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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혁명하면 곧게 자란 푸른 죽대가 연상됩니다.
 동학농민혁명하면 곧게 자란 푸른 죽대가 연상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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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민중에 대한 복지부동이며 역사에 대한 직무유기입니다. 호소해서 될 일이라면 목청이 터지라 호소하고 싶고, 선동해서 될 일이라면 앞장 서 선동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입니다. 

민족 의사 안중군과 농민대중의 영웅 전봉준 장군은 이미 100여 년 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분들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주검은 지금껏 행방이 묘연합니다. 두 분 모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외로이 떠돌다 죽어 간 것도 아니고, 주검 하나를 챙길 여력도 없을 만큼 치열한 전투 상황에서 생을 마감한 게 아닙니다.

체계적 조직을 갖춘 관리들이 집행한 형장에서 죽어갔건만 그 주검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건 의도적인 감추기가 있었거나,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만한 어떤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일본이 안중군 의사의 주검을 유족에게 돌려주지 않은 건 안중군의사의 무덤이 조선인들이 결의를 다지는 성지, 민족혼을 다시 결집시키는 성지로 되는 것을 염려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인 손에 죽어간 안중군 의사와 달리 전봉준 장군은 조선인 관료들에 의하여 형장의 이슬이 되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전봉준 장군의 주검 역시 민심이 결집되고 농민군이 재집결해 결전을 다짐하는 성지가 되는 걸 두려워해 운밀히 처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런 마당에, 전봉준 장군의 묘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비석이 발견되었답니다. 이에 해당 지자체에 조사를 요구하고 있으나 무응답에 무관심이라고 하니 이것이야 말로 민중 역사에 대한 복지부동이며 직무유기라는 분노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현직 역사 교사가 발로 찾아 쓴 <전봉준과 동학 농민 혁명>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조광환 지음/도서출판 살림터/2014.3.1/1만 5000원)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조광환 지음/도서출판 살림터/2014.3.1/1만 5000원)
ⓒ 도서출판 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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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과 동학 농민 혁명>(조광환 지음/도서출판 살림터)은 동학농민혁명을 전후한 정치·경제·사회적 배경과 동학농민혁명이 결집되고, 실행되고, 마무리되기까지의 과정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도록 연대별, 상황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농사나 지으며 평화롭게 살 농민들이 봉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들이 이루고자 하였던 것이 무엇인가는 동학농민군 측을 대표한 전봉준과 새로 부임한 전라감사 김학진이 맺은 '전주 화약(全州和約)'에 집약돼 있는 아래의 12개 조항에서 충분히 살필 수 있습니다. 

①동학교도와 정부와의 숙원을 없애고 공동으로 서정(庶政)에 협력할 것.
②탐관오리의 죄상을 자세히 조사 처리할 것.
③횡포와 부호를 엄중히 처벌할 것.
④불량한 유림과 양반을 징벌할 것.
⑤노비 문서를 불태울 것
⑥칠반천인(칠반천인)의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의 머리에 쓰게 한 평양림(평양립)을 폐지할 것.
⑦청상과부의 재혼을 허가할 것.
⑧무명의 잡부금을 일절 폐지할 것.
⑨관리 채용에 있어 지벌(地閥)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⑩일본과 상통하는 자를 엄벌할 것.
⑪공사채(公社債)를 막론하고 기왕의 것은 모두 면제할 것.
⑫토지는 균등하게 분작(分作)하게 할 것. -<전봉준과 동학 농민 혁명> 170쪽-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건 정권 이양과 같은 권력 다툼이 아닙니다. 출세를 통한 개인적 영달도 아닙니다. 그들이 요구한 건 눈물겹도록 소소한 인권,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평등이며 자유였습니다. 

요즘 가치로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당연할 것 같은 그 최소한의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그들은 목숨을 걸었고 싸웠고 죽어갔습니다. 임금을 하늘처럼 모시고,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던 그들이지만 견딜 수 없는 폭정, 도를 넘는 착취로부터 살아남고자 했던 몸부림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입니다.

