 낼 의논까지 온갖 현안들이 논의에 붙여지고 갑론을박 목소리를 높인다. 옛날의 주막이 꼭 이랬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 앞을 지나가면 주막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목을 축이고 가라고 불렀을 것 같다.

아버지들의 세계, 주막

얼마 전에 연미정에 놀러갔다가 밥 때가 되어서 그곳에 가봤다. 그 날도 중늙은이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서 술추렴을 하고 있었다.

"모판은 어찌 됐는가?"

막걸리를 따르며 누가 묻자 그 옆에 앉은 사람이 말을 받는다. 

"날이 추워 그런지 모가 잘 자라지를 않네. 이러다 모내기 제 때 할 수 있을까 몰라."

그러자 한 동안 모내기며 모판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모들이 잘 자라지를 앉는다며 걱정들을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예전 어릴 때 큰 길 가에 있던 국밥 집으로 놀러 가신 아버지를 모시러 가던 생각이 났다. 우리 아버지는 술은 입에 대지 않았지만 화투를 좀 하셨다. 그때는 농한기인 겨울에서 봄까지 심심풀이로 화투를 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전문적으로 하는 노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사람들은 애를 태우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놀러가셨다가 늦게까지 오지 않으면 우리를 앞세워서 찾아갔다.

아버지들의 세계였던 그때 그 국밥 집을 연미정 밥집에서 본다. 막걸리를 한 잔 해서 불콰해진 얼굴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흐른다. 시국 돌아가는 이야기며 농사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그곳은 인근 동네 남정네들의 사랑방이었다.

연미정 밥집의 주인아주머니입니다. 이문을 별로 남기지 않고 주셔서 먹는 사람들이 오히려 미안해하는 밥집입니다.
 연미정 밥집의 주인아주머니입니다. 이문을 별로 남기지 않고 주셔서 먹는 사람들이 오히려 미안해하는 밥집입니다.
ⓒ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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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밥상이 차려졌다. 김이 술술 피어오르는 밥이 양은냄비 채로 올라와 있고 납작하게 썬 무를 밑에 깔고 지진 생선조림 역시 냄비채로 올라왔다. 산나물을 뜯어 무친 보시기가 두어 개나 되고 김치에 장아찌에 상이 푸짐하다.

"밥 많으니까 많이 드셔. 밥심(힘)이 제일이잖아. 우리네는 밥을 먹어야 힘이 나더라고. 누룽지도 먹고 가셔."

주인아주머니가 밥을 퍼주며 연신 많이 먹으라고 권한다.

정을 덤으로 얹어주는 연미정의 밥집

색다를 게 없는 밥상이지만 정이 듬뿍 느껴지는 상이다. 마치 엄마가 차려주는 밥 같다. 배가 부른데도 누룽지에 숭늉까지 찾아 마시는 걸 보니 모두 정을 느꼈나 보다. 반찬 한 가지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하는 따뜻한 정이 연미정 할머니 밥집에서는 느껴진다.

막걸리 몇 잔에 기분이 좋아진 인근 동네 아저씨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서로 계산을 하겠다며 한동안 옥신각신하더니 그 중 한 사람이 재빨리 틈을 타서 계산을 마친다. 막걸리 몇 병에 두부 부침이며 찌개에 생선조림까지, 안주가 몇 가지씩이나 됐는데도 돈은 얼마 나오지 않았다. 돈을 내는 사람도 또 얻어먹는 사람도 별 부담이 되지 않을 액수다. 

우리도 그 본을 받았는지 서로 돈을 내겠다며 다툼 아닌 다툼을 했다. 백반 삼인분에 막걸리와 돼지 껍데기볶음도 한 접시 추가했다. 그래도 다 합해 만구천 원 밖에 되지 않았다. 셋이서 서로 돈을 내겠다고 하다가 윗사람 둘이 돈을 내어 아랫사람 밥을 사준 셈으로 치기로 했다. 둘이 만 원씩 내었지만 그래도 천원을 거슬러 받았으니 밥 한 끼 사준 셈치고는 들어간 돈이 얼마 안 된다.

항상 갓 지은 새 밥을 줍니다. 우리만을 위한 밥, 얼마나 특별한 밥입니까.
 항상 갓 지은 새 밥을 줍니다. 우리만을 위한 밥, 얼마나 특별한 밥입니까.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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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엄마들은 자식들에게 꼭 따뜻한 밥을 먹이려고 했다. 그런 밥을 먹어야 힘도 나고 키가 큰다고 했다. 전기밥솥도 없고 보온밥통 또한 없던 시절이었는데도 어떻게 해서든 따뜻한 밥을 먹였다. 겨울이면 아랫목에는 밥을 담은 그릇이 이불 밑에 들어 있었다. 밖에서 놀다 들어와서 이불 밑에 발을 들이밀다 더러 밥통을 걷어차기도 했다. 아랫목은 늘 따뜻함과 함께 이불 밑에 묻어두었던 밥으로도 기억이 된다. 

그런 밥을 먹고 우리는 자랐다. 비록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정(情)만은 풍족했다. 지금은 뭐든 다 차고 넘치는 시대다. 배가 불러서 못 먹지 없어서 못 먹는 시대는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씩 허기를 느낀다. 사람 사이의 정이 그리운 허기다.

그럴 때 연미정의 할머니 밥집을 찾아가 본다. 종종대면서 밥을 퍼주고 반찬을 차리는 주인아주머니에게서 어릴 적 추억을 느껴 본다.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의 주인아주머니는 나를 먼 옛날로 데려가준다. 금방 해서 뜨거운 밥을 후후 불어가면서 먹고 누룽지로 끓인 숭늉으로 입가심까지 하고 나면 뭔가 모를 충족감이 밀려온다. 식당 밥은 금방 배가 꺼진다는데 연미정 밥집은 그렇지가 않다. 아마도 그곳 밥에는 정이 덤으로 얹혀있나 보다. 


태그:#강화도, #강화나들길, #연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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