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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일 주일에 한 명씩 소풍이네…. 김밥을 두 번이나 어떻게 싸냐. 힝….'

지난 주 네 살, 여덟 살 두 아이들의 주간계획표를 보며 든 내 '솔직한' 생각이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왕복 세 시간 가까이 걸려 출퇴근 하는 나에게 아이들 소풍은, 그저 새벽 같이 일어나 김밥 싸는 노동이 추가되는 그런 고된 날에 다름 아니다.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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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며칠 후인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탄 세월호가 침몰한 사건이 터졌다. 업무 특성상 하루 종일 뉴스를 듣고 일해야 하는 나. 처음 배가 90도로 기울었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어 속보로 "아이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멘트가 흘러 나왔다.

'어쩐 일이래? 사고난 지 얼마나 됐다고 웬일로 이렇게 빨리 구조가 된 거야?'

속으로만 생각했다. 무엇보다 다행스런 일이니까. 흥분한 목소리의 뉴스 앵커는 구조된 단원고 남학생과 전화인터뷰를 했다. "친구들 전원 구조되었다니까 이제 좀 편하게 물어보겠다"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오보란다. "그럼 그렇지" 참았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하루 종일 일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만큼 마음이 싱숭생숭. '뉴스'는 없고, 앵무새처럼 같은 화면만을 내보내는 방송사마냥 읽던 자료를 또 읽고 읽고…. 그러다 오후 5시. 해가 저물어 간다. 바닷속에 남겨진 아이들을 뒤로 하고 나는 아이가 있는 집으로 향한다.

세월호 침몰... 아이에게 화풀이하다

저녁 무렵 아파트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야시장이 열린 것. 이런 날 아이들은 에어바운스에서 한 번 뛰어주고 이동식 바이킹을 타야 직성이 풀린다. 더운 봄이라지만 아직 저녁엔 찬바람이 분다. 세탁소에 맡기려고 꺼내놓은 오리털 잠바를 입은 아이들은 아니나 다를까 에어바운스 안에서 펄펄 뛰고 있었다. 한 달째 감기 중인 막내는 콧물이 줄줄줄.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이런 데서 놀고 있는 거야.'

또 속으로만 생각한다. 한참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추슬러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큰아이가 "5분만 더 놀래"하고 고집을 핀다. 둘러보니, 이미 우리 아이들뿐이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니들이 이렇게 놀고 있니?"

참았던 말이 입 밖으로 또 튀어 나와 버렸다. 아이들은 '엄마, 뭐지?'하는 표정이다.

"지금 배가 뒤집혀서 언니오빠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데… 우리가 이렇게 즐거워만 하면 좀 미안한 것 같아서…."

대충 둘러대고 아이들을 몰듯 집으로 올라오자마자 뉴스를 튼다.

"엄마, 왜 무슨 일 있어?"
"배가 뒤집혔어. 수학여행 가려고 한 언니오빠들인데, 배가 뒤집혀서 저래. 지난번에 뉴스에서 일본에 파도가 엄청 크게 치는 거 봤지? 그것처럼 큰 사고가 난 거야."

마음이 뒤숭숭해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은 과연 어른들 말을 따를 것인가. '자리를 지키라'던 방송을 굳게 믿었던 아이들. 다음날 일터에서는 하루 종일 구조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오후 7시 퇴근 전까지 구조한 학생은 0명. 부아가 치밀었다. 이정도면 하늘도 원망스러웠다. 내일은 막내의 소풍 날. 가까운 곳으로 간다고 하지만, 신경이 안 쓰일 리 없다. 감기도 아직 안 나았는데, 보내야 하나.

"어머님, 내일 소풍 말인데요. 세월호 침몰 사건도 있고 해서 걱정이 많으시죠? 그래도 아이들이 너무 기대하니까 일단은 가자 했는데,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어린이집 어린이집 뒷산으로 가려고요. 첫 소풍인데 아무것도 안 하면 아이들이 너무 서운해 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김밥은 싸서 보내주세요."

어린이집 선생님의 전화 한 통으로 상황 정리. 순간, 단원고 담임선생님들이 생각났다.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출발 결정을 했을 그 마음… 부질없는 생각. 다시 김밥 재료를 점검한다. 아침에 일어나 바로 쌀 수 있게. 오뎅을 데쳐 놓고, 햄을 썰어 놓는다. 당근을 채썰고 오이를 돌려 깎는다. 오후 11시. 단원고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을 사진으로 본다. 밥을 안칠까 하다가 관둔다. 아무것도 하기 싫네. 이 기분으로 뭘. 꾸역꾸역 잠을 청한다.

열 달 동안 한 몸이었던 우리 아이들, 꼭 만나자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학생과 인솔교사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촛불기도회가 안산지역 시민단체 주최로 열리고 있다.
▲ 단원고 실종자 무사귀환 촛불기도회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학생과 인솔교사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촛불기도회가 안산지역 시민단체 주최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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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6시.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한다. 사망 25명. 사망자 수가 늘었다. 다시 슬퍼진다. 밥을 안치고, 햄과 오뎅, 당근을 볶고 계란을 부치고 김밥 쌀 준비를 한다. 큰 아이는 엄마를 돕겠다고 일찍부터 자리를 꿰차고 앉아 대기 중이다. 아이가 집어주는 재료를 받아 김밥을 만다. 김밥을 말며 아이를 본다. 제비새끼마냥 입을 벌리며 김밥 꼬다리를 물고 있는 내 새끼. 새끼 잃고 울부짖는 단원고 엄마의 얼굴이 겹친다.

"엄마, 김밥 옆구리가 터졌어."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아침부터 뭐람. 이 말도 안 되는 슬픈 상황, 비참한 상황을 견디는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부모 잃은 6살 여자 아이를 대통령이 위로하는 사진을 보며 한 선배는 울었다고 했고, 후배는 지하철에서 울었다고 했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픈 이 느낌이 참 싫다는 선배도 있었고 확인 없이 기사를 쓴 후배는 자기 반성글을 SNS에 걸어놓기도 했다. 학교 카톡방에 모인 엄마들은 어른으로서 부끄럽다고 했고, 부모로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말도 건넸다.

'대한민국이 멈췄다'고 한 기사가 과장이 아닐 정도로 사람들은 하나의 마음으로 모두 구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는 게 없어 보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사망자는 28명으로 늘었고 아직 찾지 못한 금쪽 같은 내 새끼들을 포함한 실종자는 여직 268명이다. 뉴스에서는 아직 선체에 진입을 했네, 못했네를 놓고 옥신각신이다.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이 희망고문이라지만, 나는 믿는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처럼 희망을 놓지 않고 있음을. 우린 모두 열 달 동안 한 몸이었으니까. 꼭 다시 만나자, 얘들아.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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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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