그들은 절박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 기회를 놓치면 부패한 정부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이 나라와 민족을 영영 구해 낼 수 없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노래가 들불처럼 퍼지고 강줄기처럼 흘렀습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보리

(전략)'가보세'는 갑오년(1894년)을, '을미적'은 을미년(1895년)을 그리고 '병신'은 '병신년(1896)'을 의미하지요. 그러니까 이 시기에 농민군과 함께 새 세상을 만들지 못하면 영영 이 나라와 민족을 부패한 정부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구해 낼 수 없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담고 있습니다. -<전봉준과 동학 농민 혁명> 148쪽-

하지만 동학 농민 혁명은 외세까지 동원한 관권의 무력을 극복하지 못해 실패한 혁명, 성공하지 못한 미완의 혁명으로 종결됩니다. 하지만 가시적 승리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동학농민혁명 자체가 부정되거나 의미조차 감소되는 건 아닙니다.

 검단 선사가 벼락 살과 함께 예언서를 넣어 두었다는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1820년 전라감사 이서구가 마애불 배꼽 뚜껑을 열자 갑자기 벼락을 쳤다고 한다. 동학농민과 관련한 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검단 선사가 벼락 살과 함께 예언서를 넣어 두었다는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1820년 전라감사 이서구가 마애불 배꼽 뚜껑을 열자 갑자기 벼락을 쳤다고 한다. 동학농민과 관련한 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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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군들이 목숨을 걸고 이루고자 했던 세상이야 말로 민주주의를 내 딛는 첫걸음이었으며 작금의 민주주의에서도 요구되는 민주주의의 시금석이기 때문입니다.

올해가 동학농민혁명 후로 두 번째 맞는 갑오년,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는 해라서 그런지 갑오년 사람들이 입속에서나마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보리'하고 읊조렸다는 노랫말에 자꾸만 의미가 더해집니다. 

갑오년 투표에 을미적 을미적 하다간 대선 투표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증거물까지 위조해 내고 있는 어느 기관이나 권력이 획책하고 있는 암울한 공작으로부터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걸 상기하기에 충분합니다.  

이렇듯 두 차례의 답사와 여러 문헌 조사 끝에 전봉준 장군의 묘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설사 그 가능성이 불과 몇 퍼센트만 되더라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으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이 사실을 건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전봉준과 동학 농민 혁명> 324쪽-

관계기관들, 녹두장군 전봉준의 묘 찾는데 적극 협조해야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책들은 적지 않습니다. 저자는 책 말미, '개정판 출간에 부쳐'를 통해서「소통하는 우리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냈던 책을 일부 보완하고 수정해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으로 재판하고자 결심을 앞당기게 한 것은 '장군천안전공지묘비(將軍天安全公之墓)'를 발견함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주체는 농민이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주체는 농민이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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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하고 연구 해보니 전봉준 장군의 묘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관계기관 등에 본격적인 조사를 요구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무응답에 무관신인듯합니다.

올해는 동학농민혁명이후 120년의 세월이 흘러 두 번째로 맞이한 갑오년입니다. 분기탱천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던 그때의 혁명정신, 진정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민중들의 절박한 심정과 각오를 되살릴 수 있는 어떤 요소와 계기가 행방이 묘연한 전봉준 장군의 묘소를 찾는데서 다시 시작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의 출간을 계기로 전봉준 장군의 묘소가 확인되고, 조금은 시들해진 동학농민혁명에 깃들어 있던 민중들 가슴에서 이런 갈망과 저런 희망으로 폭발하며 치솟아 오르는 활화산처럼 오늘날 다시금 들끓어 오르는 계기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조광환 지음/도서출판 살림터/2014.3.1/1만 5000원)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 - 우리나라 최초의 아고라, 발로 찾아 쓴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조광환 지음, 살림터(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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